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백신) 민족주의만큼 경계해야 할 백신 애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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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백신) 민족주의만큼 경계해야 할 백신 애국주의
  •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 승인 2022.01.01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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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준 칼럼]

작년 이맘쯤 새해 벽두의 세계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코로나 백신개발과 확보 및 접종 우선순위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놀라운 것은 학계에서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나 담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자는 그 당시 ‘접종우선순위 담론’의 지배에 묻힌 ‘코로나 민족주의’, 즉 백신국외반출 금지와 같은 코로나 패권주의를 선도적으로 비판했다. 논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코로나 세계위험사회에서 세계시민주의는 존재하는 않는다는 점이다. 각국 내의 접종 순위만큼이나 북반구와 남반구, 선진국과 저개발국가에서의 '코로나 불평등' 논의가 UN과 EU, 세계보건기구, 코로나 백신 개발 회사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구적 차원의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살릴 수 있고 세계시민주의를 살리고 진정한 지구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코로나 민족주의'에 대한 근본적 전회 없이 세계시민주의, 지구공동체는 추상적 개념놀이에 불과하다.”(코로나 백신 우선 접종 논의와 코로나 민족주의, 대전일보, 2021. 1. 6)

뉴욕 타임스는 2021년 3월 23일자 기사에서 전 세계 백신 생산량의 3/4 정도가 10개국에서만 사용되며 적어도 30개국은 접종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라고 보도하며 백신사용의 집중성, 일방성을 부각시켰다. 국내 매체에서 ‘백신 민족주의’라는 개념어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 이후다. 『총·균·쇠』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국내에서 백신 민족주의의 심각성을 가장 강렬한 술어로 표현했다. 그는 한 달 전인 2021년 12월 4일자 매일경제 칼럼에서 “백신 민족주의는 선진국 자살행위”임을 강조했다. 논자가 1년 전에 제안한 개념인 ‘코로나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볼 때 백신 민족주의는 그의 주장처럼 ‘선진국의 멍청한 자살골’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론적 차원에서나 현실적 차원에서. 코로나는 민족주의, 지역주의, 인종주의, 정치체제를 넘어서 평등하기 때문에 부메랑 효과를 수반한다. 논자가 지켜본 바로는 국내외 NGO 단체나 세계 NGO 기구에서 코로나 민족주의 대한 이론적 대항, 행동주의적 대응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코로나 위험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세계시민사회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셈이다. 아쉬운 점은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분립주의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의 급박성과 자국우선주의 논리가 세계시민사회에 맹위를 떨치기 때문일 것이다. 백신 민족주의는 코로나 세계위험사회에서 하위정치(subpolitics)의 슬픈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위의 문제보다 코로나 생명정치와 시민적 반응과 관련해 논자가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 민족주의만큼이나 무서운 것,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백신 애국주의’라는 점이다. 백신 애국주의를 생산하는 한 축은 방역당국이다. 어제의 것이 되어버린 K-방역 신화와 세계 백신허브 구축이라는 구호형 생명정치의 허허로움을 인지하는 한 방역당국은 방역협조 견인수단으로서 백신 애국주의를 활용할 수 있다. 방역당국은 특수 상황윤리, 공적윤리, 배려윤리, 공동체적 가치 우선론에서 볼 수 있는 술어들을 나열하면서 백신 패스, 실제적 차원의 백신 의무화 드라이브 정책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백신 애국주의를 생산한다. 이와 더불어 백신 애국주의를 생산·유통하는 또 다른 축은 시민 자신들이다. 시민적 차원에서 생산·유통되는 백신 애국주의는 정부의 코로나 생명정치에 대한 긍정적 인식수준,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 자유, 인권, 헌법정신, 백신 부작용 사망 사건에 대한 방역당국의 대응에 대한 인식, 소상공인 등 피해보상 문제, 재난지원금 지금방식과 규모의 적정성 등에 대한 긍정적 평가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점에서 백신 애국주의는 일종의 반응적, 수동적 집단심리 현상이다.  

논자가 볼 때 문제의 심각성은 정치사회 담론 과잉사회이고 수많은 논객들의 ‘말의 공장’이 난립·운영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백신 애국주의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해 비판적 지성은 코로나 생명정치 한복판에서 위세를 넘어 폭력을 행사하는 백신 애국주의를 비판해야 한다. 백신 애국주의의 폭력성은 백신 맹신주의, 백신 패스 소유가 낳는 작지만 특수한 권리의식(나는 어디든 가고 먹을 수 있지) 및 그것과 결부된 미접종자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 기초한다. 이러한 백신 애국주의는 특수한 반응감정과 결합해 행동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백신 애국주의에 내재한 특수한 반응감정이란 무시, 배제, 혐오 감정이며 그 감정의 발산이 곧 폭력이다. 이 특수한 반응감정은 기저질환으로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 불가피한 상황으로 백신접종을 하지 못한 사람, 백신의 자유선택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소극적 자유주의자, 정부의 백신강요나 의무화가 곧 자유의 침해, 특수 상황에서의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침해라는 적극적 자유주의자를 향해서 불신과 혐오, 차별과 배제의 공격적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한다.  

이러한 백신을 맞은 자와 맞지 않은 자라는 진리표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절대 심금으로 주관화하는 백신 애국주의는 명백한 폭력이다. 백신 패스의 무문별한 전면화, 백신 의무화는 백신 애국주의 폭력의 일상화를 가져올 것이다. 백신 애국주의의 폭력성은 선택의 자유, 행위의 자유, 판단과 결정의 자유를 유보하는 듯하지만 ‘예외 상태’를 선포하면서 자유를 포기한다.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자에 대한 배제와 혐오감정에는 동시에 ‘차이’에 대한 원시적 증오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백신 애국주의는 미접종자에게 집단적 동질화를 거부하는 자라는 낙인폭력을 수반한다. 백신 애국주의의 폭력성은 오늘도 접종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면서 미접종자로 하여금 분리와 고립감, 소외의 맛을 보여주려 한다. ‘원시적’이란 그런 의미이다. 

인류는 코로나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한국인도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또 다른 진실은 살아 있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가 ‘자유’라는 사실이다. 선택과 행동의 자유가 없는 살아 있음의 덧없음과 무가치함이 역사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것, 자유가 이성을 가진 존재의 ‘최초이자 마지막 언어’라는 것, 자유의 이름으로 긍정적 접종 애국주의도 인정한다는 점을 백신 애국주의여, 너는 기억하라! 백신 애국주의 신도들이여, 그대들의 찬란함과 우월함은 ‘그대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데 있다.’ 백신을 선택한 자를 환대하며, 자유를 선택한 자를 환대하라. 백신 애국주의여 너의 참 얼굴을 보라. 이제 그대는 미접종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추한 코로나 생명정치의 유혹을 참아내는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환대 받을 얼굴을 가져라, 백신 애국주의자들이여.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교육대학 철학교수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아도르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에서 강의했고 연세대 철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을 지냈다.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한국동서철학회 부회장, 대전인문예술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교수신문, 금강일보 등에서 칼럼을 쓴 바 있고 <대학지성 IN&OUT>의 편집기획위원이며 고정칼럼을 연재 중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전문 연구자로서 연구서인 <부정과 유토피아>(2019), <아도르노의 문화철학>(2007),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론>(2011)을 저술했고 소개서로는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2007), <막스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비판>(2016)을 썼다. 이 밖에 세종우수학술도서와 세종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책을 포함 다수의 인문교양 도서와 공저를 출간했으며 60여 편의 전문 학술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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