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매체의 독자 참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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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매체의 독자 참여 제도
  •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 승인 2021.12.2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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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칼럼]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는 독자의 존재 없이는 존립할 수 없으므로 독자를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자투고, 현상문예, 신춘문예 등의 독자 참여 제도를 들 수 있다. 독자투고는 독자들에게 지역 소식, 전설, 속담 등 비교적 간단한 원고를 받아 신문에 게재하였다. 독자투고는 일방적인 수용자에서 발화의 주체로 변모하는 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상문예는 현상금이라는 유인책을 제시하되 응모규정을 강화하여 독자투고에 비해 전문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현상문예는 근대 초기 문학장르의 정착 및 확산에 큰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문단에서 활약할 작가들을 발굴함으로써 근대 문인의 예비적 장소로 기능하였다. 신춘문예는 당선 여부에 따라 독자를 작가로 공인하는 제도로, 독자의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춘문예는 매년 정례적으로 시행되어 신인 작가를 배출하고 당선작을 발표하는 등 근대문학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처럼 독자 참여 제도는 근대적 문학양식의 실험 및 보급, 문학 창작층의 확대, 신인 작가의 배출 등 여러 방면에서 근대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아일보』는 조선 민중의 표현기관을 자처하며, 문화운동의 선전기관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3.1운동 이후 총독부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처럼 선전하였다. 하지만 『동아일보』만 하더라도 4차에 이르는 정간 조치와 1940년의 강제 폐간이 보여주듯이, 총독부는 신문에 대한 검열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갔다. 『동아일보』는 이러한 총독부의 언론 통제에 대해 문예면의 개설 및 증면으로 대응하였다. 문예는 비정치적인 영역에 속해 있어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민중 계몽에도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독자 참여 제도는 신문 지면에서 문예면이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

‘독자문단’은 『동아일보』가 문예물을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독자투고이다. 독자투고는 계몽의 대상에서 발화의 주체로 변모하는 독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독자문단’은 1차 정간 이후 신문이 속간되며 등장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독자문단’은 독자들의 직접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독자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문단’은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산문보다는 운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운문 장르가 주로 개인의 정서를 담아내었다면, 산문 장르는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독자문단’에 수록된 산문은 1920년대 산문 양식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독자문단’ 신설 초기에는 전문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문예물에 대한 이해를 돕고, 문학 장르에 대한 학습을 유도하였다. 즉 ‘독자문단’은 독자가 전문작가의 작품을 통해 문학적 글쓰기를 학습하는 일련의 재생산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문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자들 중에는 이후 문단에서 활약하게 될 조운, 김명호, 한설야, 유도순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독자문단’이 일종의 ‘근대 문인의 예비적 장소’였음을 의미한다.

‘동아일보 발행 일천호 기념 현상’은 문예면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해당 현상문예의 시행 결과, 매주 일요일마다 독자들의 작품을 발표하는 ‘일요호’가 신설되며, 이후 ‘월요란’을 거쳐 ‘문예란’으로 정착하기 때문이다. 이는 비상시적으로 시행되던 문예 기획이 상시적인 문예면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 참여 제도가 문예면의 정착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음을 증명한다. ‘독자문단’을 시행하면서 독자들의 문학 창작 가능성에 확신을 가진 『동아일보』는 모집 부문을 대폭 확대하여 현상문예를 시행하였다. 신문사의 대대적인 홍보, 고액의 현상금, 독자들의 투고열 고조, 독자 참여 제도의 정비 등으로 인해 현상문예는 성공적으로 시행되었다. 현상문예는 지면 제한에서 자유로워짐에 따라 ‘독자문단’에 비해 운문과 산문의 비중이 비슷해졌다. 현상문예의 모집 부문별 당선작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는 조선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아 민족지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총독부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다룸으로써 『매일신보』와의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상문예 당선자 중에는 다른 모집 부문에 중복 당선되거나, ‘독자문단’에 참여했던 독자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독자’의 발견은 이후 신춘문예 시행의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현상문예를 시행하면서 독자들의 글쓰기 욕구와 문학적 글쓰기의 잠재력을 확인한 『동아일보』는 신춘문예를 시행한다. 단편소설 당선작은 노동자나 농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실제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 등 현실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이는 식민지 삶의 실상을 고발함으로써 신문사가 전개한 문화운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신춘문예 시행 첫해부터 문예계, 부인계, 소년계 등으로 독자의 층위를 구분하여 작품을 모집하였다. 이는 여성과 아동이라는 새로운 독자층을 발굴하여 가정란과 아동란을 신설했던 매체의 지면혁신 정책과 연계된 작업이자, 이전 시기 독자 참여 제도의 전통을 계승한 결과였다. 동화는 바람직한 아동상을 제시하여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아동들을 계몽하였으며, 작문은 습작을 통한 조선어 글쓰기의 보급 및 아동 계몽을 목적으로 시행하였다. 신춘문예는 각 장르별 당선작과 함께, 당선작에 대한 심사평인 선후감도 공개하였다. 선후감은 당선작 선정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독자들은 선후감을 통해 문학 창작 이론을 학습하고, 작품에 대한 비평적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이처럼 신춘문예는 문학 창작층의 발굴 및 확대에 기여하는 동시에 독자들의 문학 이해 수준을 높여줌으로써 문단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은 이후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함으로써 조선 문단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손동호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국문학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연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논저로는 『근대지식과 ‘조선-세계’ 인식의 전환』(공저), 『20세기 전환기 동아시아 지식장과 근대한국학 탄생의 계보』(공저), 『텍스트로 보는 근대 한국』(공저), 『만세보 논설 자료집』, 『근대 신춘문예 당선 단편소설 조선일보 편』, 『『동아일보』의 독자참여제도와 문예면의 정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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