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의 역사 전체에 걸친 지배와 배제, 위계와 불평등의 논리
상태바
공해의 역사 전체에 걸친 지배와 배제, 위계와 불평등의 논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30 0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지구 오염의 역사: 산업혁명부터 현대까지 | 프랑수아 자리주, 토마 르 루 지음 |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638쪽

 

최근 몇 년 사이에 단일 주제로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한 뉴스는 환경에 관한 것이었다. 멀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삼림을 잿더미로 만든 대화재와 태평양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등 해외 토픽부터 베이징의 역대급 스모그 참사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 좀더 피부에 와닿는 문제, 그리고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다국적 대기업의 화학제품 피해 소송과 공장의 맹독성 가스 누출 사고 같은 비극, 탄소 중립, 신재생 에너지, 수소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오염은 유동적이어서 규정하기가 어렵고 그것의 한도에 대한 보편적이고 고정된 이해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환경 상품과 생태주의 라이프스타일이 대유행하고 있음에도, 환경 오염은 인류사의 어느 시기보다 다양해지고 심화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300여 년에 걸친 시기에 집중하며, 1970년대 이전에 오염 물질의 주요 생산지였던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세계 오염의 역사를 다룬다. 물론 근대 산업화 이전에도 환경 오염이 존재했지만, 18세기부터 발전한 산업자본주의가 환경 오염의 성격과 규모와 범위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은 공해를 유발하는 산업가와 그것을 규제하려는 당국만이 아니라 과학자, 정치가, 인문학자, 생태 운동가, 어부와 농부 및 노동자 들이다. 연대하거나 공모하고 때로 적대하다가도 타협한 이들의 사회적 행동 및 반응은 환경 오염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언제나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가난한 동네, 노동자가 많은 도시, 남반구 국가에 가장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책은 연속적인 환경 오염의 주기와 등장 및 소멸을 형성한 사회적 권력 관계에 특별히 관심을 쏟으면서 공해의 역사 전체에 걸친 지배와 배제, 위계와 불평등의 논리를 철저히 파고든다. 

1부 “환경의 산업화 및 자유화(1700∼1830)”는 농촌의 환경 오염이 심각하던 시기를 다룬다. ‘안온방해’, ‘부패’, ‘비위생’의 개념으로 보통 종교적·도덕적 맥락에서 다뤄진 당시의 환경 오염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이었다. 2부 “진보 시대 공해의 자연화(1830∼1914)”는 공해가 근대화의 구성 요소로 자리 잡고 현대적 의미를 획득한 시기를 다룬다. 3부 “새로운 대규모 공해: 독성의 시대(1914∼1973)”는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진보와 산업 팽창으로 초래된 피해를 가린 기간의 이야기다. 

마지막 “에필로그: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며”에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환경 오염의 양상을 다룬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현실적이고 우수한 통치 모델을 대표하지만 현상 유지에 악용되는 거짓 공약이 되기도 한다. 국제연합 체제는 온실가스 방출 감축에 대한 제한 장치 설치에 거듭 실패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염 물질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늘어나는 추세다. 20세기 말 화학 오염 물질의 재정의에 중요한 역할을 한 환경 호르몬, 21세기 들어 사용이 금지된 비스페놀 A와 프탈레이트를 비롯해 계속해서 시장에 등장하는 새로운 화학 물질들, 화장품뿐 아니라 항균성 의복과 식품 첨가제에 들어가는 나노 기술 입자, 새로운 잠재적 발암 물질로 등극한 휴대폰과 위성 안테나의 전자기장은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접촉하는 오염원이다.

디지털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되는 상상 초월의 에너지, 그리고 하이테크 폐기물로 드러나는 환경 불평등도 간과하기 쉽다. 청정 에너지원으로 여겨지던 원자력은 아직까지 정확한 대차대조표가 확인되지 않았다. 폭염 때문에 에어컨 사용은 계속해서 증가하는데 잠재적 온실가스로 판명 난 수소불화탄소의 대체 물질은 없다. 한편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물려받은 구식 환경 오염도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 환경 오염 체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중국에는 무시무시한 실례들이 많다.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이 모든 게 우리의 환경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얼마나 단편적인지 깨닫게 해준다.

지구는 매년 더욱 더워지고, 바다는 더욱 산성화하고, 종들은 점점 사라지고, 인간의 신체는 달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역사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망연자실한 상태로 가라앉거나 또는 우리가 효과적으로 조치할 수 없는 불가피한 과정을 그저 상상만 하고 있지 않도록 해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