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이과’ 용어,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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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이과’ 용어, 이제 그만!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21.11.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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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난 11월 18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졌다. 1993년에 등장하여 30년 가까이 연례행사로 반복되어온 시험이다. 학생, 학부모 모두의 진을 빼는 8시간에 걸친 ‘마라톤 시험’이다. 날씨, 직장인 출근, 차량 통행, 항공기 이∙착륙 등이 중요한 이슈다. 수능 고시장 앞에서의 학부모, 선후배 모습들은 여전하다. 이른 아침부터 경찰의 수험생 긴급 수송 등 전국적으로 모두가 긴장하는 하루가 시작되며, 방송∙언론의 과목별 심층보도가 하루종일 이어진다.  

다음 날 영국 공영방송 BBC가 올해 수능시험 관련 5분 특집을 보도하였다. 한국의 수능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험이라며, ‘한국 학생은 수능을 위해 12년간의 학창 시절을 보낸다’는 한 수험생의 인터뷰를 담았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수능 못보면 실패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이 정도로 가치가 없는, 눙력이 없는 사람인가’를 느끼게 한다는 풀죽은 학생의 모습도 보였다. 수능은 학생의 인생, 국가 발전에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수능의 모습은 세 가지 ‘심각한’ 이슈를 생각하게 한다. 첫째,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을 수능이라는 틀에 가두어 키울 것인가? 수능은 우리 교육의 획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학생들 각자의 특성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잘 키워야 하는데 말이다. 더구나 ‘다양성’, ‘맞춤형’의 시대라고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시기를 점수, 수능, 대입이라는 하나의 틀에서 힘겹게 살게 한다. ‘우수한 학생’이란 무엇일까? 

둘째, 우리의 자녀 각자의 미래를 결정하는 교육이 여론에 따른 정치에 가려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정’이라는 명목으로 주요 대학에 수능점수 중심의 정시 선발 비율을 입학정원의 4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그동안의 교육정책과는 반하면서도 말이다. 공정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정치화되어 버린 것이라면, 학생의 미래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기성세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다음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 같다.

셋째,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계속 문과, 이과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육과정에는 문∙이과가 폐지되었다지만. 언론부터 통합형 수능의 문∙이과에 따른 과목별 유불리로 문과, 이과를 계속 나누어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개인별 특성이 다를 뿐, 감성, 이성을 기반으로 인문학적 사고,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데, 문과, 이과 둘 중의 하나로 몰아 가두고, 어려서부터 이를 자기 확신하도록 세뇌시킨다. 이는 일종의 ‘학대’가 아닐까? 학생 각자의 인생길에 잘못된 신호를 계속 보내게 한다.

현재 주요 기업들에서 신입 직원의 80% 이상은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 미래 신성장 산업, 탄소중립 등의 현실이 고려되는 것이다. 서울 주요 대학 인문계보다 지방대 이공계 전공자가 더 환영받고 있다. 은행권도 대부분이 디지털, IT, 데이터 부문 채용이다. 이러한 경향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인문계 학생의 88.2%가 이공계 학생을 부러워하며, 56.2%가 이공계 취업을 위한 교육훈련에 참여하고 싶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미 많은 인문계 전공자들이 비용이 크게 드는 IT 관련 사교육 시장에 가 있으며, 전문대학 이공계열에 재입학하기도 한다. 교육부, 고용노동부, 지자체도 인문계 학생에게 취업 관련 이공계 교육을 받도록 여러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는 문과로 키우고, 대학 단계에서 이과로 키우는 격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송’은 학생의 책임인가? 누가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일까? 고교는 2018년부터 문∙이과 구분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문∙이과 개념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대학의 책임이 크다. 학문과 직업을 문∙이과로 구분하는 근거와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수학적 분석이 핵심인 경제학이 ‘문과’라 할 수 없다. 인간의 가치와 사회 현상, 자연의 원리는 인문계, 이공계 모든 학생이 논리적으로 탐구해야 할 대상이다. 대학은 학생들의 진로와 삶에 대한 큰 책임감을 가지고, 문∙이과 구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 2018년 12월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대학에 ‘문∙이과 구분 없애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4차 산업혁명, 팬데믹에 따른 대전환의 시대는 과학기술이 기반이 되는 시대다. 코로나19 사태는 백신과 치료제의 원천인 과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모든 것이 달려있음을 확인시켰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국가 지도자들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판단은 그 나라의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사실 감염병, 기후변화, 에너지 등의 글로벌 이슈, 국가 경쟁력은 물론 주변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중심에 서 있다. 미∙중 기술 패권전쟁에서 보듯이 국내외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모든 영역이 과학 기술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과학은 언제나 우리 행정부의 전면에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과학, 근거, 사실에 기반할 것이다’라고 선언한 배경이다. 

미국은 과학교육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1985년부터 핼리혜성의 주기인 76년에 걸친 ‘2061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으며, 1989년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을 발간하여 일반인이 자연현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태도와 과학적 지식, 그리고 과학적 사고를 통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일본은 2003년, 한국은 2013년에 추진되었다. 과학은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보편적 사고의 기반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계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작년 2월 미국과학한림원은 미래 75년의 과학을 준비하는 심포지엄에서 과학이 계속 한계를 넘어 발전하기 위한 네 가지 과제의 하나로 ‘과학자와 국민 간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특히 과학자들은 국민이 무엇을 생각하고 필요로 하는지, 국민의 신뢰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과학자와 시민과의 공동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이 과학자들과 파트너로서 조사, 관찰한 데이터와 정보를 공유하며 과학적 발견 및 발전에 직접 참여하며 기여하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의 명문대학에서 이미 ‘시민과학(Citizen Science)’ 과목, 석사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대선 100일을 앞둔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에게는 과학기술이 안 보인다. 인문계 출신이라서 그렇다면, 결국 문과, 이과 구분해온 교육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사회는 수능의 과학 과목 점수가 아니라, 모든 학생의 과학 소양과 역량을 키워 개인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국가의 역량으로 모으는 일을 중시해야 한다. 인문학적 사고의 바탕에 과학이 있을 때, 과학적 사고에 인문학이 있을 때 모두가 일상에서 균형을 이루며 경쟁력을 높이게 된다. 더 나아가 이는 인류가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며 인공지능과 유전자 기술이 만들어 낼 ‘새로운 인간’과 공존하는 날을 대비하는 길이다. ‘문과’, ‘이과’라는 용어를 그만 사용하자. 미래에 대한 대비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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