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역사반성을 하지 못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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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역사반성을 하지 못 하는가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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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88쪽

 

일본의 경제제재와 『반일 종족주의』로 급격하게 관심이 높아진 한일 과거사 문제를 한일 극우세력의 역사인식에 정면으로 맞서 낱낱이 해부한 책이다.

2019년 단행된 일본의 경제보복 뒤에는 식민지배를 둘러싼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있었다.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극우세력은 ‘강한 일본’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지난 20년간 침체기를 겪어온 일본사회에서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으로 과거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전쟁 과정에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축소해왔다.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 중심으로 재편된 일본이 폭력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오늘날 일본 우익의 뿌리다. 이들은 오로지 ‘위대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군국주의 국가를 만들고 주변국을 서슴없이 침략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이들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이자 일본의 주권선을 지키는 이익선일 뿐이었다. 이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 없이 다시금 득세하는 일본 극우의 ‘역사 수정주의’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일본의 전후 ‘55년 체제’는 자민당 내 자유주의 세력의 평화노선과 사회당과 공산당 등 일본 내 진보세력들의 공존으로 유지돼왔다. 다시금 군국주의를 긍정하는 극우세력이 일본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90년대 이후 이어진 긴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 대재해의 결과다. 침체기에 성장한 젊은 세대가 오히려 보수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틀이 바뀔 전망도 어둡다. 일본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보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해왔다. 사회당, 민주당 등 제도권의 야당 세력은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며 해체하거나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안보투쟁 등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들에서 패배해온 역사도 대안세력을 더욱 위축시켰던 것이다.

한편 한국의 보수세력은 일본 사회 우경화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입장을 ‘반일 종족주의’로 몰아세우며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케케묵은 ‘식민지 근대화론’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등 기존 서술을 전방위적으로 부정하는 도발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는 촛불혁명 이후 입지가 좁아진 국내 보수세력의 호응을 등에 업고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여기에 일본 우익이 역으로 반기는 모양새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러한 일본의 극우 역사 수정주의를 수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의 경제발전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일본 극우의 입장을 베끼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인정할 만한 주장이 몇 가지 있다 해도 전체 역사서술을 다시 써야 할 만큼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침소봉대하며 기존 역사연구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 근대를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 방식도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자본주의 맹아론’ 등 기존의 학설이 자의적이라는 그들의 비판을 『반일 종족주의』에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러한 한일 극우세력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메이지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가 야스쿠니 신사, 전후(戰後) 협정 등 일본 근현대사의 핵심주제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우익의 무리한 주장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일본 자체를 악마화하기보다는 일본 내 양심세력과 연대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국내 친일문제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온 기업인, 군인, 관료, 교육자, 문인, 예술가, 종교인 등과도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재일조선인과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며 ‘오늘의 과제’를 환기시키는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은 한일 사회운동의 연대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재일조선인 문제 등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일본 사회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 사회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에서 단단한 경험을 가진 일본 사회운동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는 계속돼 왔지만, 최근 민주주의 발전 방향이 달랐고 냉전 등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전환이 필요한 단계에 와 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워낙 달랐던 탓에 괴리가 있기도 했다. 저자들은 이럴 때일수록 절실한 것이 바로 상호 역사인식의 공유라고 주장한다. 근대사 문제가 다시 한일관계의 쟁점이 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새로이 다질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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