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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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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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73)_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죄는 내가 저지르고 죗값은 애꿎은 이에게 전가하는 게 사람이던가. 정치적 음모가 대개 그런 식으로 짜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저 살자고 발뺌을 하거나 남을 겁박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본다. 

칼릴 지브란이 말했다. 인간은 삶의 노예라고. 맞는 말이다. 그리고 노예로서 비참하고 거친  삶을 살다보면 죄를 짓기가 쉽다. 죄를 지으면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聖所에 나가 참회를 하고 잘못을 뉘우친다. 이런 일의 반복이 인간의 삶이다. 죄를 짓고, 회개하고, 사죄하는 어리석은 일이 다수의 일이고 보니 다 함께 죄를 나누자는 데 의견이 합치할 만큼 인간은 영악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 될 때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죄를 대신 짊어질 희생물을 찾았다. 불가항력적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살아있는 사람을 신에게 바치다가 나중에는 양, 말, 곰 등을 바쳤다. 공양미 삼백 석에 임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도 그렇고, 남편 뒤를 따라 죽는 인도 사회의 순장 풍습도 일종의 희생 제의라고 할 수 있다. 희생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공포에 떨며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련한 피조물을 달래기 위해, 그의 아름답고 영웅적인 행위를 미화할 그럴싸한 말을 고안해 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집단을 대신해 신에게 바쳐질 거룩한 희생을 위한 찬사는 고작 ‘희생양’이라는 말이었다. 

가축에 대한 오해와 홀대

희생양을 scapegoat라고 하는데 성경 레위기 16장 8절에 나오는 히브리어 아자젤(ăzāzêl)의 영역이다. 애초 양이 아닌 염소를 속죄의 제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유대인들의 제례에 공물로 바쳐지는 동물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영어 표현에서 scape는 escape의 고어형이다. 그런데 달아나는 주체가 염소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에 의해 사막으로 내몰리는 희생자다. 

 

                윌리엄 홀먼 헌트, 속죄염소(The Scapegoat), 1856, 맨체스터 미술관, 영국.

히브리어로 페사흐, 고대 그리스어는 파스카(πασχα), 영어로는 패스오버(passover)라고 부르는 유월절(逾越節) 또는 과월절(過越節)은 유대인들이 신왕국 이집트의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유대교의 3절기 중 봄에 지내는 절기다. 유월절이라는 말은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들의 죽음’으로부터 넘어갔다는 것을 지칭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재앙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절기는 험난했던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유대인을 해방시켜주신 하나님을 기리기 위해 매년 준수되고 있다. 날짜는 유대력 니산월(1월) 14일 저녁이다(레위기 23: 5).

출애굽기에 바탕을 둔 유월절 예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흠 없는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 그리고 양의 살과 내장을 모두 구워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인 무교병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은 가혹했던 노예 시절에 대한 환기이며 죄악으로부터의 정결을 의미한다. 식사를 할 때는 과거 조상들이 애굽을 떠날 채비를 한 것처럼, 신발을 신고 허리띠를 두른 채 지팡이를 손에 들고 식사를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될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랬던 모양이다. 먼저 여호와에게 바칠 희생 제물로 어린 염소 두 마리를 고른다. 그 중 한 마리가 죽음으로써 희생 염소가 되고, 죽음을 모면한 산 염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든 죄악과 불순함을 지니고 그 길로 광야로 보내진다. 그러니까 산 염소는 유대 집단의 온갖 죄를 대신 짊어지고 사막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대속(代贖)이라는 개념이 유월절 희생제의 속에 잉태되어 있었던 셈이다.  

염소는 영문도 모른 채 인간의 죄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채 사막으로 쫓겨난다. 그런 염소의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희생물이 되는 것도 억울한데, 공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엉뚱한 양이 그를 가로채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양은 순하고 염소는 악해서인가? 염소는 흰털을 지녔고, 염소는 털이 검은 색인 때문인가? 혹시 염소가 양보다 어리숙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그런데 염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똑똑한 짐승이다. 10여 년 전 레바논에서 시리아로 넘어가던 길에 해질녘이 되어 양떼를 몰고 돌아가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염소가 양몰이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인간이 가축에 대해 아는 건 부정확하거나 부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다. 맛있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돼지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해로운 짐승이 아니다. 돼지꿈은 돈 주고도 산다고 말할 정도로 길몽으로 친다. 집안의 귀한 손자를 ‘돼지 새끼’라는 의미의 가돈(家豚)으로 부른 것도 단순한 겸양이 아니라 ‘복덩이’의 의미가 보태진 말로 이해된다. ‘우리 새끼’, ‘예쁜 강아지’ 또는 ‘우리 강아지’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죽어서도 돼지 혈(穴)에 墓를 쓰면 부자가 된다고 믿어왔다. 또한 돼지는 일찍부터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낼 때 제물로 사용되었다. 돼지를 정치적, 신화적인 위력을 지닌 신성한 동물로 간주한 때문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사(祭祀)’ 조에 보면 고기(古記)를 인용해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동국세시기』 ‘십이월 臘(섣달 랍)’ 조에 보면 산돼지가 납향(臘享, 누릴 향, 제사 지낼 향: 섣달에 조상이나 종묘사직에 지내는 제사)에 제물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에도 무당의 큰 굿이나 동제(洞祭)에 돼지를 제물로 쓰고 있다. 각종 고사를 지낼 때도 어김없이 돼지머리가 등장한다. 돼지 그림이나 돼지 코는 번창을 상징하며 부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돼지는 재원(財源)이고, 돼지를 가리키는 한자어 ‘돈(豚)’은 화폐 ‘돈’과 음이 같다. 장사하는 집에서는 돼지 그림을 곧 잘 문설주 위에 그려 붙인다.

제단에 바칠 돼지가 도망을 가자 뒤를 쫓던 관리들이 돼지를 발견하고 근육을 끊었는데, 왕이 이들 관리들을 죽였다. 하늘에 올릴 거룩한 제물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 이유다. 형인 고국천왕이 죽고 형수인 于氏를 아내로 맞아들인 산상왕이 즉위 13년 만에 낳은 아들 이름이 교체(郊 성밖, 들 교; 彘 돼지 체)다. 이 멧돼지 왕자가 제11대 동천왕이다. 청나라 누르하치의 아들로 후일의 태종 또한 아명이 돼지를 뜻하는 홍타이지였다. 돼지는 절대 불결하거나 푸대접 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좌) 인신공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의 미라, (우) 아이누인의 이요만테를 그린 일본 그림(1870년경)

불곰을 잡아 죽인 뒤 곰의 멱을 따 피를 받아 마시는 이요만테라는 아이누인의 동물공희 풍습이 있다. 이런 일들은 다 죄를 지은 자가 죄의 정화를 꾀해 죄 없는 자를 희생시키는 또 다른 죄다. 이슬람에서는 종교의식은 물론 축일의 경우 대개 양을 잡아 희생양으로 삼는다.

 

           스페인 달리아스의 무슬림들이 희생절인 ‘이드-알-아드하’를 맞아 양을 도축하고 있다.

7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사라센의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에는 여전히 무슬림들이 많다. 이슬람력으로 12월 8일부터 10일 사이에 치러지는 하지(성지 순례)가 끝난 뒤 희생절이 되면 그들은 양을 잡아 가족 친지들과 나누어 먹는다. 희생절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아브라함이 큰 아들이자 아랍인들의 조상인 이스마엘을 신의 제물로 바치려 할 때 대천사 가브리엘이 중재해 양을 대신 희생시켰다는 기록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양갱을 일본인들은 요깡이라고 한다. 한자어 羊羹에 쓰인 ‘羊’으로 보아 재료가 양과 관련된 것일 거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 ‘갱(羹)’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국’으로 肉羹(육갱), 菜羹(채갱) 등으로 쓰인다. 오늘날 양갱은 단팥묵으로 순화되어 쓰인다. 

 

                                                          팥 양갱(왼편)과 녹차 양갱(오른편)

양갱(羊羹)은 팥을 삶아 체에 거른 팥 앙금, 물엿, 설탕, 한천가루, 갈분 등을 섞어 틀에 넣고 쪄서 만든 음식이다. 기원전 이미 중국에 존재했던 식품으로 원 재료는 양의 피와 고기였다고 한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景敎인 이슬람을 믿는 후이족(回族)이 양의 피를 이용하여 수프를 만들고 이를 양갱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양갱은 1500년 경 일본인들이 만든 식품으로, 중국점령지역에서의 양갱과는 재료나 맛이 전혀 관련이 없다. 일본에서 이 화과자를 처음 만들었을 때 '양고기 국처럼 맛이 최고다'라는 이유로 양갱(ようかん, 요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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