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 자유와 평등의 융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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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 자유와 평등의 융합을 위하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1.2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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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 9강〉_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토크빌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1. 서양사상 제 9강 최장집 명예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 중 서론 일부와 결론을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 자유와 평등의 융합을 위하여


최장집 교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인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1권 1835년, 2권 1840년 출간)를 매개로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살피고자 한다. 요컨대 1831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미국 탐사 여행을 하면서 “183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던 새로운 민주주의, 이른바 “원초적 민주주의(proto-democracy)”를 마주한 뒤 저술한 결과물을 바탕으로 여전히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원리가 길항하는 과정을 되짚어본다. 토크빌이 보기에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국가 권력의 확대를 표상하는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행정 체제의 중앙집중화”를 한편으로, “그와 짝을 이루는 사회의 원자화에 의한 개인의 무력함과 대중 권력의 창출이라는 현상”을 다른 한편으로 함에 따라 “민주적 전제정(democratic despotism)”이라는 형용모순의 상황, 즉 “다수의 전제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적인 위험을 동반”하게 되는데 이는 최근 인류가 대면 중인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내지는 포퓰리즘의 문제들과 일정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한다. 19세기 토크빌의 통찰, “국가 권력의 확대”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개인과 사회에 대해 자유를 억압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오늘의 우리에게 “지적 충격을 준다”고 말한다. 

 

지난 9월 25일, 최장집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9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들어가는 말

본 강연에서는 현대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 이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드러내는 문제들에 초점을 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미국 민주주의”의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 두 원리는 상호작용의 관계를 통해 상대를 떠받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호 모순적 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아가서는 토크빌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로 생각하는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는 19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본격화되는 민주주의의 한 이념형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토크빌이 봤던 1830년대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는 본격적으로 그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 또는 원초적 민주주의(proto-democracy)라 하겠다. 텍스트에서는 두 개의 수준이 존재한다. 하나는 법과 제도, 그것이 창출하는 권력 구조로서의 정치 체제, 내지 통치 체제의 구조와 그 특징과 작동의 효과라는 수준이 그것이다. 또한 그와 동시에 사회 권위의 위계 구조, 그리고 그가 “정신 또는 마음과 감성의 습관”(프랑스 말로 moeurs, 영어로는 mores)을 의미하는 것을 포함하는 사회 수준에서의 문화적, 정신적 특성과 변화를 포함하는 사회적 수준이 있다.

토크빌은, 민주주의하에서 국가 권력의 확대를 표상하는 권력의 중앙집중화와 행정 체제의 중앙집중화를 한편으로 하고, 그와 짝을 이루는 사회의 원자화에 의한 개인의 무력함과 대중 권력의 창출이라는 현상을 다른 한편으로 할 때 민주주의가 형용모순적인 말로 민주적 전제정(democratic despotism)이라는 상황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또한 그것은 “다수의 전제정(tyranny of the majority)”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적인 위험을 동반한다. 토크빌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말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최근년에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내지는 포퓰리즘의 문제들과 일정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2. 토크빌은 어떤 사람인가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성, 즉 자유주의의 취약함이 얼마나 민주주의의 한계를 내장하게 되는가를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토크빌은 이 점에 대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2권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민주주의 혁명이 불가항력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혁명으로 인해 탄생한 민주 사회들에 대해 이 책에서 때때로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고 독자들은 아마도 놀랄 것이다. 간단하게 답변하자면, 나는 민주주의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민주주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평등이 증가함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가 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데 있다.

. . . . .

5. 결론

1) 토크빌은 민주주의를 “(사회적) 조건의 평등(l’égalité des conditions, the equality of conditions)”으로 특징짓는 데에서 보여지듯 특정 형태의 사회적 조건으로 이해한다. 그의 이론을 “사회의 발견”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권력의 중앙집중화를 구현한 관료적 행정 체계를 장착하는 국가를 한편으로 하고, 동시에 그 체제하에서 그것과 병행하는 개인의 원자화가 동시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사회적 특성을 또한 발견하기 때문이다. 토크빌과 유사한 자유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지녔던 J. S. 밀과는 달리, 토크빌이 말하는 자유에 대한 제약은, 단순히 사회적 전제정이 불러오는 결과는 아니다. 그것은, 체제 순응(social conformism)이 창출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의 결과물이다. 다수의 전제정과 개인의 원자화로 인한 사회적 순응이라는 인간의 정신적, 사회심리적 차원에서의 부정적 효과가 정치적인 것에 비해 훨씬 더 부정적이다.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심오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의 발견과 병행하여, 또는 그 파생적 문제로서 현대 정치학에서, 또는 전후 근대화 이론에서 중심적인 이론적 테마의 하나는 정치 문화이다. 토크빌은 정치 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중심 개념의 하나인 “마음과 가슴의 습관” 또는 “태도와 습관”(moeurs/ mores)은 한 정치 공동체에서 긴 역사적 시간을 통해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집합적 경험과 행위의 집적(集積)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또한 민주주의는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민주적 문화가 다른 어떤 것보다 민주화를 추진하는 “기예”의 역할을 창출해낼 수 있는 바탕이 된다.

2)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1권 서론(Introduction)과 2권의 저자 서문(Author’s Preface)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구분하면서 습관과 태도와 비정치적 결사체에 초점을 두는 자신의 관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토크빌의 이론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의 자율적 결사체의 발전에 희망을 건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분명 많은 현대의 “네오-토크빌주의자들”로 통칭되는 시민사회에 대한 도덕화한 관점과 잘 상응하는 지점으로 이해돼왔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적 조건에서 현대적 토크빌주의자들의 방식으로 정치 영역과 시민사회의 구분을 이해하는 것은, 토크빌의 구분을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토크빌의 이론 틀에서는 정치적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권력의 중앙집중화, 민주적 전제정, 행정적 관료화와 같은 부정적 효과를 창출한다고 할 때, 그것과 대응할 수 있는 다원주의적 결사체를 형성하는 것을 통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곧 시민사회인 것이다. 즉 원자화된 개인들을 공동의 관심과 가치, 그리고 사적 이익을 결사체로 조직화하여 민주적 전제정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시민사회에서의 자율적 결사체의 몫이다. 요컨대 시민사회는 곧 민주주의가 자유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적 조건이자, 원동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토크빌의 명제가 보다 보편적인 효능을 갖기 위해서는 미국이나 서구의 선진적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상이한 조건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미국에서의 네오 토크빌주의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미국 민주주의에서의 후퇴가 시민사회에서의 쇠락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관점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지난 세기 1970년대 이후 서유럽의 복지 국가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지각 변동이 일어났고, 그에 대응하는 중남미에서, 또는 세계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개발도상 국가들이나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민주화나 사회경제적 운동들을 통해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특징과 양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그 역사적, 정치사회적 특성들에 있어 미국적 조건의 그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또한 지난 세기 전간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나치 체제의 등장이 이데올로기적 라인을 따라 극우적 결사체의 증가로 시민사회가 뚜렷하게 강화된 사회적 조건과 병행했다는 사례 또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나아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한국적 특성은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시민사회의 발전은 민주화 운동이 확대되었던 시점에서 권위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의 폭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민주화의 사회적 기반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고, 강력한 중앙집중화한 관료 행정 체제를 장착한 민주 국가가 발전하는 상황 하에서는, “시민사회 대(對) 시민사회”라 할 만한 보수와 진보 세력 간 이데올로기적 양극 분화의 사회적 기반이 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한국 시민사회의 한 가지 중요한 특성은, 직업 직능적 이익 집단, 공익적 시민 단체, 그리고 여러 사회 문화적 단체들이 쉽게 정치화되고, 또한 국가의 행정 관료 기구의 하위 집단적 성격을 띠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특성은 권위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요컨대 민주주의 하에서도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결사체들의 자율성이 강력한 국가에 의해 원천적으로 제약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토크빌이 말하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에서의 시민사회와 잘 상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그러한 제약으로 인해 토크빌이 말하는 다른 측면, 시민사회에서의 원자화된, 그리고 그 결과로 또는 그것과 병행하면서 나타나는 “다수의 전제정”을 통한 가치 무정향적 체제 순응주의에 대응할 수 있는 시민사회를 발견하기 어려운 현상을 피할 수는 없게 된다. 현재의 시점에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시민운동의 주도하에서 국가의 후원-지지(patronage)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정부의 중심적 지지 기반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3) 토크빌의 이론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한국 민주주의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또는 포퓰리즘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방향으로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그 어떤 정치철학, 정치이론보다 강력한 설명력을 지닌다. 왜냐하면 토크빌이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평등보다 자유를 더 강조했던 민주주의 이론가이자, 철학자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정치철학적, 이론적 원리를 결합하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이론을 정립한 개척적 정치철학자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19세기 후반은 현대 민주주의를 만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다. 당초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적 이상이 그 사상적, 정치적 전통에 있어 다른 자유의 이상과 서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의 현대 민주주의에서 평등과 자유라는 상이한 두 원리가, 민주주의의 두 기둥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 역사적 계기였다. 그 원조이자, 그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토크빌이다. 민주주의 이념의 발전사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양대 축, 바로 평등과 자유라는 두 이념, 두 가치가 각기의 원래의 특성을 지우면서 구분하기 어렵게 혼합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 간의 관계가, 각기의 특성들을 찾아내는 상호 간의 경계는 고사하고, 각기의 특성 그 자체들까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합되는,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의 발전의 행복한 역사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에 부차적인 요소였다고 할 자유(주의)가 이제는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아이디어의 내적 논리로 자리 잡게 됐다. 현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접두사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단순히 민주주의라고 말할 뿐, 그것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줄임말 이상이 아닌 것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이자 민주주의 이론가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민주주의가 두 원리로 구성됐다는 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의 이론 또는 실천을 부르주아지의 권력으로 정의한다면, 자유주의를 부정하기는 지극히 쉽다. 그렇지만 자유주의를 어떤 운 좋은 사람들이 국가 권력을 소유한 덕분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억압되지 않는 것으로서의 자유로서 이해할 때 그것을 거부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어쨌든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평등과 자유, 두 원리 사이에서 자유주의의 범위 내에 민주주의는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자유주의를 뛰어넘어 곧바로 민주주의로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와 논쟁적 지점이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기초한 현대 민주주의는 2010년대를 전후로 한 시기에 이르렀을 때,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이라 할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발전을 향한 어떤 역사적 계기로서보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이해된다.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또는 포퓰리즘의 위력적 출현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원조로 하는 미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확산되면서 기존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도전하는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적 경험의 역사가 누적돼가는 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노정하면서,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천이 확대 심화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지금 우리는 그 현상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를 중심에 두는 민주주의를 처음으로 이론적으로 심화시킨 토크빌을 통해 우리는 그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고, 또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지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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