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리튀르’에 대한 언어학적·기호학적 해석의 기반을 제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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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튀르’에 대한 언어학적·기호학적 해석의 기반을 제시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2.07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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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강의: 천재 언어학자 뱅베니스트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1968~1969) | 에밀 뱅베니스트 지음 | 김현권 옮김 | 그린비 | 288쪽

 

『마지막 강의』는 인도유럽어 비교언어학자이자 일반언어이론가인 에밀 뱅베니스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를 모은 책이다. 그의 사후에 뱅베니스트 자신이 강의를 위해 준비했던 중요한 수기 원고와 세 명의 청강자의 노트에 기반하여 편집된 이 책은, 총 16회에 걸친 그의 강의를 생생하게 들려줄 뿐만 아니라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후속 강의들을 향해서까지 나아가고 있다. 또한 에밀 뱅베니스트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서문, 역시 문학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츠베탕 토도로프의 후기, 동료이자 인도유럽언어학자, 이란어학자인 조르주 르다르의 글 등도 포함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 히타이트어, 이란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의 인도유럽어를 비롯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언어에 능통했던 에밀 뱅베니스트. 그의 동료와 제자들은 그를 위대한 언어학자라고 불렀다. 개별언어들을 잘 알고 분석하는 동시에 인간언어의 속성을 발견하며, 이 속성을 통해 화자의 ‘세계 내 존재’를 해석하고 혁신하려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명한 문학이론가이자 기호학자 쥘리아 크리스테바 역시 뱅베니스트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삶에 대해 “인간언어를 자기 삶의 여정으로 삼은 한 인간의 이력”과 같다 말하며 그를 탁월한 언어학자로 평가했다. 이러한 주변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그는 그가 전 생애를 통하여 남긴 언어학적 유산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마지막 강의』에서 그는 ‘의미하는 것’이 ‘언어의 본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일차적 속성’이기 때문에, 소쉬르가 구상했듯이 기호 단위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소통적이고 화용적인 기능을 ‘초월한다’는 것을 일차로 증명하려고 했다. 다음으로, 고유한 의미의 ‘의미조직’은 치명적으로 중요한 ‘경험’이므로 이 ‘의미조직’의 항들과 그 전략을 명시하려고 했다. 뱅베니스트에 따르면, 이러한 일련의 비판은 다시금 새로운 일반 언어학의 쟁점을 명료하게 밝혀 준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성찰을 소쉬르가 지시한 지점을 넘어 조정해야 한다.” 이는 특히 소쉬르에게 없는 ‘새로운 관계’인 ‘체계들 사이의 해석관계’를 개진하면서 이루어진다. 정확히 말해서 언어[랑그]는 다양한 유의미 체계 내에서 독특한 것으로서, 자신을 스스로 해석하고 다른 체계(음악, 그림, 친족관계)를 해석하는 해석체계란 점에서 체계들 사이의 ‘해석관계’이다. 언어는 “피해석체에 체계로서 발전하는 관계들의 토대를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언어는 의미체계 중 위계상 제일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체계들 사이에 생성관계를 유지시킨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일차 기호체계인 ‘언어’를 이용해서 말한다. 그리고 문자를 이용해서 글을 읽고 쓴다. 이 문자는 언어와는 별개의 기호체계이다. 우리는 또한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고, 영화를 본다. 인간은 기호를 통해 세계와 교감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기에 자연과 인간 행동, 인간이 만든 작품에는 수많은 종류의 기호가 있고, 이들은 각기 ‘무엇’을 의미하며, 의미를 가진 사상과 같다.

뱅베니스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소쉬르의 문자기호론을 비판했다. 소쉬르의 문자에 대한 논의는 ‘문자론’이 아니라 이 ‘문자로 기록된 언어에 대한 지식’이다. 기호체계로서의 언어는 언어를 표상하는 기호체계로서의 글과 대응하며, 그 체계를 구성하는 음성과 문자가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소쉬르는 음성변화와 상관없이 이를 표상하는 문자(글) 자체를 가지고 이를 언어, 언어를 충실히 표상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연구했다. 그러나 문자로 표상된 형태에서 언어와 이 문자표상 자체를 구별해야 한다. 뱅베니스트는 “오직 이 구별을 통해서만 기호체계로서 문자체계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인데, 소쉬르는 이를 구별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문자’[에크리튀르, écriture]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문학, 기호학과 철학, 언어학에서 핵심 단어 중 하나가 되었으나, 그것의 정확한 개념은 언어의 의미화 이론의 일반적 틀 내에서 분명하게 다루어진 적이 없다. 의미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문자 표상은 말-언어의 표상인가 사고의 표상인가? 사고표상으로서의 문자(글)는 사고의 시각적 표상이며, 시각적 실체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이다. 동시에 그것은 언어를 나타내는 언어기호로 표상된다. 문자는 언어의 청각적 표상인 음성과 구별된다. 화자는 언어활동과 구별된 실체로서의 언어의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 문자는 발화(parole)의 이차체계가 아니다. 문자는 언어와 평행하는 체계로서 언어의 상징적 측면, 부재의 것을 현재화시키는 것이며, 언어 기호체계와 분리된 도상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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