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카데미아-스토아 학파의 인식론적 대립을 극화한 철학적 대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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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카데미아-스토아 학파의 인식론적 대립을 극화한 철학적 대화편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30 0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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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아 학파 | 키케로 지음 | 양호영 옮김 | 아카넷 | 304쪽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변호사, 연설가,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지난 2,000년 동안 유럽에서 최고의 지성인들을 길러내는 교육의 토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서구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희랍 사상의 영향 하에 있었던 여러 학문 분과들을 당대 지식인의 언어였던 희랍어가 아니라 자신의 모국어인 라틴어로 저술했고, 이를 통해 제 학문 분과에 관한 기초적이고 근본적 질문들을 로마인들의 정신세계에 내면화시켰고, 로마가 독자적인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했다.

희랍의 헬레니즘 철학과 로마 철학을 연결하는 인물로서 키케로의 철학적 저술은 특히 우리에게 직접 전해지고 있지 않은 헬레니즘 시기의 철학자들의 저술들에 대한 가치 있는 정보들을 전해주는 전거로서 재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그의 철학적 저술들은 로마 공화정 시기의 수사학, 법학, 정치학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그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극복하고 화합한 공화정 체제를 회복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위한 무기로써 대화와 설득과 협의의 기술인 수사학을 발전시켰다. 

『아카데미아 학파(ACADEMICA)』는 키케로가 평생 학습하고 실천한 철학의 사유를 로마 민중에게 전하려는 포부로 저술한 철학적 대화편으로 헬레니즘 시기의 인식론을 스토아 학파와 회의주의적 신아카데미아의 논쟁을 통해 보여준다. 헬레니즘 시기의 인식론은 회의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앎이란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다. 헬레니즘 시기의 대표적 학파인 스토아 학파는 앎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즉 ‘진리의 기준’으로 ‘파악 인상’을 제시한 반면, 신아카데미아는 진리의 인식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의심했다. 이 대화편이 보여주는 두 학파의 논쟁은 헬레니즘 시기 인식론의 주요 논점들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논점들은 근대의 인식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카데미아 학파』는 플라톤 아카데미아의 정통성에 관한 논쟁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플라톤의 철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소크라테스는 이후 헬레니즘 시기에 이르러 두 명의 정신적 계승자를 발견하는데, 한 명은 스토아 학파를 창시한 제논이고, 다른 한 명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계승한 아르케실라오스이다. 이 두 학파의 수장은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을 계승하여 좋음과 나쁨에 대한 앎을 획득함으로써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러한 앎의 획득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립되는 견해를 가졌다.

제논은 감각 인상에 기반한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통해 앎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감각의 수동성을 넘어서 지성의 능동적인 역할을 강조했고, 현자에 대한 탐구를 통해 확고한 앎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아카데미아의 계승자를 자처한 아르케실라오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끊임없는 탐구와 회의주의로 규정하면서, 제논이 주장하는 파악 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진리를 파악할 수 없고, 모든 주장들에 대해서 판단을 중지해야 함을 역설한다. 소크라테스의 진의를 둘러싼 상반된 해석은 이후 기원전 1세기 아카데미아의 몰락 단계에서 아카데미아의 진정한 후계자를 가리고자 하는 안티오코스와 필론에 의해 다시 반복된다.

제논을 계승한 스토아주의자들은 회의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제논의 인식론을 변호했을 뿐 아니라 회의주의의 원리 자체를 공격했다. 과연 참된 사태가 파악될 수 없다는 회의주의의 원리는 참된 것인가? 어떤 의견도 갖지 말아야 한다는 회의주의의 원리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삶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반론에 대해 신아카데미아는 자신의 원리들은 교조적인 학설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견해에 불과하고, 잘 검토된 설득력 있는 견해를 지니고서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들의 논리적 정합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후에 회의주의의 원리를 마치 학설처럼 간주하려는 온건한 회의주의가 아카데미아 내부에 등장하면서 신아카데미아는 급진적 회의주의와 교조주의로 분열된다. 이처럼 『아카데미아 학파』는 스토아 학파와 신아카데미아 간의 인식론적 논쟁의 전모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가 여러 세기 동안 거쳐온 변화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키케로는 대부분의 철학적 저작들을 대화편으로 저술했다. 그는 철학적 내용과 문학적 틀을 유기적으로 통일시켜 대화를 엮었으므로, 당대 로마 귀족사회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는 배경과 등장인물,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 간간이 드러나는 재미와 재치, 로마적 예시들을 통해 로마의 문화적 요소들이 충분히 음미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논점에 대해 찬반 양측의 대화자가 각자의 입장 및 이를 뒷받침하는 학설들을 체계적이고 일방적으로 연설하는 방식(perpetua oratio)이다. 이러한 키케로의 저술 방식은 대립하는 입장들을 동등하게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키케로 자신이 개진하는 다양한 의견들에 독자들에 가급적 편견을 갖지 않게 하면서도 낯설고 복잡한 철학적 입장들을 진지하게 고찰하도록 배려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또한 그가 신아카데미아의 입장을 자신의 저작에 창의적으로 구현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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