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해, 대선정국을 이끌어가는 교수사회의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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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해, 대선정국을 이끌어가는 교수사회의 각성
  • 임재해 안동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1.0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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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며느리가 호랑이를 뱄다네!” 친구의 말에 깜짝 놀라서, “며느리가 호랑이를 배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얼마 전에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네. 올해 임신을 했으니 새해에 출산을 하면 호랑이띠 아기를 낳지 않겠는가. 그러니 호랑이를 밴 셈이지.” 호랑이를 잉태했다는 말에 놀라서 반문했던 친구도 이내 수긍이 가는 듯 “맞네, 호랑이를 밴 것이 틀림 없구만! 축하하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임인년 호랑이띠 해를 앞두고 며느리 임신 소식을 자랑하는 이야기이다. 새해에 낳게 될 호랑이띠 아기를 두고 아예 호랑이를 밴 것처럼 은유해서 말하는 바람에 친구에게 상당히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아무개 댁 며느리가 호랑이 뱄다’는 소문이 동네에 좍 퍼지기까지 했다. 이처럼 같은 말을 해도 호랑이로 은유를 하면 더 설득력이 크다. 따라서 소띠나 토끼띠 해와 달리 호랑이띠 해는 상징성이 더 크게 다가온다. 특히 임인년 새해는 대선을 앞둔 까닭에 호랑이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호랑이는 맹수이면서도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존재처럼 친근하다. 옛날이야기에 호랑이가 곧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울 적에...”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주 오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래된 것은 17세기 초이다. 따라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그리 오랜 옛날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까마득한 옛날처럼 여기는 것은 담배의 전래 시기는 따지지 않은 채, 호랑이가 사람처럼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니 아주 오랜 옛날일 것으로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호랑이는 상대적으로 화제를 독점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힘은 권력에서 비롯된다.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서 권력의 상징 구실을 한다. 요즘은 대선후보들이 곧 최고 권력이다. 따라서 호가호위(狐假虎威)처럼 행세깨나 하는 이들은 대선후보 캠프로 몰려가 권력의 위세를 누리려고 앞을 다툰다. 따라서 캠프 내부의 권력 충돌도 어느 때보다 커서 바람 잘 날이 없다. 정치꾼들이야 으레 그렇더라도, 권력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할 교수들까지 캠프에 다투어 합류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후보 관련 비리를 옹호하는 일에 나서서 방패막이 노릇하는 교수들을 보면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호랑이 이야기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연암의 「호질」이 압권이다. 「호질」에서 호랑이는 선비 행세를 하는 ‘북곽’ 선생을 앞에 놓고 인간의 온갖 잘못을 질책한다. 북곽은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선비인데 속셈은 딴판이다. 밤에 몰래 과부 ‘동리자’를 찾아 수작을 부리다가, 아버지가 서로 다른 다섯 아들에게 들켜서 줄행랑을 놓는다. 바삐 도망가다가 똥구덩이에 빠져서 간신히 머리를 내밀어 보니 호랑이가 떡 버티고 앉아서, ‘참으로 구린 인간이 선비’라고 하며 행실 더러운 북곽을 외면한다. 그러자 선비는 거듭 절하며 호랑이의 덕을 칭송하고 “천한 신하로서 감히 범님의 다스림을 받고자 한다”고 아첨한다.

“네가 평소에는 세상의 온갖 나쁜 이름을 끌어 모아 제멋대로 내게 갖다 붙이더니, 지금은 서둘러 면전에서 아첨을 늘어놓으니 그따위 말을 도대체 누가 믿겠느냐” 하고 꾸짖는다. 교수들이 대선후보라는 미래 권력 앞에 아첨하며 부하를 자처하는 작태를 나무라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 학계나 법조계, 언론계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인사일수록 권력에 줄 서는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한다. 나름대로 줄을 섰는데도 챙겨주지 않으면 삐쳐서 등을 돌리고 과도한 역공을 일삼기도 한다. 좌우 진영을 오가며 일관되지 않게 정치비난을 일삼는 일부 교수들의 철새 행각이 그러한 작태이다.

「호질」의 북곽 선생처럼 호랑이 권력 앞에서 절절 매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호랑이 권력 앞에서 당당한 인간도 있다. ‘10인 고개’ 전설의 주인공이 보기이다. 10인 고개는 열 사람 이상 모여서 넘어가야 무사한 고개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넘다가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굶어죽을 처지여서 길을 나선 행인이 10인 고개에 이르자, 먼저 온 사람들이 10 명이 될 때까지 기다려서 함께 가야 한다고 말렸다. 그러나 행인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며 혼자서 고개를 넘어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가 나무 밑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를 바라보기만 할 뿐 잡아먹으려들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긴 행인이 호랑이에게 따졌더니, ‘당신은 사람이기 때문에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는 여기 앉아서 지켜보라며 자기 눈썹을 하나 빼주었다. 행인이 호랑이 눈썹을 자기 눈에 대고 보니까, 10사람이 걸어오는 가운데 사람은 한두 명이고 대부분 짐승으로 보였다. 호랑이는 10명의 무리 중에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누구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 앞에서 감히 살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모습만 사람일 뿐 진짜 사람은 10명 가운데 한두 명 뿐이라는 말이다. 사람이기만 해도 호랑이는 그 앞에 모습도 드러내지 않으며 삼가기 일쑤이다. 지체나 빈부와 상관없이 사람을 두렵게 여기는 것이 호랑이다. 호랑이는 북곽 선생처럼 명망 높은 선비인 체 하는 인간에게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행인처럼 순수한 사람 앞에서는 오히려 몸을 사리는 존재이다. 권력의 생리도 호랑이의 양면성을 지녔다. 

대선후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잘난 체하며 자기 앞에 줄 서는 자들이 아니라, 떳떳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예사 국민들이다. 대선후보에게 줄선 자들은 스스로 잘난 체 으스대다가도 권력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부하 노릇을 자처하기 일쑤이다. 자기네들끼리 캠프에 모인 사람들을 일컬어 ‘파리 떼’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멍청한 대선후보라도 자기에게 비굴하게 구는 사람을 두려워 할 까닭이 없다. 대선후보가 진짜 무서워하는 것은 예사 국민들이다. 국민들의 여론과 투표권이 두려워서 머리를 조아리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문제는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서 맹목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에 줄을 서서 파리 떼 노릇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 탓에 권력은 더욱 거들먹거리며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다. 권력의 횡포를 막는 길은 권력에 줄을 서거나 진영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한 표를 떳떳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예사 시민들도 이러해야 마땅하거늘 교수들이 캠프의 파리 떼 노릇을 해서야 똥구덩이에 빠진 북곽 선생이나 뭐가 다른가.

임인년 호랑이띠 해는 대선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게 될 것이다. 지금도 모든 화두가 대선후보의 언행에 집중되고 있다. 여야 후보들의 날선 대립이 정책 제안이나 논쟁적 토론보다 흠잡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상대방의 흠집은 들추고 자기 부정과 비리를 덮어버리는 일에 여념이 없어서 역대 최악의 선거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새해의 대선결과는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결과에 따라 호랑이 등을 탄 격이 될 수도 있고, 호랑이 눈썹으로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게 될 수도 있다. 호랑이 등을 한 번 타게 되면 내릴 수 없는 치명적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호랑이 눈썹의 혜안을 얻으면 진실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 둘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호랑이 해의 현실이다. 

결과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대선후보들의 흑색선전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을 차려서 선거 국면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자면 교수들은 비정치적이면서 또한 매우 정치적일 필요가 있다. 어느 진영에 끼어들어 이권을 챙기려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정치적이어야 하지만, 국민들이 선거 국면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정치적이어야 한다. 교수 단체는 각 후보들의 정책을 분석하고 대조하여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활동이 긴요하다.  

교수 단체에서 대학 교육과 학문 정책을 직접 수립하여 발표하고 후보들이 공약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활동도 벌여야 한다. 대선후보 중심으로 전개된 흑색선전의 대선판을 교수 중심의 정책 토론판으로 바꾸어내는 것도 교수들의 몫이다. 대선후보들이 정책토론을 기피하면 교수들이 나서서 각 후보들의 정책을 두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야 민주주의가 성숙된다. 정책 분야에 따라 관련 전공교수 집단에서 후보자를 불러 초청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정책토론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바람직한 기획이다. 교수들이 정책 분석 활동을 벌이고 생산적 토론을 이끌어가게 되면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고 여론 지형도 건강하게 바로잡힐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거꾸로 가고 있다. 박사학위논문 표절 시비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침묵하는 것을 보면 대학은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 엉터리 이력서를 받고 강사나 겸임교수를 채용하는 대학의 부조리는 교수들이 학생들 앞에서 얼굴 들고 강의하기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런 문제에 속수무책으로 있는 한 교수사회는 한갓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야말로 지금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성찰적 각성이 시급하다.  

임인년의 대선 국면에서 교수들의 학문적 비판의식은 특히 깨어 있어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교수 집단을 가장 두려워하고 교수들의 학문적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정국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힘은 학문적 역량으로부터 나온다. 호랑이가 북곽 선생을 꾸짖으며 인간들을 나무라는 힘도, ‘세상 만물은 모두 대등하다’는 학문적 통찰력에서 비롯되었다. 새해에는 교수들이 호랑이 눈썹을 달고 학문적 혜안의 분별력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임재해(林在海) 안동대 명예교수·민속학

영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로 있는 동안 민속학연구소장, 박물관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하고, 실천민속학회장, 한국구비문학회장, 비교민속학회장,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장 등의 학회활동을 했다. 현재 민속학과 명예교수,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공동대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사 일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속문화를 읽는 열쇠말』,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 『마을문화의 인문학적 가치』, 『고조선문화의 높이와 깊이』, 『고조선문명과 신시문화』 등 33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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