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이 외친 “해방의 공산주의”
상태바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이 외친 “해방의 공산주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14 0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공산주의라는 이념 | 알랭 바디우 외 지음 | 슬라보예 지젝·코스타스 두지나스 엮음 | 진태원 외 옮김 | 그린비 | 448쪽 | 원제: The Idea of Communism

 

2009년, 버크벡 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슬라보예 지젝과 코스타스 두지나스는 공산주의를 새롭게 상상하기 위한 “공산주의라는 이념” 콘퍼런스를 조직했다. 후기 자본주의를 넘어설 정치적 기획의 필요성에 공감하듯 알랭 바디우, 장-뤽 낭시, 안토니오 네그리, 자크 랑시에르, 테리 이글턴 같은 사유의 거장들이 런던 콘퍼런스로 모여들었다. 콘퍼런스 내내 참가자들은 분파주의를 넘어선 토의를 나눴고,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철학자들은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던 서로의 사유를 횡단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 콘퍼런스는 흥미로운 지적 만남을 넘어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이 책은 콘퍼런스 발표자들이 낭독한 내용을 최소한으로 편집하여 당시의 열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무엇이 이 콘퍼런스를 그토록 성공적으로 만들었을까? 슬라보예 지젝과 코스타스 두지나스는 공산주의라는 기표를 악마화하는 것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급진적 철학과 급진적 정치 사이의 강력한 연결고리를 재활성화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될 때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독주는 끝났다. 광신적인 우파 정부는 실업과 빈곤을 노동인민에게 떠넘기고 있고,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기능부전에 빠진 조직이 되었다. 이 책은 은행에는 사회주의를, 빈자에게는 자본주의를 선물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공산주의를 새롭게 해석해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공산주의를 회복하는 시발점을 제공한다.

바디우는 ‘이념’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로 콘퍼런스의 포문을 연다. 이념은 우리의 이성적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규제인가? 혹은 국가의 행위를 통해 점진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강령인가? 이념은 포착하기 어려운 순간적인 것들을 진리의 생성 속에서 역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이념은 개인들이 합체되는 것을 지지하고, 그들이 주체화 가능한 신체의 한 부분이 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제약들 너머로 갈 수 있도록 해준다. 사회주의 국가와 당이 공산주의의 이념에 대한 실재적 지지를 제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산주의 가설은 해방의 가설에 토대를 둘 때에만 가능하지만, 랑시에르는 공산주의와 해방 사이에 역사적 긴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해방은 ‘아무나’의 힘이 모일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공산주의 운동에는 정반대의 전제, 즉 불평등의 전제가 스며들어 있다. 지성들 사이의 차이라는 교육학적-진보주의적 가설이 그것이다. 이 가설은 공산주의자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노동자의 경험은 공산주의자의 지식을 자격 박탈하고, 공산주의자의 지식은 노동자의 경험을 박탈하는 이중구속으로 귀결되었다. 랑시에르는 공산주의가 새로운 대안의 이름이 되려면, 공산주의적 이념이 이런 이중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젝은 대담하게도 20세기 혁명적 시대의 ‘토대 위에 더 많은 것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내려’가서 다른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젝에 따르면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은 프롤레타리아 주체에 대한 더욱 급진적인 개념을 요구한다. 그것은 ‘족쇄 외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고전적 이미지와 대조적인,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주체, 모든 실체적 내용이 박탈된 텅 빈 데카르트적 주체이다. 상징적 실체를 빼앗기고, 유전자 염기가 조작되고, 살 수 없는 자연환경에서 허덕이는 우리는 모두 잠재적으로 호모 사케르이다. 새로운 해방 정치는 더 이상 특수한 사회적 행위자의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폭발적 결합일 것이라고 지젝은 주장한다.

1990년대는 좌파에게 삼중의 실패가 닥친 시기였다.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쇠퇴했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소멸하고 그들 경제는 세계 산업 안으로 통합되었다. 제3세계 해방운동 역시 침체를 겪었다. 이러한 사태들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첫발을 디딘 하나의 시대, 곧 당-국가라는 정치적 조직 형태로 특징지을 수도 있었던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이는 급진적 해방의 정치의 시간이 종료되었음을 뜻하는가?

오히려 최근 20년간의 수많은 징표들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마침내 실현된 자연적 사회질서로 간주하면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이 1990년대의 유토피아는 21세기의 첫 10년 동안 두 번의 죽음을 맞이한다. 즉, 정치적 영역에서 이 유토피아의 죽음을 알린 것이 2001년 9.11테러라면, 2008년 금융위기는 경제적 죽음을 상징했다. 이러한 새로운 조건들 속에서 관건은 새로운 전략들의 출현을 위해 힘쓰는 가운데 해방의 정치에서 기초가 되는 사항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하는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 콘퍼런스의 괄목할 만한 성공은 해방의 기획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또 쇄신되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콘퍼런스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한다. 공산주의라는 단어는 급진적 해방 기획의 지평을 가리키기에 적절한가? 참가자들은 각각의 이론적 입장들이 지닌 미묘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라는 단어에 충실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요컨대 공산주의는 우리의 탐색을 이끄는 이념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나아가 좌파 자신의 이름을 달고 저질러진 것을 포함한 20세기 정치의 파국들을 고발하는 수단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이 콘퍼런스를 시작하면서 말한 바대로, 공산주의는 플라톤 이래로 철학자에게 적합한 유일한 정치적 이념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