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가를 평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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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를 평가하라!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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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직설] 변기용의 ‘우문현답’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해방 이후 지난 70여 년간의 압축적 고등교육체제 팽창 과정에서 배태되었던 각종 구조적 모순들이 2010년대 이후 학령인구의 본격적 감소와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가히 고등교육 분야의 ‘IMF 위기 상황’이라 할 만하다. 위기 상황에 서 반드시 필요한 거시적 구조 조정과 개별 대학의 체질 개선을 위해 정부의 적절한 정책적 개입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 대학 운영의 모든 측면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육부의 대학평가는 이런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정부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 어디인지, 어떤 시점에 어떠한 수단과 범위로 개입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위기상황일수록 그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교육부 대학평가는 위기시대에 요구되는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 현장의 교수들과 전문가들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8년 짧은 기간 동안에 군사 작전하듯이 해치운 ‘2주기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는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과정에서 당시 교육부 관료들은 개별 평가위원들의 정실에 의한 평가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평가위원들조차 최종 평가결과를 모르게 한 채 각 평가위원이 자신이 맡은 영역별 점수만 입력하도록 했다. 서로 분절된 채 평가된 개별 영역 점수를 단순히 합산한 결과가 전체 대학 역량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 중 난센스이다. 죽어가는 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결정을 할 때, 그 어떤 투자자가 개별 영역(예컨대 인사, 재무, 시설)의 평가결과를 단순히 합산하여 투자 여부를 결정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를 시행하는 교육부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정치권의 개입, 평가위원의 정실에 의한 평가 가능성과 이에 따른 사후 책임 문제만을 염려하면서 보다 근본적 이슈인 평가의 타당성, 즉 “평가가 과연 평가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가” 라는 문제는 너무나 쉽게 포기해 버렸다. 물론 관료들의 입장에서는 최근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정치권의 지시를 따른 경우에도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타당성을 희생하고라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을지 모른다.

현행 교육부 대학평가 제도 하에서 권역별 구분 유형에서는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 전국단위 구분 유형에서는 수도권 유수대학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고등교육의 위기 상황에서 개별 대학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평가하기보다는 기존의 인프라가 얼마나 우수한가를 보여주는 정량지표가 대개 평가의 결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에서도 수도권 유수대학과 지역 거점 국립대학은 최소한 50~60%로 설정된 컷오프 탈락은 하지 않을 것이 사실상 예정되어 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작전을 수행하듯 진행되는 형식적 대면평가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대학의 처절한 자구노력과 개별 대학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 발전계획의 실질적 타당성은 고려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실체도 없는 번지르르한 발전계획과 숫자 놀음으로 가득찬 보고서도 운이 좋으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환상을 좇으며 대학들은 위기를 극복할 체질 개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설픈 컨설팅으로 보고서를 윤색하기에 급급하다. 이것이 현재 교육부 대학평가를 둘러싼 대학들의 일반적 반응 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문제가 개선이 되지 않을까?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정부 대학평가 제도를 둘러싼 ‘고착화된 기득권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현행 교육부 대학평가 제도 하에서 (1) 교육부와 연구재단 등의 위원회를 통해 대학 재정지원 평가 사업 설계과정에 참여하는 소수의 교수와 연구자들; (2) 한국연구재단(대교협, 한국교육개발원)이 시행하는 대학 평가에 직접 위원으로 참여하는 대학 교수 및 전문가 집단; (3) 발언권이 상대적으로 강한 수도권 유수 대학과 지역 거점 국립대학 총장과 이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 국회의원 등은 상호 공생 관계를 형성하며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주로 수도권 유수대학과 지역 거점 국립대학에 재직 중인 발언권이 큰 교수들은 대학 평가 설계 과정이나 평가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소속 학교의 이해를 대변할 기회와 가능성이 훨씬 많이 주어진다. 잘못된 현행 제도 하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 대학과 소속 교수들은 설령 현행 대학 평가제도가 전체 고등교육 체제의 발전과 학생들의 이익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대학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주요 대학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혹시라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도 개선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공개적 논의과정보다는 정치권을 활용한 간접적 루트나 혹은 자기 대학의 소속 교수가 참여하는 교육부의 평가 정책 설계 및 운영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교육부 입장에서도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스스로 읽고, 알아서 대변해 주는 특정한 교수들을 계속 활용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물론 이들 교수들은 오랫동안 평가 업무에 참여해 와서 평가 기술적으로도 매우 해박하다. 따라서 교육부와 밀접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 ‘제도권 교수들’은 평가제도 설계 및 시행 과정에 대한 오랜 참여 경험을' 통해 현행 대학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타당성보다는 절차적 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은 교육부 관료들의 심기를 거슬려 가며 굳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인 만큼 이것이 자신들의 소속 대학이나 학과에 미칠 득실도 어느 정도는 고려할 것이다. “평가의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 of University Evaluation System)” 이론에 기초한 상기의 ‘추론’은 “왜 그렇게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학 재정지원 사업 평가 시행방식과 지표가 잘 변하지 않는가?” 라는 기본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일정 부분 제공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 필자는 교육부 대학평가의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 “대학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지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가 준비하느라고 정작 대학 발전을 위한 기획을 못 하고 있다”는 어느 대학 기획처장의 하소연은 그냥 흘려들을 이야기만은 아니다. 평가를 하면 할수록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만 초래한다면 그런 평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교육부 대학평가도 합리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절대 권력(이 경우 교육부의 대학평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아닌 국무총리실, 대학 협의체 혹은 관련 학회와 연구소 등 주요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교육부 재정지원 평가 자체의 타당성에 대한 메타평가를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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