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傳燈錄) - 선종의 어록과 역사와 계보 그리고 선 수행법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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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록(傳燈錄) - 선종의 어록과 역사와 계보 그리고 선 수행법의 근원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1.01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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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15강〉_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의 「〈전등록〉」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2. 동양사상 제15강 김호귀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전등록(傳燈錄) - 선종의 어록과 역사와 계보 그리고 선 수행법의 근원


김호귀 교수는 불교 선종사(禪宗史)의 기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특히 인물 중심의 계보라는 성격”을 띤 전등록(傳燈錄)에 대해 깊이 있게 소개한다. 와중에 그 소개의 범위를 협의의 『전등록』, 즉 중국 “북송 시대 1004년에 도원(道原)이 탈고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30권”에 국한하지 않고 “전등사실(傳燈史實)에 대한 기록으로서” 확대하여 살펴본다. 그 같은 전등사서의 가치와 의의로는 우선 “계보의 기능”과 더불어 선어록(禪語錄)으로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어 그런 기능에 더해 조사(祖師)들의 “행장과 법어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승전의 기능”을 같이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전등사서에 수록된 선문답이 “수많은 어록의 출현”에 힘입어 다양한 공안집(公案集)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를 통해 “공안선(公案禪), 문자선(文字禪), 간화선(看話禪), 묵조선(黙照禪) 등의 특수한 선 수행으로 전개되어갔다”라고 지적한다. 이는 1200여 년 역사의 한국 선(禪)의 역사에서도 진행되어 그 흐름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11월 13일, 김호귀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1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선의 어록

1) 선어록의 의미

선어록(禪語錄)은 선의 어록 또는 선종의 어록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선종은 중국 불교에서 보리달마로부터 연유하는 선의 종파를 가리킨다. 보리달마 이후로 전승되고 전개되며 계승되어온 선종에 대한 문헌을 통칭 선어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보다 넓은 의미로는 선록(禪錄)ㆍ선전(禪典)ㆍ선적(禪籍)ㆍ선서(禪書)ㆍ선문헌(禪文獻)ㆍ선집(禪集) 등으로 불리는데 선과 관련된 일반적인 전적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선의 교의를 기록한 선리(禪理)ㆍ사상류(思想類)ㆍ순수어록류(純粹語錄類)ㆍ전등사서류(傳燈史書類)ㆍ청규류(淸規類)ㆍ공안집류(公案集類)ㆍ수필류(隨筆類)ㆍ선계류(禪戒類)ㆍ작법류(作法類) 그리고 기타 잡류(雜類)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보다 좁은 의미로는 선자가 법어로 보여준 말씀에 대한 기록의 경우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후자의 경우 선어록은 선자가 평소에 하는 설법을 그 제자 혹은 제삼자가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 선어록은 광의의 의미와 협의의 의미를 두루 가리키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어록의 내용에는 선자의 법어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광록(廣錄)이라 하며,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기록한 것을 어요(語要)라 한다. 그리고 개인의 법어를 모은 것을 별집(別集)이라 하며, 여러 선자의 법어를 모은 것을 통집(通集)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어록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선림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종 이외의 조사 어록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송 이후에는 유교와 도교에서도 이것을 따라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어록의 내용도 또한 점차 시게(詩偈) 및 문소(文疏) 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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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종 전등사서의 출현

1) 전등록의 의미

전등록(傳燈錄)은 전등을 기록한 문헌을 가리키는데, 달리 전등사서(傳燈史書)라고도 말한다. 이런 점에서 선종사의 기록에 속하는데, 특히 인물 중심의 계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전등록에서 말하는 인물은 조사(祖師)로 대표되는데, 이들은 불법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전승하여 주지(住持)시키는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전등록은 고승전과 구별된다.

그런데 통상 전등록이라고 하면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앞의 언급처럼 전등사실(傳燈史實)에 대한 기록으로서 정법안장의 유통을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북송 시대 1004년에 도원(道原)이 탈고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30권을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전자의 의미로 활용하기로 한다.

2) 전등록의 출현

선의 원류는 불교의 시작과 역사를 같이 한다. 그것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성취한 수행의 방법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래로 인도 불교에서는 선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상과 수행법과 교의가 형성되고 발전되며 전승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소위 선종은 6세기 초에 보리달마(菩提達磨: 5-6세기)에 의하여 전승된 대승의 선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선종의 경우에 선을 위주로 한 교단의 형성이라는 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선종이 달마 조사로부터 연원되었다는 점에서 중국 선종의 초조를 달마로 비정하고, 그 일단의 선풍을 소위 조사선(祖師禪)이라 말한다.

사실 선종(禪宗)이라는 말은 선의 교단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선의 근본적인 종지라는 의미로 활용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교단의 형성과 그 전개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 전승에 대하여 계보를 확정하고 그 계보에 근거하여 정통과 방계를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전자의 의미에 해당하는 선종은 반드시 그 정통성을 강조하는 방편으로서 전등사서를 출현시켰다.

전등(傳燈)이라는 용어는 불조의 혜명을 등불에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등불의 전승이라는 의미의 전등(傳燈)의 개념과 관련하여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반야바라밀을 전승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곧 전등이란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수수(授受)하는 방식에 해당하는데, 그 범위는 멀리 과거칠불(過去七佛)로부터 가섭을 통하여 보리달마에 이르고, 나아가서 이러한 전등은 중국 선에서 정통성을 강조하는 몇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의 기관으로 중요시되었다. 가사를 통하여 그 정통성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전의부법설(傳衣付法說)은 하택신회(荷澤神會)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인데 이로부터 발우 및 주장자 등으로까지 확대되어간다. 곧 하택신회가 주장했던 가사의 부촉설은 남종의 전등법통설의 주장과 더불어 정법의 소재를 밝히기 위한 신물(信物)로 고안된 것이지만 신회 이후의 중국 선종에서는 인가증명(印可證明)의 신물로서 새로운 전통이 확립되었다. 특히 무주(無住)의 보당종에서는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774)를 편집하여 자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이색적인 전의부법의 전등설을 주장하였으며, 『조계대사전(曹溪大師傳)』(781) 및 돈황본 『육조단경(六祖壇經)』(779 혹은 780), 『보림전(寶林傳)』(801) 등에 계승되어 선종의 전법 상승 및 인가증명의 심벌로 정착되었다.

이들 중국 선종의 전등 계보의 출현 및 인가증명 그리고 부법전의(付法傳衣) 등은 실제의 역사적인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 선종에서 자파의 종지를 드러내고 보급하며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고 기관이었다. 그 때문에 자파의 입장을 중심으로 정법안장의 역사적인 전승과 그 정통성을 뒷받침해주는 장치로서 선종파 자체 내에서 경쟁의 산물로 등장한 것이 전법 계보였다.

 

4. 전등사서의 가치와 의의

1) 계보의 기능

선종의 전등사서에서 불조(佛祖)는 부처와 조사라는 의미이다. 불(佛)은 구체적으로 과거의 일곱 부처님을 가리키는데,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그 이전의 부처에 해당하는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을 가리키고, 조(祖)는 부처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정법안장을 전승함으로써 불법을 주지(住持)토록 하는 인물로서 마하가섭을 비롯한 보리달마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28대 조사 및 중국의 역대 조사를 가리킨다.

때문에 전등사서의 고유한 기능으로는 불교가 발생한 인도의 불교에 대하여 부처의 개념을 과거까지 소급시켜서 불법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일환으로서, 석가모니 이전의 부처님을 비롯하여 그 이후에 전개되는 정법안장의 전승을 면면하게 전개해온 조사들의 계보에 대한 기록을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직접 법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전등이라는 용어는 중국 불교에 들어와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되는데 『법화문구(法華文句)』에는 이미 그와 같은 개념이 드러나 있다. 또한 선종에서 정법안장의 전승이라는 의미로 활용된 경우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등장해 있다. 이런 점에서 전등은 정법안장을 전승하는 의미로서 정착되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필수적인 요건이 구비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우선 전등 계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조건으로 수행과 깨달음과 인가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법에 있어서 최소한도의 조건이다. 선은 불교가 시작된 이래로 일관되게 깨침을 추구해온 종교이다. 불교를 구축하고 있는 두 가지 축을 지혜와 자비로 간주할 경우, 자비에 중점을 둔 것이 중생 제도의 비원이라면 지혜에 중점을 둔 것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비는 처음부터 지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는데, 그것은 깨달음이야말로 올바른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에 선지식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였을 뿐만 아니라 선지식을 통하여 개인적인 경험에 속하는 깨달음을 터득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깨달음의 경험이야말로 반드시 선지식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으면 그 여부를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여법하게 전법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와 같은 수행과 깨달음과 인가가 없이는 그 어떤 선자도 정법안장의 전승 행위인 조사(祖師)의 전법(傳法)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점을 드라마틱하게 엮어낸 일례가 부처님과 마하가섭 사이의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선리였고, 달마와 혜가 사이의 삼처전심의 선리였다.

때문에 선종에서는 심지어 부처님마저도 이전의 부처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전법한다는 교의가 형성되었다. 곧 석가모니불의 경우에도 숱한 수행의 경험을 통하여 깨달음을 경험한 이후에 부처님이 했던 말씀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지신으로부터 증명을 받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과거불로부터 수기를 받아 부처님으로 출현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수행과 깨침과 인가와 전법의 전통은 특히 선법이 교학 불교가 발전해가던 당시 중국 불교계에서 자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강조되었다. 그것은 기존의 교학 불교와는 다른 차별화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2) 일반적인 기능

다른 한편으로 전등사서는 선어록으로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 곧 전등사서이면서도 거기에 국한하지 않고 선어록의 기능을 비롯하여 조사들의 행장과 법어를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승전의 기능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선어록의 기능으로는 전등사서에 수록된 수많은 법어를 담고 있다. 

또한 간혹 조사들의 간략한 저술도 수록하고 있으며, 선종의 청규를 비롯하여 선원에서 행하는 의례 등 선종 문화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전등사서에 수록된 선문답은 수많은 어록의 출현으로 인하여 송 대에는 다양한 공안집으로 정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공안집은 그 편찬자가 전등사서를 비롯하여 일반의 선어록에서 발췌한 문답을 중심으로 일정한 칙수를 정하여 선 수행의 일환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소위 송고(頌古), 염고(拈古), 염송(拈頌), 공안집(公案集)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안집류의 근원은 전등사서에 수록된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들 공안집류를 바탕으로 하여 송 대에는 공안선(公案禪), 문자선(文字禪), 간화선(看話禪), 묵조선(黙照禪) 등의 특수한 선 수행으로 전개되어갔다.

(1) 공안의 출현

공안선(公案禪)은 공안에 대하여 기록하고 사유하며 참구하고 전승하는 것으로써 선 수행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공안(公案)은 경론 내지 선어록 등에서 발췌한 일화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단의 내용을 일컫는다. 이 경우에 공안은 납자 자신이 개인적으로 임의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래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선지식과 납자 사이에서 문답의 주제로 활용하거나 가르침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여러 지역 내지 오랜 세월 동안 유행되어오면서 보편적인 의미가 확보된 경우에 해당한다. 곧 불조가 개시해준 불법의 도리 그 자체를 의미하는 까닭에 납자가 분별식정(分別識情)을 버리고 참구하여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공안은 일정한 시대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더불어 초시대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런 만큼 공안은 사사롭게 정의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부여된 법칙과 같은 기능을 담보하고 있는 일정한 내용의 글 내지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는 선문의 법어 내지 문답에 해당한다. 그래서 공안은 공공 문서로서 공부(公府)의 안독(案牘)에 비유되어 법칙의 조항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유행되어왔다.

(2) 공안을 통한 선 수행법의 출현

송 대에는 당 시대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수많은 공안을 중심으로 그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며 일종의 수행 방법으로까지 활용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공안의 기능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공안을 채택하여 그것으로써 그 의미를 확인하고 체험하며 타인에게 가르침의 수단 내지 불조의 가르침을 파악하는 기관(機關)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공안 본래의 기능이 점차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정착되어갔다. . . . . 

이에 선종사에서는 공안선과 문자선과 간화선의 순서로 형상되어왔는데, 이들 선 수행의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령 공안선이 불조가 개시한 공안을 통째로 들어 사유하고 참구하는 것으로 공안을 전제(全提)하는 방식이라면, 문자선은 공안에 대하여 문자를 동원하여 능력껏 개인의 견해를 가하여 비평하는 자세로 수행 및 접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이고, 간화선은 공안 가운데서 특수한 부분의 언구를 선택하여 그 언구를 중심으로 언구 자체에 대해서만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마음으로 참구하는 것으로 공안을 단제(單提)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각각 구별된다.

 

5. 한국의 전등사서

전등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선종의 전등사서를 통한 전등 의식의 표출은 시기적으로 상당히 늦게 나타났다. 한국의 선법은 8세기 중반에 중국 선종의 정통에 해당하는 동산법문(東山法門)의 선법이 법랑(法朗) 선사를 통하여 수입되어 전승되었다. 이로써 간주하면 한국 선의 역사는 1200여 년에 가깝다. 이후 9세기 초반부터 소위 남종의 선법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선법이 전래되어 9세기 중반부터 10세기 중반의 1세기에 걸쳐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성립으로 나타났다. 이들 선법의 전래자들은 모두 중국 선종의 전등사서에 해당하는 『조당집』 및 『경덕전등록』 등을 통하여 단편적이나마 그 면모를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고려 후기부터 한국의 선법에서는 전등의 법맥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 배경은 송 대에 출현한 수많은 전등사서(傳燈史書)의 수입과 함께 해동 선법의 법맥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일찍이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이 『선문염송』에서 송 대의 전등사서와 공안집(公案集)과 선어록(禪語錄) 등으로부터 공안을 발췌하여 편찬한 것으로부터 찾아볼 수가 있다. 이들 전등 법맥에 대한 인식이 한국 선의 경우만 아니라 일찍이 중국 선종의 경우에도 선종의 형성과 그 전승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물론이다.

 

1) 전등 계보 성립의 조건

전등사서는 전법 계보를 통한 법통설의 확립, 전법 게송의 확립, 인가증명의 확립 등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물증으로서 가사(袈裟)와 발우(鉢盂)의 전승을 강조하는 전통도 형성되었다. 가사를 통하여 그 정통성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전의부법설(傳衣付法說)은 8세기 초반 조계혜능(曹溪慧能)의 문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인데, 이로부터 발우 및 주장자 등으로까지 확대되어갔다. 하택신회(荷澤神會)가 주장했던 가사의 부촉설은 남종의 전등법통설의 주장과 더불어 정법의 소재를 밝히기 위한 신물(信物)로 고안된 것이지만, 신회 이후의 중국 선종에서는 인가증명의 신물로 새로운 전통이 확립되었다. 특히 무주(無住)의 보당종(保唐宗)에서는 『역대법보기』를 편집하여 자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이색적인 전의부법의 전등설을 주장하였으며,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조계대사전』 및 돈황본 『육조단경』, 『보림전(寶林傳)』 등에 계승되어 선종의 전법 상승 및 인가증명의 상징으로 정착되었다.

이런 점에서 전등은 정법안장을 전승하는 의미로서 정착되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필수적인 요건이 구비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선 전등 계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조건으로 발심(發心)과 수행(修行)과 증득(證得)과 인가(印可)의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전법에 있어서 최소한도의 조건이었다. 이와 같은 발심과 수행과 증득과 인가와 전법의 전통은 특히 교학 불교가 발전해가던 당시 중국 불교계에서 선법의 입장에서 자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강조한 것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교학 불교와는 다른 차별화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종의 경우 자파가 교학의 측면과는 전혀 다른 측면의 특징을 내세움으로써 선법이야말로 부처님의 정법안장의 핵심을 그대로 전승했다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것이 곧 다름이 아니라 전등의 계보에 착안한 원인이 되었다. 부처님의 8만 4000의 법문은 모두 언설을 통한 방편으로서 중생의 번뇌를 제거해주는 것으로 지제전(止啼錢)에 불과한데, 부처님의 정법안장은 실상무상(實相無相)으로서 이심전심(以心傳心) 및 이법인법(以法印法)의 도리에 의거하여 전승된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이에 처음으로 그 심법의 소유자를 마하가섭으로 제시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계보에 착수한 것이 곧 전등 계보의 출현이었다.

 

2) 한국 선에서 전등 법맥의 출현과 의의

한국의 선종사에서 법계의 정통성과 선법의 전승이라는 두 측면이 어느 때보다도 난립하고 있던 시기가 고려 후기였다. 이 무렵은 기존부터 고려 국내로 전승되어오던 법계가 소위 조계선법으로 불리는 구산문의 선법과 외국의 유학승을 통해서 전승되고 다져진 중국 임제종 계통의 선법 사이에 모종의 합일점이 필요한 즈음이었다. 전자에 대해서는 소위 구산문 가운데 사굴산문과 가지산문의 선법 및 법계가 주류를 구성하고 있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시기적으로 구분하면 14세기 초반에는 만항(萬恒: 1249-1319)과 충감(冲鑑: 1274-1338) 등 수선사 계통과 혼구(混丘: 1250-1322) 등 가지산문의 계통이 있었고,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와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과 백운경한(白雲景閑: 1298-1374) 등을 통해서 전승되었다.

이들 사이에서 후자에 속했던 태고보우가 원융부(圓融府)를 설치하고 기존의 구산문을 당시에 수입된 임제종지의 기틀을 통하여 통합하려고 했던 시도는 대단히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끝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외적인 측면이던 사회와 정치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선종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뚜렷한 전등 계보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점과 구산문으로 전승된 선법의 색깔이 분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시대부터 비롯된 국내에서 찬술된 전등사서는 5종에 이른다.

첫째로 1372년에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2권이 출현하였는데, 이것은 선종의 전등사서로서 선종 조사 계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둘째로 이 『직지』가 출현한 157년 이후에 『통록촬요(通錄撮要)』 4권(1529)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본래 중국에서 공진(共振)이 찬술한 『조원통록(祖源通錄)』 24권을 송 대의 진실(眞實)이 요약하고 발췌한 것을 바탕으로 다시 조선 초기의 숭묵(崇黙)이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간행한 것이다.

 

셋째로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는 그로부터 159년 이후(1688)에 무학자초(無學自超: 1327-1405)가 전승했던 것을 월저도안(月渚道安: 1638-1715)이 보완한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종파와 법맥을 도표로 그려놓은 절첩본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칠불로부터 인도 및 중국을 거쳐 고려 말기 그리고 조선 초기의 나옹혜근-무학자초를 거쳐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사명유정(四溟惟政: 1544-1610)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도식으로 낱낱이 나열한 부분이고, 둘은 선종오가의 법맥을 요약한 게송 부분이며, 셋은 월저도안 자신의 발문(跋文)이 수록된 부분이다. 내용은 선종오가 가운데 조동종(曹洞宗)을 제외한 4종을 남악의 법계로 포함시키고 있다. 이 점은 선종사에 대한 법맥의 오류로 제기되어 있는데, 이러한 시각은 조선 시대를 관통해온 하나의 흐름이었다.

넷째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源流)』 2권 1책은 조선 후기 영조 시대에 사암채영(獅巖采永)이 찬술한 것으로 1764년에 전주 송광사에서 간행되었다. 이것도 선종의 법맥 상승(相承)에 대한 것이다.

다섯째로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은 금명보정(錦溟寶鼎: 1861-1930)이 찬술한 것으로 가장 최근의 고승전이다. 수록된 내용은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에 대한 기록으로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로부터 송광사 16국사, 태고보우에서 청허휴정 및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로 이어지는 태고 법통의 조선 시대 계보가 포함되어 있고, 송광사에 주석한 나옹혜근과 제자 무학자초 등 나옹계 승려, 그리고 편자가 속한 부휴 계통의 고승들이 중심이다.

이처럼 선종의 전등사서류가 처음에 출현한 이래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존속해온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등법계(傳燈法系)를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불교의 교학에 속하는 어떤 종파보다도 선종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만큼 전등법계는 정법안장과 불조혜명을 계승하는 명분이었고 개별적인 종파를 역사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실제적인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전등 법맥의 상승은 중국 민족의 오래된 정통의 존중 내지 가문의 존속과 계승이라는 대의명분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때문에 정통의 강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방계로 취급받는 부류는 언제나 따돌림을 당하고 오래지 않아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런 점에서 선종에서는 일찍부터 자파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력을 규합하고 대외적으로 명분을 내세우는 수단으로 법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법계를 부분적으로 가감하거나 심지어 날조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하였고, 나아가서 정통의 계승자라는 물증을 새롭게 창조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선종의 역사는 그 세력에 걸맞는 명분을 확고하게 다질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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