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태학적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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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생태학적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
  • 이동후 인천대학교·미디어생태학
  • 승인 2021.12.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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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미디어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이 되었는가: 미디어 생태학적 통찰』 (이동후 지음, 컬처룩, 360쪽, 2021.11)

 

해마다 연말이 되면 신년의 사회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서점의 가판대에 올라온다. 올해의 책들은 메타버스,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을 화두로 꺼내며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꿔놓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 미디어 기술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며, 다가올 미래 세계의 인재를 키우기 위한 기술 기반 교육 과정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비대면 원격기술, 데이터 기술을 비롯한 각종 디지털 미디어 기술은 현재의 문제에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을 준비하는 핵심 대책이 되고 있다. 각종 기술과 기법이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희망찬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여기는 기술해법주의가 사회 담론에 폭넓게 퍼져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활용은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혹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성장을 지속해가기 위해, 새로운 기술은 마법의 지팡이가 되고, 반드시 수용해야 할 대상이 된다. 한창 개발되고 만들어지고 있는 기술이 이미 최종적으로 결정된 현실로 이야기되고, 사회는 이를 토대로 대응책을 마련하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과연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삶의 번영을 가져오고 있는가?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미디어와 함께 보내며 허위 정보와 상품 정보를 포함한 온갖 정보의 흐름에 지속해서 주의를 빼앗기고 빅테크와 온라인 플랫폼 업계는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는데, 이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했던 기술적 비전인가?

 

우리 사회의 미디어 기술 관련 담론에서 기술은 특정 목표를 수행하며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독립적 객체로 가정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도구적 기능을 근거로 그것의 효과와 혜택,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예단한다. 하지만 기술을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중립적 도구나 우리와 분리된 독립적 대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의 효과에 관해 부분적으로만 알게 된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미디어 기술의 효과는 반드시 발명가의 의도나 기술의 기능에 따라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인쇄술은 신앙을 위해 성경을 필사하던 수도사의 수고를 덜어주고 정보를 대규모로 재생산하기 위해 발명되었지만, 원래의 종교적 의도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과학 혁명, 종교 개혁 등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을 만들었다. 또한, 장소에 상관없이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화하는 것을 돕기 위해 개발되었던 이동 전화와 이후의 스마트폰은 오히려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을 꺼리게 하고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시선은 스크린으로 향하게 하는 ‘함께 하면서도 따로 있는’ 기묘한 상황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페이스북과 같은 전 지구적인 소셜 미디어는 사회적 연결성을 통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고 콘텐츠 창작자가 될 수 있는 민주적 도구 제공을 약속을 했지만, 지속적인 주의 끌기 자체가 목적이 되어 선동을 방조하거나 정보 편식의 필터 버블 현상을 가져왔고, 사용자의 모든 활동을 이윤 창출의 데이터 객체로 만들며 감시자본주의에 일조했다. 그동안의 미디어 기술 역사를 볼 때, 미디어 기술은 단순히 인간이 활용하고 통제하는 대상이나 인간에게 축복만을 가져오는 도구, 혹은 정반대로 인간을 위협하는 악마의 얼굴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미디어 기술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해 살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나머지 기술이 갖는 복합적 측면이나 함의를 짚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미디어 기술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이 아닐까 한다. 미디어 생태학은 미디어를 환경으로, 환경을 미디어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1968년 미국 영어교육자협의회 연례학술대회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했지만, 이것은 그가 창안한 이론이라기보다는 미디어, 기술, 상징적 형식, 커뮤니케이션, 의식, 그리고 문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학자들의 느슨한 지적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시각이다. 포스트만 스스로도 자신이 그 분야를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름만 붙였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동안 여러 학문 분야에서 언어와 문화, 미디어와 문화, 미디어와 인간 등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왔던 학자들을 ‘미디어 생태학자’라고 불렀다. 원래 생태학은 집안 살림을 뜻하는 oikos와 학문을 의미하는 logos의 합성어로, 유기체와 환경 간, 혹은 유기체와 유기체 간의 생리적, 행동적, 물리적 반응과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학제적 학문 분야이다. 미디어 생태학은 1960년대 전후 다양한 분야에 생태학에 관한 관심이 확산되던 시대적 맥락을 배경으로 ‘환경으로서의 미디어’의 영향력을 주목했던 북미 학자들을 중심으로 가시화되었다.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상징적, 기술적, 생물-물리적 조건, 즉 ‘인간의 조건’이 어떻게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매개하고 구성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전통적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문 분야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채널이나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신문, 잡지, 책 등과 같이 특정 유형의 내용을 담아내는 대중매체 혹은 언론으로 다뤄져왔다. 하지만 미디어 생태학은 미디어를 환경으로 이해한다. 미디어 생태학에서의 미디어 개념은 텔레비전이나 소셜 미디어와 같이 콘텐츠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언어와 상징 시스템, 인간이 만든 각종 인공물과 기술, 그리고 모든 물리적, 유기적 메시지 체계 등 인간의 모든 환경적 조건을 포괄한다. 

<미디어는 어떻게 인간의 조건이 되었는가: 미디어 생태학적 통찰>은 초기 미디어 생태학자들이 공유했던 주요 개념이나 명제들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갖는 통찰력을 짚어보고자 했다. 대표적인 미디어 생태학자인 마샬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자신이 헤엄치는 물을 의식하지 못하는 물고기’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이 자기 삶의 환경으로서의 미디어를 잊고 지내고 그것의 사회적 정서적 효과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의 신기함에 놀라고 낯설어하지만, 정작 그것이 일상에 활용되고 자신의 경험에 배어들 때면 미디어의 ‘비가시적인 배경 원칙’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미디어 기술의 기능적 효과나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의 영향력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도, 우리 삶의 조건을 바꾸고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는 미디어 환경과 이것의 기술-이데올로기 체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환경으로서의 미디어를 의식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그 이유는 미디어 기술의 구축 및 작동과정이 ‘블랙박스’처럼 가려져 있어 파악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이 그것으로 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에 쏠리면서 그것의 체화 혹은 매개화 과정이 의식의 배경으로 물러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미디어 기술을 이용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의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미디어 생태학에 따르면, 미디어는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효과가 나타나는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 이해, 경험 등을 특정하게 구조화하는 ‘편향성(biases)’을 띠고 있고, 우리가 도구를 만들고 쓰는 동안 이러한 도구에 의해 우리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인간의 주체성은 기술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나오면서, 우리는 편리함을 가져오고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도구를 하나 더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화 과정과 동시다발적으로 연결된 기술 동학에 따라 우리의 실존 조건이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인쇄술, 텔레비전, 인터넷 등의 등장은 사회에 정보와 오락을 전달하는 미디어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이나 문화적 경험 양식 전반에 생태적 변화를 일으킨다. 

미디어 생태학은 급변하는 미디어 기술 환경에 압도되어 쫓아가기 바쁜 우리가 놓치거나 간과하는 시각을 제시한다. 미디어 생태학자들은 우리가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거대한 에너지 소용돌이’에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그것의 구조적 패턴과 구속력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도구주의적 접근이 그것의 효과를 단편적으로만 인지할 뿐 기술과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얽히면서 나타나는 다면적인 양상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개별 미디어의 형식적 특성과 편향, 미디어 간의 관계와 체계의 특성, 미디어와 인간 혹은 문화의 공생 관계 등을 미시적 혹은 거시적 수준에서 살펴보고 통시적이고 전체론적 시각에서 이해해 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은 미디어와 깊숙이 결합된 우리 삶의 조건을 성찰해볼 것을 권유하는 동시에,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기술(art)’을 탐구하고 실천해 보라고 한다. 

미디어 생태학적 시각에 따르면, 미디어 환경이 미래를 주도하는 동력으로 신성화될수록 그리고 그것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고 여겨질수록, 그것의 도구적 활용에 매달리고 경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며 이것이 가져오는 생태학적 변화가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그동안 비가시적이었던 우리 삶의 조건의 민낯, 즉 자연 생태계에 대한 무분별한 파괴와 약탈, 현대적 기술-이데올로기 체제의 한계를 마주하는 일종의 ‘계시의 순간’을 가져오면서 우리 삶의 자연-사회-기술이 얽힌 존재론적 조건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디어 생태학은 이러한 계시를 사유의 중심에 가져놓는다. 기술 혁신과 발전이 사회적 진보를 가져온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기술이 ‘할 수 있는 것’ 중심의 접근을 하는 대신, 자연 생태계-인간-젠더-기술의 상호 관계와 의존성과 이와 관련한 다양한 취약성의 문제에 주목한다. 또한, 미디어 기술의 활용 차원을 넘어, 미디어와 도덕적, 윤리적 경험의 관계를 살피는 미디어 생태윤리, 약이자 독이 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의 ‘건강함’과 균형의 문제, 미디어 환경을 인식하는 실천 방법으로서의 ‘반환경(anti-environment)’의 모색 등에 관심을 가진다. 이 책은 미디어 생태학자들이 보여준 통찰력을 강조하며 국내 상황에서 미디어 생태학적 탐구를 함께 해갈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동후 인천대학교·미디어생태학

인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뉴욕대학교 미디어생태학 프로그램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디어생태학 이론과 ‘뉴미디어’ 문화를 연구하고 있으며, 인간·미디어, 문화·미디어 관계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 『모바일미디어환경과 인간』, 『월터 옹』, 『커뮤니케이션학의 확장』(공저), 『모바일과 여성』(공저), 『미디어 생태이론』, 『지금, 여기, 여성적 삶과 문화』(공저), 『TV 이후의 텔레비전』(공저), 『SNS 혁명의 신화와 실제』(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미디어 생태학 사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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