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심층과 보편적 가치에 대한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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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심층과 보편적 가치에 대한 통찰
  • 이재복 한양대·국문학
  • 승인 2021.11.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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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근대의 에피스테메(Episteme)와 문학장의 분할: 샤머니즘에서 딜레탕티즘까지』 (이재복 지음, 역락, 432쪽, 2021.09)

 

우리 문학사를 공부하다 보면 숙명처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근대라는 표상이다. 이 표상은 의식 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나를 늘 불편하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내 학문에 대한 자의식의 출발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근대란 단선적이지도 명쾌하지도 않은 모호하고 복잡한 그 무엇이었다. 근대가 구체적인 실체와 부피감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복잡한 관념의 덩어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근대의 실체, 다시 말하면 근대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원리와 형상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근대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그만큼 근대 전체를 아우르려는 내 의지도 커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근대라는 시기와 그 이전과 이후 시기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차이를 통해 근대라는 시기를 지배해온 인식론적 틀과 무의식의 원리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푸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것은 시대에 따른 질서의 틀, 곧 담론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담론 속에서 어떤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명명하였다. 푸코의 이 논리에 다르면 우리가 근대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대를 지배하고 아우르는 질서의 틀을 어떻게 찾아내고 또 그것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고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이 결코 간단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우리 근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난맥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바이다. 한 세기도 채 되지 않는 시기에 근대 혹은 근대성의 틀을 갖추어야 했던 우리의 경우 여기에서 시대에 따른 온전하고 안정된 질서와 원리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근대 논의에는 늘 ‘사이비’, ‘새 것 콤플렉스’, ‘단절’, ‘이식(移植)’, ‘식민지’, ‘개발 독재’ 같은 특수하면서도 다양한 부정적인 의미가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것 아닌가. 이렇게 모호하고 복잡한 우리의 근대에 대한 논의를 전체의 틀 안에서 수렴하여 여기에서 질서정연한 구조적인 틀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위적으로 그 틀 안에 배치하고 의미화 하는 것은 우리의 근대를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근대 논의에 또 다른 도그마를 낳을 위험성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나는 우리의 근대를 에피스테메의 틀 안에서 들여다보되 그것을 성급하게 구조화하지 않고, 작가 각자의 의식이 투명된 사상, 실존, 글쓰기의 차원에서 그것을 살펴보았다. 

근대 시기 우리 작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의식의 과정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전통’에 대한 관심과 태도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근대를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상황에서 급격하게 진행된 근대화로 인해 주변부로 밀려났거나 은폐되어버린 우리의 전통을 들추어내어 그것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려는 의도가 여기에 내재해 있다. 특히 김동리와 황순원이 보여준 샤머니즘에 대한 전경화와 그것을 통한 근대의 이면을 탐색하는 과정은 단순히 근대와 전근대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전통의 근대적 재발견이라는, 다시 말하면 작가 개인의 전통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러한 태도는 조지훈에 오면 샤머니즘이 우리 문화와 종교의 기원이라는 논리로 발전한다. 지훈은 우리 전통을 기원과 발생, 존재와 생성, 중용과 혼융, 정신과 생명 등 네 개의 원리로 질서화 하여 고찰함으로써 샤머니즘은 물론 지조(志操), 멋, 아름다움, 고움, 한, 중용, 혼융, 경경위사(經經緯史) 같은 세계를 발견해내고 있다. 그가 발견해낸 이러한 세계는 근대 이후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는 결코 근대와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적인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탐구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가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 전쟁과 개발 독재라는 굴곡진 역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그 질서 내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실존 의식’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끊임없이 어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선택을 강요받았을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떤 이념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령 이상의 패러독스, 박목월의 적막한 감각, 전봉건, 박남수, 구상, 김광림, 김종삼의 실향 의식, 이병주의 휴머니즘과 딜레탕티즘, 이문열의 중심, 변경, 초월의 이데올로기, 산문시대 동인들의 내면화와 교양 추구 그리고 복거일의 자유주의와 현길언의 평화에 대한 의식 등은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개발 독재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들이 선택하고 만들어낸 하나의 실존적 이념이었던 것이다. 이 각각의 이념들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거나 화해하고 공존하면서 근대의 에피스테메 상을 구축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다양한 의식과 실존의 방식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권력 담론의 장으로 볼 수 있다. 근대문학은 이러한 담론의 장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근대에 대한 인식과 무의식의 원리로 만들어지는 에피스테메와 이 에피스테메에 의해 근대의 문학장이 탄생(분할)하는 과정은 근대문학에 대한 이해에 구체성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보인다. 모호하고 복잡한 우리의 근대와 이 시기를 지배해온 인식론적 틀과 무의식의 원리 같은 것들을 발견해내려는 작가들의 면면은 그 자체가 근대성에 대한 지적 모험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작가들의 근대성에 대한 지적 모험의 정도와 우리 근대문학의 수준과 지평의 열림 정도는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은폐된 세계를 잘 드러내기 위한 인식 틀과 무의식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근대문학 전반에 대한 더 많은 탐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샤머니즘에서 딜레탕티즘까지’라는 이 책의 부제가 잘 말해주듯이 이 둘 사이의 생소함과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일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지난한 일인지도 모른다.

거의 이 년 가까이 새로운 세계에서 외롭게 칩거한 것 같다. 코로나라는 이 미증유의 대란이 나 자신과 내 공부를 되돌아보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감히 두려워 엄두도 못 내고 끙끙거리고 있다가 세상을 향해 내 놓은 근대의 에피스테메에 대한 글이 다시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재복 한양대·국문학/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상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소설과사상』 겨울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쿨투라』, 『본질과 현상』, 『현대비평』, 『시와 사상』, 『시로 여는 세상』,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편집·기획위원을 역임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몸과 그늘의 미학』, 『내면의 주름과 상징의 질감』,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근대의 에피스테메와 문학장의 분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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