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음악’, 그의 관계망을 바탕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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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 그의 관계망을 바탕으로 바라보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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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베토벤 : 사유와 열정의 오선지에 우주를 그리다 | 마르틴 게크 지음 | 마성일 옮김 | 북캠퍼스 | 616쪽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 그의 위대함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장애를 극복하고 수많은 명곡을 써낸 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베토벤만의 깊이 있는 음악, '음악의 풍부함'이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 만들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베토벤 음악의 풍부함의 원천, 즉 음악에 대한 그의 발상과 동기를 찾아 나선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베토벤의 음악과 베토벤의 주변 관계'를 연결 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부터 책의 내용을 구성한다.

셰익스피어와 루소, 바흐는 베토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베토벤은 괴테, 나폴레옹, 헤겔과 같은 동시대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리하르트 바그너와 글렌 굴드, 올더스 헉슬리에게 베토벤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수용의 관계망을 탐색하면서 저자는 베토벤 음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동시에 베토벤 음악이 지닌 역동성의 정점을 소개한다.

저자가 자신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베토벤 음악의 권위를 내세우는 전문가이기보다 독특한 견해와 다양한 작품으로 베토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목소리로 이루어진 합창단의 한 일원으로서 베토벤에 대해 써야 할 시간이 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독일 음악학의 대가 마르틴 게크다. 1976년부터 2001년까지 도르트문트 대학의 음악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이 책에서 ‘베토벤’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는 열두 개의 주제를 36명의 역사적 인물과 함께 집중 조명한다. 17~19세기 독일 음악사 연구와 관련 저작 활동을 활발히 한 그는 자신의 내공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녹여냈다.

이 책은 베토벤 음악을 둘러싼 수용의 관계망들을 ‘베토벤하면 회자되는 열두 개의 주제’로 엮어서 소개했다. 이를테면 교향곡 3번은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한 곡이었다는 담론을 두고는 베토벤 음악의 충실한 제사장이었던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베토벤 해석에 신선한 시각을 던진 ‘베토벤 패러다임’의 리디아 고어로 이어지는 흐름을 잡아 ‘거인주의’로 묶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베토벤 음악에서 ‘그들 나름대로’ 무엇을 들었는지 염두에 두고 듣는다면 베토벤을 듣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의 흐름을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베토벤이라는 이름의 궤적은 오늘날 철학적 흐름에서 보면 비동일성의 지평에서 끊임없이 동일성을 추구한다고 가정해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말은 ‘열린 결말’이라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관을 맺기 마련이다. 모든 예술 작품도 시대적 특성과 관련 있다. 베토벤이 활동한 19세기 초부터 예술적 주체에 의해 좌우되기 시작한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술적 주체는 경험적 주체와 떼려야 뗄 수 없지만 우리가 위대한 작곡가의 삶과 작품을 서로 연관시킨다고 해서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단지 작품과의 소통이 조금 수월해질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이 책은 베토벤 전기나 평전과 방향을 달리하면서 읽는 우리들에게 베토벤 음악과의 소통을 좀 더 수월하게 해 주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이러저러한 삶의 운명에 자신을 이입하면서 음악 작품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 우리 안의 어떤 사회적 특성 때문에 베토벤 음악에 심취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사람들 자신만의 베토벤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당대인들을 비롯해 그의 후대인들이 받아들인 인간 베토벤과 작품을 통해 시대정신과 베토벤 음악이라는 우주를 가늠하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사유를 바탕으로 한 우아하고 섬세한 글쓰기가 매력적인 이 책은 베토벤 음악에 대한 폭넓은 분석인 동시에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을 위한 하나의 매뉴얼이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이 해를 목전에 두고 이 책의 저자 마르틴 게크가 작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울림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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