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옥과 개천에서 용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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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지옥과 개천에서 용 나기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11.2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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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에세이]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

60대 후반인 나는 어릴 적 ‘입시 지옥’ 속에서 살았다. 중학교 들어갈 때 시험 쳤고 고등학교 갈 때도 시험 쳐서 들어갔다. 국민학생일 때도 과외를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성적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그냥 비용 조달이 가능한 집에서는 다들 그렇게 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갈 사이 한두 달 동안 영어 과외 하는 녀석도 있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처럼 되었지만 중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시작한 그때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돈은 있고 공부는 어중간한 녀석들이었다. 

35년 전에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 ‘얘가 대학 갈 때는 사정이 좀 나아지겠지’ 생각했는데 별반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좀 나아지기는 했다. 초중등학교에서 시험 석차를 매기지 않았고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없어졌다. 그래서 입시 지옥은 없어졌다. 아이들이 지옥을 탈출하자 이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평준화된 뺑뺑이 학교를 못 믿겠다고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사교육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지옥 시즌 1이 끝나고 지옥 시즌 2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 맛이 심심했다. 문제는 여전하였지만 지옥의 지독함은 낮아졌다. 

가진 자들은 있는 돈을 사용하여 경쟁에서 앞서고 싶다. 정부가 중등 교육에서 입시를 없애서 교육이 ‘하향 평준화’ 되고 ‘수월성’이 저하되어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한탄하던 있는 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자사고, 특목고에 만족하지 못하고 족집게 과외, 외국인 학교, 조기유학 등등에 의존하였다. 사교육 과잉의 국가적 낭비는 영어 광풍으로 이어졌다. 영어 사교육은 다른 사교육에 비하여 돈이 더 들어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구분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영어 유치원 보내는 것은 상류층 뿐 아니라 중산층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아이가 학교 들어가서 기 죽을까봐 울며 까나리 액젓 먹기로 저지른다는 이 전국적 어리석음은 교육을 통한 계급 구분의 최신판이 되었다.   

 

한국의 학벌주의는 세계 제일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많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교육 전문가들은 교육 체제와 교육 현장에서만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데 지극히 근시안적이다. 한국의 학벌주의가 세계 제일인 것은 단일 사회 한국의 계급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적어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는 평민과 귀족의 신분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남아있고, 미국에서는 노예 출신과 농장주 출신의 구분이 아직도 굳건하다. 학벌 차이는 거기서 자연히 나온다. 한국에서는 반서 구분이 일제 치하에서 사라졌고 전쟁을 겪으면서 경제적 하향 평준화가 이루어져 계급 구분이 희미해져 버렸다. ‘내가 저런 것들과 어찌 어울리랴?’ 하는 정서를 실현해 줄 계급 기반이 희미해지자 사람들은 학벌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한국에서도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계급 구분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입시 지옥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상당히 많이 나왔지만, 그 지옥이 사라지자 이제 강의 제법 큰 지류에서도 용이 잘 안 나오게 되었다. 용은 이제 한강에서만 나오려나? 입시의 다양화를 명분으로 나온 수시 입학제와 입학사정관제는 입시제도의 다양화와 창의적 교육을 위한 좋은 제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의 기회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수능 위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능 위주 입시는 그동안 적어도 말로는 중시되던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 고양 등의 고상한 가치와 충돌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시 확대는 과연 그런 가치들을 고양했던가? 또 다른 비리와 비뚤어진 경쟁의 온상이 될 뿐이었다. 이왕 그럴진대 개천에서 나온 용들을 좀 더 구경하는 것이 나을 법도 하다. 

한국에서 학벌주의는 앞으로도 계급구분의 가장 강건한 기반이 될 것이지만 자본주의적 계급 구분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으므로 그 비중은 다소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과 대학 입시 문제의 성격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영국과 미국처럼 신분이나 계급의 구획이 확고해지고 노동자 집안 아이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특별한 능력이나 특별한 온정주의적 우대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지면, 우리의 입시 문제도 사회적으로 덜 중요해질 것이다. 아예 문제로 성립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회는 변하고 대학도 변한다. 아이는 줄어드는데 대학은 너무 많아 없어질 대학들이 줄을 서 있다. 대학 입학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최상위권 즉 한강에서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겠지만 이제 원하면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지옥 생활을 겪었던 이 할배는 부러울 뿐이다. 그동안 입시 제도가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입시 지옥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 때문에 사라졌다. 남은 문제는 역시 개천과 용의 문제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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