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존대법의 두 얼굴, 존댓말과 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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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존대법의 두 얼굴, 존댓말과 반말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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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영어학자의 눈에 비친 두 얼굴의 한국어 존대법 | 김미경 지음 | 소명출판 | 241쪽

 

“각 언어는 그 내적형식 안에 일정한 세계관을 숨기고 있다. 한 언어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모국어의 내적형식에 따라 그들의 체험을 소화하고, 그에 상응하여 사유하고 행동하게 된다”(Leo Weisgerber, 1929). 촘스키 변형생성문법을 전공한 영어학자 김미경 교수의 눈에 비친 21세기 한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문자, 한글로 극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왔으면서도 가장 비민주적인 문법에서 묶여 갈등하고 있다.

저자가 깨닫게 된 사실은 존대법이 한국어 문법의 핵심인 동시에 한국인의 정신과 삶의 방식을 조정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존대법이 특별히 어렵다고 할 때, 그들에게 존대법이 어려운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외국인 못지않게 21세기 한국인들에게도 존대법이 왜 이렇게 마음 불편한 문제가 되었는가? 존댓말 시비가 한국에서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갈등의 근저에 숨은 뜻은 무엇인가?

한국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존대법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존대법은 이 사람은 너보다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주입시키는 과정이며, 윗사람은 너보다 나은 사람이니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훈련시키는 동시에 사람의 높낮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존대법은 논리성보다 윗사람에 대한 태도를 먼저 생각하게 만들고 윗사람과 평등한 관계에서 생각하고 대화하는 정신을 가로막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잘 따라하는 성실함으로 중학생들의 성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국식 존대법 문화로 거기까지는 가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세계적인 수준의 중학생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은 최하위권이며 어른 대접이라는 존대법 예절에 가려진 아랫사람들에 대한 인권유린은 겉으로 보이는 민주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어 존대법은 토론장의 발언권에서부터 노래방에서의 노래 부르기 순서까지 이 나라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나이와 계급에 대한 우선권을 강요한다.

이천 년 동안 한반도의 양반과 지식인들은 존대법의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천 년도 더 전에 이미 중국어에는 존대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리고 다른 것은 중국을 따라하면서도 존대법만큼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지켜왔다. 그들은 왜 유독 한국어에만 존대법이 있는지, 사람과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는 존대법의 기준이 정당한 것인지 묻지 않았다. 한반도의 양반과 지식인들은 언제나 존대법의 수혜자인 윗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존대법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19세기 말 한반도 밖에서 온 외부자들이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예수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한국어가 모든 사람을 위아래로 나누고, 그 서열에 따라 존대와 하대의 높이를 달리해야 하는 존대법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어 존대법의 한계를 보여준 예수 존대법 갈등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첨예한 문제이며, 동시에 한국어 존대법 속에 숨어 있는 서열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구글 번역기는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와 ‘너 몇 살이야?’의 차이를 구분 하지 못한다. 구글 번역기는 두 문장을 모두 ‘How old are you?’로 번역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야, 너 몇 살이야?”와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세상의 그 어떤 언어나 그 어떤 번역기로도 한국어 반말이 담고 있는 무례함과 폭력성을 다 해석해 낼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존대법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한국어는 존대법이 발달한 것 이상으로 하대법도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언어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7000여 개의 언어 중에서 한국어처럼 상대를 낮추는 반말이 문법으로까지 발전한 언어는 거의 없다. 한국어 존대법은 정확하게 절반은 존대 규칙, 절반은 하대 규칙을 포함한 두 얼굴의 문법이다. 존대법은 예의와 무례를 동시에 포함하는 이율배반적인 어법이다.

저자는 한국어 존대법의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에 주목하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강변한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만인이 평등한 민주사회에서 언제까지 위아래를 구분하는 존대법이 존속되어야 하는가? 위아래를 나누지 않고, 계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이 되면 안 되는가? “존대법으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문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며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미래 한국의 생존의 문제이다. 한국이 미래로 글로벌 사회로 그리고 더 넓은 민주화로 한 차원 더 높은 비약을 지향한다면 조선시대식 존대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존대법의 숨은 논리를 우리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리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어 존대법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한글로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언어 민주화를 확대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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