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는 우리와 실재 사이의 인터페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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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는 우리와 실재 사이의 인터페이스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2.14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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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각감각에 대하여 |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568쪽 | 원제: Der Sinn des Denkens

 

인터넷 세상 속에서 실재와 가짜를 구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스마트폰, 스마트와치, 태블릿 등 휴대용 기기들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오늘날 인간의 생각하기 능력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생각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생각은 무엇이 특별한 걸까? 철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이 질문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생각의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인간의 지위를 확고히 하려는 야심찬 시도를 담은 철학 책이다. 저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이 책에서 인간의 생각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감각임을 논증한다. 그에 따르면, 색깔은 시각으로, 소리는 청각으로 접근하듯 생각은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감각〉, 곧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감각이다. 우리의 생각감각은 진화의 산물이며 우리의 개념은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은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 가브리엘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意志)하는 동물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기술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고 우리의 삶과 미래를 더 나은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생각감각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일찍이 〈인간은 과연 누구 혹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이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로고스를 지닌 동물〉이라고 했다. 언어, 또는 사유, 또는 이성을 지닌 생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줄곧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지능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기계에 의해 더 잘 수행하는 상황이 빚어지면서 인간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마저 기계에 넘겨주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 책은 우리 시대에 만연한 커다란 두 가지 사유 오류에 맞선다. 하나는 우리가 실재를 이러저러하게 위조하므로 있는 그대로의 실재(실재 그 자체)를 결코 파악할 수 없다고 여기는 구성주의적 견해,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각 능력을 모방할 수 있는 정보 처리 과정이라고 간주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바탕에 깔린 견해다. 이는 각각 디지털 시대에 실재를 마주할 필요가 없다는 변명을 정당화하며, 우리의 삶과 미래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위임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가브리엘은 우리가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신실재론으로 구성주의를 물리친다. 신실재론에 따르면, 우리는 실재의 일부이며, 감각은 우리 자신이 아닌 실재하는 것과의 접촉을 이루어 냄으로써 실재를 인식한다. 〈생각하기는 우리와 실재 사이의 인터페이스다.〉 가브리엘은 이와 같이 주체와 객체의 분열을 극복하고, 우리의 생각에 실재성을 부여한다.

인공지능 지지자들에 의해 과장된 일부 주장과 달리, 가브리엘은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의 복제본이 아닌 사유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생각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은 논리학의 원천이며, 디지털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논리 법칙에 기초하는 알고리즘으로 인간지능의 일부 특성을 모형화한 제작물일 따름이다.

이 책에서 가브리엘은 구성주의자와 인공지능 지지자들의 주장은 물론, 논리학, 언어철학, 신경과학에서 제기할 수 있는 철학적 가설을 꼼꼼하게 검토하며 거기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낱낱이 밝혀 낸다. 그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철학적 기반을 공고히 다져 기술과학에 대한 환상을 쫓아낸다. 

가브리엘에 따르면, 인간은 두 가지 성분을 지녔다. 진화를 통해 발생한 생물 종으로서의 〈인간동물〉, 그리고 자신이 누구 혹은 무엇인지를 그리는 〈인간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늘 생존이라는 과제에 맞서 왔으며 삶 속에서 생존과 관련된 문제들을 제기한다. 반면,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생존이 관련된 문제가 없다.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자기를 규정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인간상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꾸려 갈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게 해 준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는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기술은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모방할 수 없다.

이 책에서 가브리엘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를 의지하는 동물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인권을 온전히 보유하고 자기 결정을 실행할 수 있는 지위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능력이 도덕의 원천이다. 가브리엘은 기술의 진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경계한다. 그러한 사유 오류는 인간에게, 기타 생물들에게, 또한 우리의 환경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감각과의 접촉을 긴급히 재건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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