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牛視虎步의 원년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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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牛視虎步의 원년이 되길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
  • 승인 2022.01.0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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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2022년 元旦, 문 대통령은 아주 행복한 집권 5년차 새해 아침을 맞을 것 같다. 2021년 마지막 주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무려 47%를 찍었다(전국지표조사 NBS 조사결과). 전날인 12월 29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결과에서도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가 40.2%로 나타났다. 이는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이후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 외에 대구·경북에서 무려 13%나 껑충 뛰었고 20대와 중도층에서도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데 힘입은 결과였다. 문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이 국민의 기대치와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 5인의 임기 5년차 직무에 대한 긍정평가는 10~20%대 — 노태우 12%, 김영삼 8%, 김대중 28%, 노무현 27%, 이명박 23% — 에 머물렀다. 따라서 문대통령의 47%는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높은 국정지지율의 원인으로 지목된 항목은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코로나19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확산세 저지,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의 비호감도와 가족 리스크, 그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문 대통령 집권 5년 간 거의 전무했던 친인척 및 측근비리 등이었다. 

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60%는 박근혜 씨의 사면에 찬성했고 단지 34%만이 반대했다. 나도 찬성 쪽이다. 무엇보다 같이 나이든 여성으로서 초췌하고 앙상해진 전직 여성 대통령이 환자복을 입은 채 휠체어에 실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것을 TV로 계속해서 봐야 하는 심리적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만약 옥중 불상사라도 난다면 우리 촛불시민들이 그의 목숨을 거둔 결과가 되는 것도 께름칙하다. 또 굳이 죄질을 따지자면 12·12군사쿠데타와 5·18국가 공권력 남용이 국정농단이나 뇌물수수보다 수십·수백 배는 더 중한 범죄일 수 있는데 전두환과 노태우는 사면하고 박근혜는 하지 않는 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놀랍게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임기 5년 내내 평균 40% 선을 꾸준히 유지했다. 그뿐 아니라 임기 종료 4개월을 남겨둔 시점에도 레임덕은커녕 갈수록 지지도가 높아지는 기현상을 창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이 수치를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고, 그것을 떠받치는 단단한 뭔가가 있다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일 것이다. 그 ‘단단한 뭔가’는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남북관계 및 통일, 일자리 정책 등 현 정권의 대표 정책 대부분이 매우 낮은 평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동 여론조사에서 긍정평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코로나19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확산세 저지 항목은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정책에 대한 평가가 롤러코스터처럼 매우 불안정한 추이를 보여왔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긍정평가 지지율에 영향력을 미쳤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한편,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의 비호감도와 가족 리스크 항목과 ‘문 대통령 집권 5년 간 거의 전무했던 친인척 및 측근비리’ 항목은 상호 연계된 요인이다. 동시에 이 두 항목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평균 40%의 버팀목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케 하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서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대통령 자신의 높은 도덕성과 심지어 정적들로부터도 ‘점잖다’라거나 ‘신사’라는 평을 듣는 문재인 자신이 주원인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점잖은 신사’ 대통령 문재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여 세계 주요국 정상들로부터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고, G7정상회의를 비롯하여 중요한 외교무대의 귀빈석에 초청되었다. 또한 그가 국가수반이었던 5년 동안 대한민국의 OECD 정부신뢰도는 역대 최고치(2017년 32위 → 21년 20위)를 경신했고, 국제투명성기구 국가청렴도도 사상 최고치(2017년 51위 → 2020년 33위)를 기록했으며, 유럽 반부패국가역량연구센터 공공청렴지수에서도 아시아 1위(2017년 24위 → 2019년 19위)를 달성했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문재인 자신 덕분이라는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5년 전 문 대통령의 한자 이름이 글월 文, 있을 在, 범 寅, 즉 ‘文在寅’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의 ‘점잖은’ 태도나 ‘신사’ 이미지와 더 잘 어울리는 한자어는 분명 ‘仁’일 텐데 실제는 그게 아니고 ‘寅’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5년간 나름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동의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는 문 대통령은 마치 ‘글 속에 갇힌 호랑이인 양’, 범의 위용은 있으되 싸우지 않고 虎視牛步하는 지도자이다. 세칭 ‘사이다’가 아니라 ‘고구마’라는 별명에 걸맞은. 

아마도 이런 개인적 특성이 정치권의 거친 언사, 쌈박질, 이전투구에 신물이 난 우리 국민 40%로부터 흔들림 없는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주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 본인의 도덕군자 같은 무던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요지부동인 그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는,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답답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볼멘소리를 듣는 근본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20대 대선국면에서 ‘사이다’ 후보들이 선전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바야흐로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한 역학자에 따르면, “임인년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새 판을 짤 수 있는 복 받은 해”인 동시에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매사를 더 숙고하고 더 조심해야 하는 해”(송인창 대전대 명예교수)라고 한다. 누가 20대 대통령이 되든 소의 느린 걸음으로 주변을 두루 살피고 범의 기백과 영민함으로 국격 상승과 국운 융성의 기회를 기민하게 낚아채는 우시호보(牛視虎步)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읽기』, 『시민사회』,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책임과 판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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