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은 자기파괴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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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은 자기파괴의 과정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0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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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읽기 | 문병호 지음 | 세창미디어 | 264쪽

 

전체주의와 세계대전으로 얼룩진 20세기 전반부, 인류사상 최대의 불행을 온몸으로 체험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그들이 지나온 암울한 역사처럼 극도로 암울한 모습을 한 채로, 그동안 인류의 빛이라고 여겨진 ‘계몽’에 대한 새롭고 치열한 사유를 보여 준다. 

또한 『계몽의 변증법』은 오늘날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인간을 단순한 도구로 소모하는 자본권력 등, 갖은 종류의 폭력과 불행에 시달리는 인류와 한국인에게 탈출구를 제시한다. 따라서 『계몽의 변증법』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이 책은 『계몽의 변증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서이자 해설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독일 현대철학의 기둥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장이다. 두 사람은 눈부신 문명을 이룩한 인류가 전체주의와 세계대전 등 최악의 타락을 보여 준 20세기를 지나며 ‘문명’과 ‘인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현대 인류에게서 과거의 타락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야만’을 보았고, 이것이 과거의 타락에 비해 훨씬 복잡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처럼 복잡하고 총체적인 모순을 다양한 방면에서 다룸으로써 『계몽의 변증법』 역시 내용이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평을 듣게 된다.

『계몽의 변증법』이 난해한 이유는 구성에도 있다. 통상적인 논의처럼 원인과 결과, 주장과 근거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설명과 해설이 논리적인 서순 없이 뒤섞여 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현대문명을 타락시킨 주범으로 ‘논리’를 꼽았고, ‘논리’를 비판하려는 이 책의 집필 의도에 맞게 일부러 논리적인 구조를 피한 것이다.

보통 ‘계몽’이라고 하면, 구습이나 절대적 이념에 사로잡혀 무지몽매한 상태에 빠진 인류를 ‘이성의 빛’으로 몰아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여기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말하는 계몽은 인류 문명을 타락으로 빠트리는 원흉이다. 두 사람은 전체주의에 잠식된 인류의 참상을 보면서, 파시즘이나 나치즘의 성립이 아주 합리적인 절차로, 논리적인 근거를 두고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도구적 이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도구적 이성이란 이성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을 말한다. 도구적 이성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반성적 성찰을 하지 못하고, 어떤 가치와 이념도 성취하지 못한다. 오로지 외적 자연을 지배하기 위한, 나아가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도록 하는 도구적인 기능만 남을 뿐이다. 결국 도구적 이성에 깊이 사로잡힐수록 자기 주체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부터 자기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기 주체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특정 세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강도가 높아지고, 지배 담론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우중이 탄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논리와 이성으로 대변되는 ‘계몽’이 문명의 타락, 인간의 자기파괴를 불러온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이 같은 이성의 변질이 20세기 인류의 암울한 역사를 낳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이성의 시대를 여는 ‘계몽’이 오히려 자기파괴를 낳는 과정일 뿐이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기존 서양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계몽’의 위상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논의는 흑역사로 얼룩진 20세기를 넘어 현대사회가 직면한, 혹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현실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로고스(logos)’는 논리를 말한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정의에 따르면 ‘로고스’는 ‘많은 것을 통해 하나의 법칙, 질서, 조화를 발견하여 말하는 것’이다. 논리에 내재하는 이 같은 속성은 세계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구축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논리로 세계를 파악하고 구축하는 과정은 ‘존재’가 ‘로고스’에 의해 와해되는 결과를 낳는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에 의해 규정되고 관리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논리 위에 세워진 학문과 사회 시스템도 모두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기존의 순수한 목적을 잃는다. 이 같은 학문과 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효용 가치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변한다. 각자의 개성도, 자기 삶에 대한 고찰도 없어지고, 오직 동일한 효용 가치를 재생산하는 부품이 되는 것이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된 한국의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다. 각자의 개성과 다양한 삶의 목적은 사라지고, 사회적 효용 가치를 따져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부당한 일을 저질러도 자본권력을 쥔 사람이라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지성의 첨단에 있어야 할 대학가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모든 학문이 집중될 뿐이다. 『계몽의 변증법』이 던진 “존재가 로고스로 와해”된다는 통찰은 시대를 관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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