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꿈 이야기 하나: 교육에서의 위계와 그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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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꿈 이야기 하나: 교육에서의 위계와 그 해체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12.05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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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나비가 장자(莊子) 되는 꿈을 꾸고 장자가 나비 되는 꿈을 꾸는 그런 이야기 하나 해보련다. 고등교육이 아닌, 초중등교육에 관한 진보주의 교육의 상(像)을 그려보는 그런 꿈이다. 며칠 전 경남지역에서 열린 어느 토론회에서 내년 교육감 선거를 염두에 둔 진보주의 교육의 전망을 발제하면서 이런 언급을 하였다.

교육의 위계를 극복하면서 ‘배움의 공동체’가 살아나고, 학교 안팎에서 노동의 위계가 극복되면서 진보주의 교육의 동력이 형성되어 갈 것이다. 이는 곧 학교에서의 실질적 평등을 의미하는데 진보주의 교육을 위한 주체, 진보주의 교육의 주체가 마련되었음을 뜻한다. 이들이 진보주의 교육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뒤의 쟁점, 즉 학교 안에서 전개되는 노동의 위계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노동의 연대전략을 어떻게 구성하여야 진보주의 교육에 기여하는지에 관한 고민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앞의 쟁점인 ‘교육에서의 위계’를 따져보고자 한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은 교육당사자로 학습자, 보호자, 교원, 교원단체, 학교 설립자 및 국가·지자체를 열거한다. 한국에서의 공교육은 의무교육 등 학교 교육을 거치는 게 대부분이므로 학습자 가운데에서도 단연 학생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은 인권을 누리고 자치활동을 보장받으며 학습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학습권이란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말한다. <대한민국헌법> 제31조를 반영하여 고친다면 학습권이란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말한다. 한편 교원은 ‘학생을 교육할 권리’를 갖는다. 

한국에서의 공교육은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긴 하였지만, 교육권과 학습권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둘러싼 쟁점은 그저 세속의 질서에 맡겨져 왔다. 그 결과 학교 교육에서의 위계질서는 정치적 자유를 박탈당한 교원이 인권에 재갈이 묶인 학생을 일방적으로 교육하는 데서 나타난다. 또한 이들이 매번 부딪히는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전망은 흐릿한 채, 일방적으로 교원의 우위가 보장되는 체제 아래 놓여 있었다. 학생과 교원 모두에게 마땅히 필요한 인권의 부재와 민주적 질서의 부재, 바로 이것이 교육에서의 위계를 영원히 지켜주는 요인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학생에게 인권은 어느 발달단계에 따라 어떤 내용이 어떻게 보장되는지, 인권이 침해되면 어떻게 구제되는지 등에 대하여 침묵한다. 지역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성공하면서 절반의 환호를 하였지만, 정작 교육부와 사법부 등 국가는 학생인권의 규범을 지역마다 알아서 마련하라며 지역마다 다른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고스란히 학생에게 전가하는 가장 나쁜 교육정치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또한 교원은 어떤가. 그들에 대해서는 교권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우대한다면서도 윤리의식을 확립하여 품성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할 뿐 정작 중요한 정치적 자유를 완전히 봉쇄하여 버렸다. 헌법재판소가 작년 ‘정당 아닌 정치단체의 결성과 그 가입은 자유’라고 결정하였음에도(2018헌마551), 정부는 오히려 정당의 조직, 창당준비위원회, 후원회, 선거운동 기구 및 후보 지지 또는 반대 단체에 관여하거나 가입할 수 없도록 하는 ‘국가공무원법’의 개정안을 발의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교원의 정치적 자유에 관하여, 지난 87년 체제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여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민주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여도,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사회가 수없이 권고를 보내도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구별하지 못하는 미련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다음으로 이들 사이에 구축되어야 할 민주적 질서는 어떤가. 교원은 지도하고 가르치고, 학생은 여기에 반응하며 학습할 뿐이다. 그들은 그저 참으며 당분간 유보하고 인내하며 분노를 체화하고,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억압과 통제가 교육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학교라고 하는 시설 안의 구성원일 뿐이다. 학생이 교원의 편에 선 적이 있는가. 교원 역시 학생의 편에 서서 자기의 살을 찢어 본 적이 있는가. 학생은 교원이 견디는 그 삶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교원 역시 학생의 서러움과 아픔을 찾은 적이 있는가. 자신의 삶과 희망에만 최선을 다하다가 결국은 쇠창살 안에 있는 자신을 보지 못한 채 그 창살을 뜯어 상대를 찔렀을 뿐이다. 학교의 붕괴와 교육의 절멸은 이렇듯 학교 안의 상호관계와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곳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입시제도와 대학의 서열에만 그 탓을 돌리고자 한다면 그것은 교육 운동이 오랫동안 만들어낸 가상일 뿐이다. 

물론 교육 혁신으로 등장한 하나의 의제로서, 하나의 실천적 방법론으로서 ‘배움의 공동체’가 그 숨통을 살리지만, 여전히 높낮이가 없는 배움의 주체로 만나는 기쁨은 요원하다. 나비와 장자의 꿈처럼 학생과 교원이 어깨 걸고 어울리는 그 꿈을 꿀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학생이 꿈에서 교원이 되어 자신이 학생임을 잊고, 교원이 꿈을 꾸면서 학생이 되어 자신이 진작 교원임을 잊는 날이 언제일까. 그러나 슬퍼하지 마라. ‘참교육’의 그날은 곧 오리라.

다행히 박주민·강민정·류호정 등 14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하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초·중등교육법>의 일부개정안에는 2006년 최순영·노회찬·심상정 등 10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했던 개정안 내용을 넘어 지난 10여 년 켜켜이 쌓인 한국의 학생인권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다섯 번째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달려가던 경남지역 운동이 좌절된 이후 위축되던 학생인권의 법률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법률 등 규범은 언제나 과거의 행위를 규율하는 데에도 벅차므로 학생인권을 옹호하는 교원과 시민사회는 법률이 담지 못하는 인권침해의 정치적 배경과 그 역학, 그리고 인권의 경계와 그 갈등을 충분히 설명하여 실천하는 계기를 이끌어야 한다. 규범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고 지킬 뿐, 정상을 지나 더 큰 꿈을 키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인권의 가치를 규범이나 권리의 옷에 끼워 맞출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권은 이번 개정안이 주목하는 ‘참여권’을 계기로 학교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는 방향으로 달려가야 한다. 이번 개정안에도 포함되었듯이 초중등학교에서의 (총)학생회는 법률상 자치기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평교사회’를 법률상 자치기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의 주요 학사와 생활 등에 관한 최고의 의사결정기관으로 (가칭)‘학교자치를 위한 모두의 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당연히 이 기구에는 학생을 일정 비율로 포함하여야 하며 학교 안 노동의 주체들이 골고루 참여하여야 한다. 물론 학생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그 수임인이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친권자로서의 학부모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학부모’여야 한다. 학교의 장은 대학의 경우처럼 학교 안의 모든 구성원에 의해 선출되고 소환됨으로써 민주적 질서가 용솟음쳐 오르길 바란다.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이 복원되고 학생인권이 인간 그 자체의 존재만큼 보장되며, 학교 안의 민주주의가 학교자치의 이상에 맞게 모두의 권력이 골고루 작용하여 꽃핌으로써 그 멀게만 느꼈던 배움의 공동체가 실천되기를 기원한다. 그 속에서 나비가 장자 되는 꿈을 꾸고, 장자가 나비 되는 꿈을 꾸기 바란다. 또한 나비와 장자가 다르듯, 학생과 교원 역시 다른 존재이지만 학교라는 한 곳에서는 모두가 배움의 주체이지 않은가. 이제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가 구현되며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함으로써 비로소 교육 위계가 사라진 최상의 공간이 바로 학교이기를 기원한다. 이제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시작될 때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전국교수노조> 부울경지부장 및 <경남교육연대>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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