번역의 괴로움과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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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괴로움과 즐거움
  •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
  • 승인 2022.01.01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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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사진=HMG Journal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 날씨가 되면서 어느새 불볕더위의 느낌이 아득해졌으나 내게 2021년 여름은 번역과 뜨겁게 씨름하던 시절로 기억될 것 같다. 방학 때마다 책 번역을 하고 있으니 번역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지난여름의 번역은 조금 색달랐다.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러시아 역사학자들의 양국 관계 역사 관련 논문을 모아 출판하는 프로젝트에 번역사로 참여한 것이다. 한국 측이 열 편, 러시아 측이 열 편을 싣는다고 했는데 나는 러시아 역사학자들이 쓴 논문 네 편을 한국어로 옮기게 되었다. 시기 별로 나누어 구성된 논문집에서 내가 맡은 것은 19세기 말부터 1910년대 양국 관계, 일제강점기 양국 관계, 동서 냉전시기의 소련-북한 관계, 1990년대 이후 러시아-북한 관계였다.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무척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는 생각을 했다. 양측이 서로의 입장에서 같은 시기의 양국 관계 역사를 조망하고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다니 그야말로 수교 30주년에 걸맞은 기념사업이 아닌가. 거기 손을 보탤 수 있는 기회라니 얼마나 영광인가. 하지만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고생문이 열렸구나. 그것도 아주 활짝.

19세기 말부터 1910년대를 다룬 러시아 논문은 ‘카레야(한국)’라는 단어 하나로 한반도를 지칭한다. 하지만 번역문에 ‘한국’이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선이었다가 대한제국이었다가 식민지 조선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치자 직함도 바뀐다. 왕이 황제가 되고 통감은 총독이 된다.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운동을 다루는 논문을 번역할 때는 ‘카레이스카야 콤파르티야(한국 공산당)’라는 동일한 러시아어 표현을 고려 공산당이나 조선 공산당, 그도 아니면 조선 노동당으로 옮겨주어야 했다. ‘한국 공산당’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의 상황인지를 살펴 그때에 맞는 적절한 명칭을 찾아줘야 했다. 

 

번역사에게 검색은 숙명이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며 ‘자료에 바탕을 둔 최종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작업에서는 검색이 참으로 어려웠다. 러시아 문자로 음차하여 쓰인 유럽인이나 한국인 이름의 로마자 혹은 한글 표기를 찾으려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가곤 했다. 몇 시간을 쓴다고 해서 다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찾다 찾다 일단 포기하고 다음 날 다른 검색어를 넣어가며 다시 시도하기도 일쑤였다. 

소련/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를 다룰 때는 북한의 정부 부처 명칭, 김일성이 방문한 공장 명칭, 북한이 대외 협력을 위해 제정한 법 명칭, 북한에서 통용되는 양국관계 조약 명칭을 검색하여 찾아내야 했다. 곧바로 해답을 주는 자료는 극히 드물었다. 혹시나 바로 그 명칭이 등장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당시 북한에 대해 쓰인 보고서나 논문을 뒤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기한은 다가오는데 진도는 안 나가니 초조하고 불안했다.

다른 고민거리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세 번역사들은 ‘한러 관계’와 ‘러한 관계’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한국 역사학자는 ‘한러 관계’라 부르는 것을 러시아 역사학자는 ‘러한 관계’라 부른다. 러시아 역사학자의 논문을 번역한 글이니 저자가 쓴 대로 ‘러한 관계’로 가야 할까? 아니면 한국인 독자들을 고려하여 ‘한러 관계’로 해야 할까? (남북한 동시가입을 논의하던 UN 문서는 남북한의 기싸움 때문에 ‘남한과 북한’, ‘북한과 남한’을 교대로 사용하는 고육지책을 썼다고 한다. 어느 국가를 앞에 놓을지는 사소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투입시간 당 산출량으로 볼 때 이 번역 작업은 퍽 괴로운 쪽이었다. 하지만 모든 번역이 그러하듯 즐거운 공부의 측면도 있었다. 러시아 제국 외교 정책이 친일로 전환되면서 연해주의 독립 운동가들이 고초를 겪는 상황에 마음 아파하며 새삼 존경심을 품기도 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전격적 수교 이후 충격과 혼란에 빠진 북한의 모습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접하기도 했다. 번역이 아닌 글 읽기에서는 그런가 보다 무심히 넘겨버렸을 표현과 문장들이 번역을 해야 할 때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 표현과 문장이 실어 나르는 내용을 곱씹게 되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 때문에 나는 번역이 공부라고 여긴다.

비전공자인 내가 한 번역 원고는 역사학자들의 감수를 거쳤다. 예상대로 혹독한 평가가 되돌아왔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도 실수가 나오고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 역시 번역의 괴로움이다. 아이고.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등을 출간했으며,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레베카』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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