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과 현대과학의 만남…과학과 영성 그리고 진화에 대한 통섭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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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현대과학의 만남…과학과 영성 그리고 진화에 대한 통섭적 이해
  • 최민자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1.11.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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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동학과 현대과학의 생명사상』 (최민자 지음, 모시는사람들, 472쪽, 2021.09)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팬데믹 단계에 돌입한 이후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 즉 영국의 ‘알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베타’, 브라질의 ‘감마’, 전염력이 훨씬 강한 인도의 ‘델타’ 변이에 이어 최근에는 더 치명적인 페루발 ‘람다’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어 코로나 시즌 2가 시작되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코로나 백신 접종자 면역원성 분석 중간 결과’에 따르면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中和抗體)량이 백신별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는 데다가, 델타 바이러스에 대한 중화항체량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과 화이자 백신 모두 각각 3개월 뒤와 5개월 뒤 접종 직후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아지는 등 백신효과의 지속력이 약화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 등에 따르면 코로나 변이도 심각하지만 기후변화는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구 온난화로 빠르게 녹고 있는 북극 빙하, 그린란드 빙하 그리고 남극 빙하가 바다로 유입되어 해류 순환 시스템을 바꾸고, 이로 인해 곳곳에 기후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과학계에서는 지구 자기장의 급속한 감소와 자기장의 교란으로 지자극(地磁極)의 역전 가능성, 즉 지구 극이동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전망한다. 지자극 역전으로 북극(N극)과 남극(S극)이 뒤바뀌는 현상이 일어나면 방향 감각을 자력에 의지하는 수천 종의 새와 물고기와 포유동물이 대멸종에 직면할 수도 있다. 지자극 역전 시 지축의 변화도 함께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대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게 되면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 등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전 세계적 현상은 인공지능(AI) 기술의 진화와 그 역기능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기 통솔체계에서부터 민간 상업 분야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의 응용범위는 실로 방대하며 심지어 정보의 바다 자체가 인공지능의 자유의지와 자의식이 싹트는 토양이 될지도 모른다며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마지노선이 무너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적 제어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윤리는 개발자와 과학자들의 윤리, 인공지능 시스템에 내재한 윤리 코드, 인공지능 시스템이 학습하고 추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로 대별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닉 보스트롬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 초지능이 등장하고 지능 대확산(intelligence explosion)이 일어나면, 특히 인류에게 비우호적인 초지능이 등장하면 인간의 운명은 이 초지능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해결책의 단초를 ‘최선의 인간 본성’에서 찾고 있다.

이처럼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그 형태가 다양한 것 같지만, 그 본질은 모두 인간의 의식 패턴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 패턴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설정한 가이드라인은 실효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대한 몰인식에서 파생된 것이다. 생명은 곧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며 ‘불가분의 전체성(undivided wholeness)’이고 생명의 ‘자기조직화’에 의해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것이니, 생명은 전일적이고 자기근원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심(公心)이 발현되어 ‘하나됨’을 자각적으로 실천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역사상 그 치열했던 철학적 사색과 과학적 탐색은 우주의 본질인 생명에 대한 규명을 통해서만이 모든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미망의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을 아는 것은 곧 ‘만사지(萬事知)’, 즉 만사를 아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후천개벽의 티핑포인트로 다가서고 있으며 한반도는 이원성과 분리성을 대표하는 마지막 사례가 되고 있다. 지구 문명이 대변곡점에 이르렀다는 징후는 지구의 생태 위기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부상, 그리고 과학과 영성의 접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 모두가 이 거대한 개벽의 파도를 타고 넘으려면 삶의 존재론적 반경을 설정하는 ‘세 중심축’, 즉 과학과 영성 그리고 진화에 대한 통섭적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동학에서 진화는 ‘내가 나 되는 것’을 향한 복본(復本)의 여정이다. 우리가 진화의 바다에서 의식의 항해(voyage of consciousness)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문명의 배’ 그 자체에 몰입한다면 생명과 평화의 문명은 개화할 수가 없다. 동학의 통섭적 사유체계는 포스트휴먼 시대가 처한 존재론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저서 『동학과 현대과학의 생명사상』(서울: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21)의 특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동학과 현대과학의 사상적 근친성을 생명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학과 현대과학의 사상적 조우(遭遇)의 단초는 현대 물리학의 ‘의식(意識)’ 발견에 있다. 양자계(quantum system)가 근원적으로 비분리성(nonseparability) 또는 비국소성(nonlocality)[초공간성]을 갖고 파동인 동시에 입자로서의 속성을 상보적으로 지닌다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적 관점은, 본체계와 현상계의 이분법이 폐기된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적 세계관과 상통한다. 또한 생명을 ‘하나’인 혼원일기(混元一氣, 至氣)로 보는 동학과, 우주만물을 잇는 에너지장(場) 즉 매트릭스(Matrix)로 보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이, 생명을 비분리성·비이원성(nonduality)을 본질로 하는 영원한 ‘에너지 무도(energy dance)’라고 보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상통함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동학과 현대과학의 통섭적 생명관에 대한 비교 고찰을 통하여 생명의 본질 자체가 주체-객체 이분법이 폐기된 ‘참여하는 우주(participatory universe)’의 경계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신성한 영(神靈, 靈性)’인 동시에 ‘기화(氣化, 物性)’로 나타나는 일심(一心, 天‧神‧靈)의 이중성을, 파동인 동시에 입자로 나타나는 양자계의 역설적 존재성과 회통(會通)시킴으로써 생명의 본체와 작용, 내재와 초월이 합일이며, 일심[에너지場, 매트릭스] 이외에 다른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가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패턴을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명명하는 복잡계 과학의 관점을, 만물화생(萬物化生)의 근본 이치를 제1원리인 하늘(天‧神‧靈)의 자기현현(self-manifestation)이라고 보는 동학의 관점에 조응시킴으로써 생명의 전일성과 자기근원성의 심원한 의미를 실제 삶의 영역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점이다. 

셋째는 생명 현상을 전일적 흐름, 즉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로 보는 양자물리학의 관점을, 생명의 본체[天‧神‧靈]와 작용[우주만물]의 묘합 구조로 보는 동학의 ‘시(侍: 모심)’ 철학에 조응시킴으로써 통합적 비전에 의해 세계가 재해석될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극도로 분절되어 있는 현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전일적 양태로 이들을 다시 통합할 수 있는 비전이다. 존재의 세 차원인 물질계, 양자계 그리고 비국소적[靈的] 영역은 곧 우리 의식의 세 차원으로 각 상위 차원이 하위 차원을 포괄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진화적 홀라키(evolutionary holarchy)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앎의 세 양태, 즉 육의 눈(肉眼), 마음(정신)의 눈(心眼), 영의 눈(靈眼)과 상호 조응한다. 과학혁명은 패러다임의 변환과 연계되어 있고 패러다임 변환은 사회구조 변화와 맞물려 의식의 진화를 위한 최적 조건의 창출과 관계된다.

넷째는 현실 세계가 부분이 전체를 포함하는 홀로그램과 같은 일반원리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홀로그램 우주론과, 우주만물[부분]이 하늘[전체]을 모시고 있다며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마저 넘어선 동학의 평등무이(平等無二)의 세계관이 물질의 공성(空性)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상통함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물질의 공성이란 우리가 물질이라고 지각하는 것이 에너지 진동에 불과하며 99.99%가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이 우주는 상호 연관과 상호 의존의 세계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만물만상이 끝없이 상호 연결된 생명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두 입자가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비국소적으로(nonlocally)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개체 없이도 즉각적으로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이론과도 상통한다.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해석과 결정론적 해석 간의 논쟁은 인식론상의 문제다. 양자역학이 물리학으로만 남을 수 없는 이유다. ‘양자 형이상학’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로 여기에 동학과의 접점이 있다. 


최민자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 정치학 석사, 영국 켄트대학교(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 정치학 박사, 중국 북경대학교 객원교수, 중국 연변대학교 객좌교수(客座敎授) 역임. 저서로 『무엇이 21세기를 지배하는가』, 『빅 히스토리: 생명의 거대사, 빅뱅에서 현재까지』, 『스피노자의 사상과 그 현대적 부활』, 『새로운 문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반도發 21세기 과학혁명과 존재혁명』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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