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협력 관계, 유로메나…유럽 속의 메나, 메나 속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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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협력 관계, 유로메나…유럽 속의 메나, 메나 속의 유럽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07 0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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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유로메나: 교류와 갈등의 역사 | 박단 엮음 |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기획 | 에코리브르 | 438쪽

 

유럽과 메나 문명권을 융합적으로 연구한 성과물로서 역사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아랍지역학을 아우른 종합서이다.

유럽의 역사는 이웃 지역과 늘 갈등과 교류의 연속이었다.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유럽의 정체성과 영역은 더욱 뚜렷해졌고, 유럽인은 유럽다움과 유럽답지 않음을 구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라는 유럽인과 “너희”라는 비유럽인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었다. 유럽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지역이 메나(Middle East & North Africa, MENA), 즉 오늘날의 북아프리카와 중동이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생활하는 유럽 대륙에서 유럽인이 “우리”와 “너희”를 구분하는 일차적 기준은 오랫동안 크리스트교인과 비크리스트교인, 즉 종교였다. 유럽과 이웃한 메나는 이슬람 지역으로, 크리스트교 문명의 유럽 대륙에 때로는 위협적인 존재로, 때로는 멸시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유럽과 메나는 역사 속에서 전쟁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갈등과 협력 관계로 두 문명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럼에도 국내 학계는 두 문명권을 별개로 인식함으로써 많은 중요한 사실들을 놓쳐왔다. 근대 이전의 십자군 전쟁, 레콩키스타 등은 별개로 하더라도 제국주의 문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종교·문화 간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두 문명권을 종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슬람의 영향력을 도외시한 유럽사, 유럽의 영향력을 무시한 메나 지역의 역사 연구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균형 잡힌 역사 연구를 위해 유럽과 메나 두 문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불가피하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 “근대 이전의 유럽과 메나”는 고대 ‘영원한 로마’ 개념에서부터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빈 침공까지를 다룬다. 이 장의 특징은 근대 이전 두 문명권 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존재했지만, 그 못지않게 교류도 활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특히 서기 천년의 교황 제르베르의 역할과 제6차 십자군 연구가 근대 이전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의 교류와 평화 공존을 잘 보여준다.

2부 “근대 이후 유럽 국가와 메나”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의 유대국가 건설 기획까지를 다룬다. 근대 이전까지 두 문명 간 갈등이 주로 전쟁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져 단기간의 충돌 후 다시 원래의 지역으로 돌아가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면, 근대 이후에는 서구의 메나 지역에 대한 침략이 식민주의 형태를 띰으로써 아랍 세계 점령이 일반화되었다. 심지어 정착민 형태로 유럽인들이 식민지에 거주함으로써 두 문명이 직접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메나 지배는 제국주의 침략의 전형으로, 우리가 왜 유럽과 메나를 함께 검토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3부 “유럽연합과 메나”는 그 이전 시대와 달리 유럽과 메나의 관계를 각국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대표성을 갖는 집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27개 유럽 국가의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 문제뿐만 아니라, 유럽과 메나 지역을 하나의 단일체로 묶으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유럽과 메나를 별개로 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4부 “유럽 속의 메나”는 “메나 속의 유럽”과 짝을 지어 고찰할 필요가 있는 주제지만, 연구자의 한계로 유럽 내 위치한 메나적 요소를 탐구한 장이다. 장기간 이슬람 문명과 교류해온 유럽 내에는 무슬림 이민자뿐만 아니라 메나 지역의 언어, 이슬람의 건축, 심지어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라는 혐오감마저 내재해 있다. 유럽과 메나를 더 이상 별개의 지역, 별개의 문화권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다.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 소장 박단 교수에 따르면, 유럽과 메나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파악하면 이 지역의 역사와 문명을 훨씬 종합적이고 거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유로메나연구소’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메나 지역과 함께 살피지 않는 유럽의 역사는 늘 불완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유럽인 역시 다른 차원에서 ‘유로-메나’를 강조해왔다. 특히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화를 살펴보면 유럽인의 메나에 대한 시각을 더욱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뤼시오(Alain Ruscio)는 《백인의 신념(Le credo de l’homme blanc)》에서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도 낯설지 않은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과거에 로마 문명의 빛이 그 땅에서 찬란히 빛났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우리는 로마인이다”고 말했다. 이는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을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는 말이다. 알제리에 남아 있는 로마의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이는 오늘날의 알제리인에게도 그들 이전에 “이 땅에 로마인(서양인)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유럽과 메나가 정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관계였을까? 유로메나는 서구인들에게 아프리카 식민화의 정당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 문명권을 바라보는 데 통합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유로메나라는 명칭의 이런 이중적 관점을 인지하면서, 향후 서구인들의 유럽 중심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균형 잡힌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유로메나 연구를 넘어 한국과 메나 관계 연구로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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