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유목민 스키타이를 찾아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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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유목민 스키타이를 찾아서(1)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12.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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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72)_ 순록유목민 스키타이를 찾아서(1)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志不同, 不相爲友(출전: 論語 衛靈公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는 길이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마라. 
뜻이 다른 이라면 그와 벗하지 마라.

 

살다보면 뜻 안 맞는 사람 많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많다. 애당초 함께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모두가 다 내 탓이다. 결과론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쩌려하는 데서 인간의 불행이 가중된다. 낮에 어떤 이가 아들 결혼식에서 아들 부부에게 들려줄 덕담을 저녁까지 글로 써야 하는데, ‘큰일이다’를 연발하며 좌불안석인 걸 보았다. 나이 든다는 건 신경 쓸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노년은 결코 한가한 시기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미리 세상과 하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Corona19에 이어 오미크론(Omikron)이 대세다. 나는 인간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질병의 이름 오미크론은 싫다. 언어학자로서 순수하게 그리스 철자의 명칭으로서의 오미크론은 재미있다. 오미크론은 영어 알파벳 O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철자의 이름이다.

영어 알파벳은 스물여섯 글자지만, 라틴어와 러시아 키릴 문자의 조상격인 그리스어 알파벳은 스물네 개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 중요한 건 고대와 현대의 발음이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먼저 그리스어 철자 이름을 보자면, 우리가 수학이나 물리학 공부를 하며 친숙해진 글자들이 꽤 많다. 
 
Α α(알파, alpha), Β β(베타, beta), Γ γ(감마, gamma), Δ δ(델타, delta), Ε ε(엡실론, epsilon), Ζ ζ(제타, zeta), Η η(에타, eta), Θ θ(세타, theta), Ι ι(이오타, iota), Κ κ(캅파, kappa), Λ λ(라(람)브다, la(m)bda), Μ μ(무, mu), Ν ν(누, nu), Ξ ξ(시, xi), Ο ο(오미크론, omicron), Π π(피, pi), Ρ ρ(로, rho), Σ σ/ς(시그마, sigma), Τ τ(타우, tau), Υ υ(웁실론, upsilon), Φ φ(피, phi), Χ χ(치, chi), Ψ ψ(프시, psi), and Ω ω(오메가, omega).
 
아테네에 갔더니 아테네 시민들의 발음이 달랐다. 나는 ‘애쓴스’라 하고 현지인들은 ‘어씨나’라고 발음을 했다. 나는 영어 Athens를 말한 것이고, 그 동네 사람들은 그리스어로 Athena를 말한 것이다. 아테네라는 우리말 명칭은 Athena의 音譯이다. 그런데 발음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소통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팬츠를 ‘빤쓰’라고 하거나 ‘팬티’라고 하거나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실제로 원어민의 발음을 따라 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영어도 그렇지만 그리스어에서는 /l/과 /r/이 별개의 音素로 소리 내는 방법과 조음장소 즉 소리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다르다. 그래서 음소 /l/과 /r/은 서로 다른 소리다. 우리말에서는 음소 /ㄹ/이 맥락에 따라 [l]이나 [r]로 변한다. ‘쌀’에서의 받침 ‘ㄹ’은 [l]과 유사하지만, ‘쌀’ 다음에 모음이 올 경우, 예를 들어 ‘쌀이 귀하다’에서는 [r]처럼 들린다.

 에라스무스. 르네상스 시기 북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

우리말소리 /ㄹ/에 두 개의 변이형이 있듯 고대 그리스어 O의 異音에는 濁音과 淸音이 있었다. 영어 이름 Homer의 원조 Omeros에서의 어두음 O는 氣息音이 수반되는 탁한 모음이었다. 그래서 후대에 이르러 우세한 탁음을 따라 기식음 /h/가 삽입되었다. 고대 그리스어의 정통 발음이라고 간주되는 에라스무스 발음에 따르면 그리스어 모음 O는 적어도 두 개의 변이형이 있었다. 제정 러시아 시절 제국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 주민들은 新 수도 모스코바 사람들을 부를 때 얕잡아보는 어투로 마스코비치[mɑskɔvichi]라고 하고, 볼쇼이 극장은 발쇼이[bɑlshɔi]라고 부른다. ‘모스코바 촌놈’, ‘그까짓 볼쇼이 극장’ 정도의 뉘앙스를 지닌 표현이다. O를 열린 모음 [ɑ]로 발음해야 경멸의 느낌이 산다.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모스코바와 그곳 주민들에 대해 억지 자존심을 세운다. /O/에 대한 에라스무스 변이형(Erasmian variations)은 다음과 같다: not (North American) (William D. Mounce); obey (quicker than omega) (Machen); pot (British pronunciation) (Allen).

십수 년 전 겨울 러시아를 찾은 건 일종의 오기에서 비롯되었다. 춥다한들 얼마나 추울까? 아마 붉은 혁명의 나라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욕구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한 손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러시아 기행』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볼쇼이, 마린스키 극장에서의 공연 예매표를 들고 제법 긴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자 가방 속에는 지금은 사라진 신비의 유목민 월지 이전 광활한 중앙유라시아 초원을 삶의 무대로 삼고 유목생활을 하던 스키타이라는 이름의 유목 종족에 대한 자료집이 들어 있었다. 

기원전 170년경 스키티아의 위치<br>
                     기원전 170년경 스키티아의 위치

스키타이인들이 살던 흑해와 카스피해 북방 일대를 영어로 Scythia라고 쓰고 [síðiǝ, síθ-]라고 읽는다. 그런데 그리스어 Skýthai를 고대음으로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스쿠타이’에 가깝다. 웁실론 ý의 발음이 불어 u나 독일어 ü와 비슷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카디아와 앗시리아 문헌에 스키타이를 각각 Áš-gu-za[Iš-ku-za]; Ashguzai [Ashkuzai]라고 기록한 점이 이해가 된다. 물론 아카디아어 표기에 어두모음이 선행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Gypsy에서 Egypt가 나왔으니 어두에 모음 /e/가 추가된 것이다. 역의 경우도 있다. ‘별’이라는 뜻의 라다크어 Skarma를 Karma라고 하는 건 자음탈락에 해당된다.  

Scythia라는 명칭은 ‘Scyth의 땅 혹은 거주 지역’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영어식 종족명으로 사용하는 Scythai는 사실은 Scyth의 복수형으로 Herodotus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명사로서의 Scyth의 지시대상이나 의미에 대해 명확한 결론에 도달해있지 못하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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