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그 후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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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그 후 60년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
  • 승인 2021.12.2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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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펜실베이니아 여대’에서 수학하던 중 문학에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해양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37년부터 1952년까지 미국 어류·야생동물국에서 해양생물학자로 근무했으며 이후 글쓰기에 전념하였다. 카슨은 시적인 산문과 정확한 과학지식을 결합한 글을 썼는데 1955년에 <바다의 가장자리>를, 그리고 1962년에 <침묵의 봄>을 출간하였다. <침묵의 봄> 출간은 살충제와 제초제의 광범위한 사용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전 세계의 환경 전문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카슨의 주장 핵심은 ‘자연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침묵의 봄>이 출간되기 전에는 환경에 대한 대부분의 공적 대화는 보존이라는 용어의 틀에 갇혀 있었다. 즉, 동물의 서식지는 국립공원을 조성하여 보존하고 멸종 위기 종은 동물원에서 사육한다는 개념이었다. 

카슨의 접근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구시대적인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곤충과 잡초를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카슨이 <침묵의 봄>을 저술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던 시대에 생태학이나 환경과학은 그 지위나 지원이 보잘 것 없었으며, 생태학이 무엇인지 아는 대중이 거의 없었다. 당시 과학은 분자혁명의 성공에 도취되어 물리학과 화학이 생물학의 근본이라 생각했다. 나라의 번성과 안위를 위해 미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큰 의미를 부여하였고 과학에는 실수가 없다고 맹신하였다. 당시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유세계의 구세주이자 번영의 신탁자로 숭배 받았다.

<침묵의 봄>에서 카슨은 이들 전문가들을 공적 검증의 장으로 끌어냈다. 이런 면에서 <침묵의 봄>은 단순한 생태학적 경고만 다룬 게 아니라 전후 과학의 온정주의에 대한 습격이었다. 카슨은 허킨스(Olga O. Huckins)가 1958년 1월 그녀의 농장 주위에서 모기를 죽이기 위해 공중살포한 DDT에 의한 새의 죽음을 설명하는 편지를 ‘보스턴헤럴드지’에 보낸 사본을 받으면서 <침묵의 봄>을 저술할 동력을 얻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키이츠(John Keats)의 “호수의 풀들은 시들었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네”라는 행이 들어있는 <잔인한 미녀>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침묵의 봄>은 국가 차원에서 농업 목적의 DDT 사용을 금지시켰으며, 미국 환경보호청의 설립을 이끌었다. <침묵의 봄>을 통한 카슨의 경고는 화학 살충제의 남용, 과학의 책임, 기술진보의 한계에 관한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지구의 벗들’과 ‘그린피스’가 <침묵의 봄> 출간에 자극받아 조직되기도 했다. 

 

                 레이철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년 5월 27일 ~ 1964년 4월 14일)

카슨의 경고는 DDT와 그 유사 화학제품에 의해 가해진 위협이라는 관점과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험 모두에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카슨은 “바다는 육상의 공포를 증언하고 있다”고 말한다. 토양에서 씻겨나간 화학물질들은 지류와 강으로 흘러든 다음 궁극적으로 해저에 축적된다. 그러나 해저에 사는 패류와 저서어류를 포획하기 위해 저인망 어선이 해저를 지속적으로 교반하는 관계로 DDT를 포함한 독소들은 끊임없이 물속에서 섞인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종자소독에 쓰이는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꿀벌의 군락 붕괴 질병과 관련이 있다. 그러기에 카슨은, “화학전쟁은 결코 이길 수 없고 모든 생명체는 폭력적 협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화학약품에 의한 ‘죽음의 엘릭서즈(elixirs of death)는 그들의 표적인 해충과 잡초뿐 아니라 물, 토양, 식물, 동물과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침묵의 봄>을 관통하는 두 가지 주제 중 하나는 DDT 같은 살충제의 무차별 사용에 의한 잠재적인 생태학적 그리고 인간의 손상이 매우 명백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호 의존하는 ‘먹이사슬’에 관한 문제이다. 카슨은 인간의 분별없는 간섭이 자연 세계에 끝없이 손상을 입히는 사례를 가슴 아프게 서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카슨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행할 당시 전염병이 심각하게 퍼진 상황보다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더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그때 온갖 병원체가 가득한 것처럼 오늘날 세상에는 발암물질이 가득하다. 그 당시 문제는 인간이 병원균을 퍼트린 탓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발암물질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바로 인간이므로 원하기만 하면 그 위험물질의 상당수를 제거할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곤충은 자신에 대한 화학적 공격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것이 자연선택이고 돌연변이에 의한 진화를 의미한다. 오늘날 다윈이 살아 있다면, 적자생존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인상적으로 증명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곤충들은 살충제에 신속하게 적응하여 더 많은 숫자로 되돌아오는데, 자연계에는 자연선택을 통한 적응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생태학의 시초가 될 만한 관찰이 기록되어 있다. 다윈은 식물과 동물이 어떻게 복잡한 그물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설명하였다. 다윈은 ‘관계의 복잡한 그물’을 보여주기 위해 클로버와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다윈은 클로버에게 수분이라는 이익을 제공하는 벌의 존재를 관찰했다. 다윈은 벌들이 멸종된다면 클로버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윈은 또한 들쥐의 개체수와 들쥐의 공격에 의해 감소된 꿀벌집 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하였다. 그는 들쥐의 개체 수는 주로 고양이의 수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다윈의 관찰에 따르면, 꿀벌집 수는 들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숫자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고, 이런 관찰을 확장시켜 그는  클로버의 풍부도를 고양이의 숫자와 결부시켰다. 많은 수의 고양이가 존재하면 쥐의 간섭을 통해 그리고 결국 벌에게 영향을 미쳐 특정 지역에서 특정 꽃의 존재 빈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다윈의 ‘관계의 복잡한 그물’ 논조에 비해 카슨은 ‘내일을 위한 우화’에서 한 생명체가 전체 생태계를 관통하여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과 사망 같이 동물과 인간에게 타격을 주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상처 입은 명금류는 침묵을 지키고 닭은 불임 상태의 알을 낳는다....‘내일을 위한 우화’에서 카슨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목가적인 낙원을 그렸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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