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개인주의 vs 가짜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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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인주의 vs 가짜 개인주의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2.1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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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자유주의는 이기적이고 고립된 합리적 인간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개인주의를 반대하는 이유도 바로 원자적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주의는 원자적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념이고 그래서 배려·유대감의 도덕을 전체 사회로 확대하는 사회주의가 옳은 이념이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논리가 옳은가의 문제다. 우선 지성사의 양대 산맥을 구성하는 두 가지 종류의 계몽주의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데카르트, 토머스 홉스, 제레미 벤덤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다. 이를 현대에 계승한 대표적인 인물은 존 롤스다. 신고전파 경제학도 그런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다.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애덤 퍼거슨, 알렉시스 토크빌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다. 이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는 오스트리안 학파인 칼 멩거와 하이에크다. 여러 가지로 두 전통을 구분할 수 있다(<표-1 참조>). 

프랑스 혁명의 기초가 되었던 프랑스 계몽주의는 이기적이고 고립된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한다. 자기 완료적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은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인간 이성의 힘을 지나칠 정도로 신뢰한다. 그런 전통에는 인간 이성은 사회가 존재하기 이전에 완전히 개발되었다는 그래서 그런 이성의 힘을 통해서 사회를 계획하여 조종·통제할 수 있다는 미신이 깔려 있다. 하이에크는 그런 미신을 구성주의적 합리주의(Constructivistic Rationalism)라고 혹평했다. 원자적 인간을 전제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은 진정한 자유주의라고 볼 수 없다. 정부의 계획과 간섭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1945년 유명한 강연문 《진짜와 가짜 개인주의》에서 원자적 인간을 전제한 개인주의를 “가짜 개인주의”라고 비판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이 발견했듯이 인간은 극도로 합리적이지도 않고 효용을 극대화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제도적·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개인들이 가진 진정한 이해관계는 인간역량의 개발과 이용 과정에서 형성된다. 선호, 취향 등은 정치·사회적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된다. 특히 종교, 도덕, 문화는 인간들의 선호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야말로 자아와 삶의 목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인간관이 진짜 개인주의다.  

미국혁명의 기초가 되었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에서는 사회와 독립적인 고립된 인간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모방하는 등 학습하지 않으면 누구도 살 수 없다. 사회적 학습을 통해서 개인 자신이 발전해 간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도덕적 행동도 개발하고 학습한다. 따라서 인간 이성은 사회적 과정의 결과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스코틀랜드 전통은 진화론적 합리주의(Evolutionary Rationalism)다. 진화란 인간이 지닌 지식은 틀릴 수 있고 사회적 과정에서 변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자적 인간에 대한 비판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의 자유주의에는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에 벌어진 “공동체주의-자유주의 논쟁”에서도 스코트랜드 전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논쟁이었다. 그 논쟁에서 자유주의는 존 롤즈의 사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무지의 장막에서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사회를 계획할 분배 정의를 선택하는 원자적 인간이 있다. 그의 사상은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이 전제한 구성주의적 합리주의다. 스코틀랜드 전통의 개인주의를 도입하지 않은 그런 논쟁은 절반의 논쟁이었다. 

원자적 인간의 또 다른 의미는 편협한 이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타인들이나 인간제도에 대해 전혀 애착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주 편협한 이기심으로 여기는 패러다임도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이다. 사람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평등한 자유는 인간들의 상호의존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가족, 공적인 삶, 도덕, 종교단체, 상공단체 등 정치와 독립적으로 형성된 자발적 연합에 의해 촉진되는 생산적인 상호의존이야말로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원천이다. 깊은 연합적 결속과 건전한 상호의존이 없으면 상업 정신도 위축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함께하는 버릇을, 타인들과 결속하는 버릇을 배우지 못하면 문명 그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개발했다. 타인들이 반복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상을 동원하여 판단한다.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밝혔듯이, 그가 미국에서 발견한 개인주의도 애덤 스미스에 가장 근접한 인간관을 전제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인간들이 고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상업문화를 뒷받침하는 필수적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도덕적·문화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시장의 자기 이익추구와 위험 부담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 

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에서 밝혔듯이 오로지 직접적인 자신의 욕구에만 관심이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편협한 이기심)을 반대했다. 그는 친목 단체, 취미그룹, 자선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 마약퇴치 운동 등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활동하는 제3섹터로서 공익을 위한 자발적 연합을 중시했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조직한 소규모 그룹에 적합한 유대감을 임의로 확대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유대감을 법으로 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런 이타심의 범위를 자유에 맡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웃에서부터 전체 사회에 이르기까지 확대하여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강제한다. 강제적 확대의 결과는 강제적 재분배와 복지국가다. 유대감의 확대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조직사회로 만들고 그래서 시민들이 국가의 노예가 된다. 

그렇다고 자생적 질서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는 별도의 도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도덕은 인격·재산의 존중, 관용, 정직성, 자기 책임, 법 앞의 평등, 진리 등이다. 이 같은 도덕을 준수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안겨준 거대한 열린 사회가 가능했다. 

요컨대 자유주의는 원자적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념이고 그래서 배려·유대감의 도덕을 전체 사회로 확대하는 사회주의가 옳은 이념이라는 논리는 틀렸다. 스코틀랜드 전통의 자유주의는 타인과 인간제도에 대해 전혀 애착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주 편협한 이기심으로 여기는 패러다임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시장의 자생적 질서의 형성을 위한 도덕을 구현하는 제도를 존중할 뿐만이 아니라 그런 도덕의 테두리 내에서 배려·유대의 이타적인 욕구를 자발적으로 충족한다. 그런 욕구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 사회에서 훨씬 더 잘 충족할 수 있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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