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을 대중 예술의 프리즘으로 통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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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을 대중 예술의 프리즘으로 통찰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2.2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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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으로 바라보는 재난의 현대사: 역사 속 타자들 | 김은혜·유인실·이숙·최은영·최정 지음 | 신아출판사 | 327쪽

 

이 책은 신진 여성문학연구자들이 모여 만든 독립연구집단 ‘지식공동체 지지배배’의 연구 성과이다. 재난의 현대사라 할 만한 한국 역사 속에서 재난이 만들고 역사가 잊은 존재들을 시,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범주를 넘나들며 문학과 대중서사 속 재현물을 통해 호명하고, 연구자의 해석과 담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필자들은 재난문학에서 비어 있는 역사에 주목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주체와 가치, 양식들이 문학 바깥에 배치되는지를 예술적 해석을 통해 규명한다. 또한 재난 ‘이후’ 사회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과 이 시대 필요한 공동체적 윤리의식을 통해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원리와 질서가 남성 중심적이었다는 사실과는 별도로 세대와 성별을 불문하고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일임을 비판적으로 담론화한다.

재난은 우리로 하여금 그동안 우리 사회의 지배 질서에 대해 근본적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단선적인 기준에 의해 기록된 지배 담론의 불균형성이 낱낱이 밝혀지지만 일상은 여전히 견고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래도 현대사회를 규정할 굵직한 키워드로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재난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역사상 엄연히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탈역사화 되고 탈맥락화된 역사 속의 타자들에 대한 역사적 호명 작업은 어느 한 개인의 탁월한 성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각의 장르에서 재현된 역사 속 타자들에 대한 각기 다른 연구 분야를 잇고 그 영역을 확장하고, 그리하여 대중과 함께 분유하고자 하는 이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좀더 내실 있는 연구 성과물이 되어 비어 있는 역사를 채워 넣고, 사회의 의식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로서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책머리에’는 총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출판과 기획 의도를 담은 부분이다. 일제강점기를 비롯하여 오늘날 코로나19 등 감염으로 인한 재난의 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재난이 만들고 역사가 잊은 존재들을 왜 호명하고 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안내한다.

‘전쟁과 디아스포라’에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부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한국이 경험해야 했던 전쟁과 그로 인한 내외적 폭력의 경험이 남긴 국가적 폭력과 그로인한 이데올로기가 낳은 역사적 존재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살핀다. 논의의 과정에서 부상하는 재현의 주체는 ‘고려인’, ‘재일한인’, ‘재한일본인처’, 미망인’ 등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모두 20세기 한국이 경험해야 했던 전쟁이라는 국가적 폭력과 그로 인한 이데올로기가 낳은 역사적 존재들이다. ‘전쟁과 디아스포라’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온몸으로 체현한 역사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대문자 역사 안에 포섭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역사의 변방에 머물렀던 주변부 존재들. 이들이 경험해야 했던 역사적 폭력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못한 채 세대를 전유하여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분단과 반공, 독재 그리고 산업화’에서는 산업화 시대를 지나 19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갈등 속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살핀다.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강박된 사회 현실 속에서 성장 위주의 산업화의 폐해는 격화되면서 주류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실향민, 호스티스, 여공, 도시빈민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배제되었다. 

‘사회적 참사와 트라우마’에서는 일제강점기 때의 원자폭탄 참사, 1990년 이후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등의 사회적 참사에 주목한다. 비극적 사건의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를 재현한 문학 작품을 통해 고통의 기억을 상기하고 예술적 치유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재난 ‘이후’, 은유되는 미래의 타자들’에서는 코로나19시대 이후 맞닥뜨린 피할 수 없는 사회생태적 위기를 진단하고 재난을 무사히 통과하고 극복하기 위한 인문학적 사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3부까지는 기존의 재난과 재난이 만들고 역사가 잊은 존재들에 주목했다면, 4부에서는 현재의 재난을 진단하고 미래에 출현할 타자들을 예측하여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감염의 불안과 공포의 현재성’에서는 편혜영의 소설 〈아오이가든〉(2005), 『재와 빨강』(2010), 김숨의 소설 〈질병통제센터〉(2005)에 재현된 불안과 공포에 살피면서 감염자(확진자)/비감염자, 격리자 등 팬데믹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타자들에 주목한다. ‘혐오의 시대를 뚫고 나온 ‘이상한’ 몸’들에서는 『우리는 농담이(아니)야』와 같은 동시대 퀴어 연극을 분석하고 미래의 타자로서 ‘퀴어(queer)’에 주목한다. ‘새로운 생명의 출현’에서는 영화 〈승리호〉(2021) 등을 통해, 좀비, 괴물, 사이보그와 같은 새로운 타자가 포스트휴먼으로서 인간과 공존해야 할 대상임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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