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해부에서 DNA까지, 현대의학을 가능케 한 서양의학의 10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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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해부에서 DNA까지, 현대의학을 가능케 한 서양의학의 10대 발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2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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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도전: 질병, 고통, 죽음에 맞선 의학의 연대기 | 마이어 프리드먼·제럴드 W. 프리들랜드 지음 | 여인석 옮김 | 글항아리 | 400쪽

 

유전자 편집과 인체 냉동 등 첨단 기술이 의학의 최전선을 날마다 개척하는 가운데 특정 질병의 치료법이나 생명의 신비 등 수많은 분야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인체 구조와 기본적인 작동 원리부터 DNA까지 이미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을 바탕으로 현대의학의 쾌거와 앞으로의 과제를 막연히 받아들인다. 현대의학에 대한 기본 이해의 바탕에는 지난 600년간 계속돼온 서양의학의 도전이 있었다. 인체 해부학과 심장의 작동 원리, 박테리아와 항생제, 바이러스와 백신, 마취술과 엑스선, 조직배양과 DNA 이중나선의 발견 등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의학지식은 해당 기술이 발견될 당시의 사회적·학문적 조건과 함께 개인의 호기심, 천재성과 우연, 인내와 집중, 조직적 탐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의학적 조건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의문을 품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서양의학에서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한 열 가지 발견의 과정과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한 이 책은 의학, 나아가 과학의 진보를 이해하는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책은 의학이라는 대주제를 ‘몸과 마음의 구조 및 기능’ ‘질병과 외상의 치료’ ‘진단기술’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그런 다음, 서양의학사의 수천 가지 발견 가운데 중대한 백 가지를 선정했다. 거기서 다시 스물다섯 가지를 꼽은 후, 다시 열 가지를 최종 선정했다. 저자들은 이 열 가지 키워드를 동료 의사들과 고의서를 수집하는 의사들, 고의서 전문 서적상 등 폭넓은 전문가들에게 교차 확인해 최종 확정했다. 

현대의학의 역사는 과거 유산의 계승과 타파를 통해 쓰였다. 첫 장을 여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 해부학이 그 시작이다. 베살리우스의 시대에는 인체에 손을 대는 것이 금기시되었다. 인간 몸에 대한 당대의 지식은 모두 동물 해부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특히 신격화에 가까운 추앙을 받던 로마 시대 의사 갈레노스가 남긴 유산(개나 원숭이를 해부해 기술한 인체의 구조와 기능)에 반하는 일은 오랫동안 목숨을 거는 이단 행위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1900년이라는 기나긴 공백기를 지나 인체 해부의 길이 열린다. 젊은 베살리우스는 어떤 대기를 치르고라도 인체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차서 인체의 뼈와 근육을 얻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고 미친개들과 싸워가며 주검을 찾았고, 썩어 들어가는 시체와 며칠을 한 방에서 보냈다. 그는 갈레노스의 오류를 감히 지적하며 과학적 사실을 예술적인 삽화와 함께 실은 불멸의 걸작 『사람 몸의 구조』를 1543년 출간한다. 베살리우스는 이 책을 통해 간이 피를 만든다고 했던 갈레노스의 여러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고, 뼈가 우리 몸을 지탱하고 보호하며 운동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비롯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중대한 해부학적 사실들을 밝혀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문제에 접근하는 과학적 방법이라는 선물을 의학에 안겼다.

윌리엄 하비는 영국이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자랑스러워하는 위인이다. 저자들이 하비를 그럴 만한 인물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심장과 혈액순환의 관계를 밝혀냈을 뿐 아니라, 이후 의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 된 실험이라는 원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의학사를 바꿔놓은 저작 『심장의 운동에 관하여』를 출판할 때 하비는 갈레노스를 비판하는 데 따른 위험을 잘 알았다. 그는 죽어가는 뱀의 심장에서부터 노출된 상태에서 여전히 박동하는 인간의 심장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관찰한 바를 집요하게 시연했다. 그런 신중함과 인내심, 노련함으로 하비는 왕립학회의 모든 회원에게 심장에 의해 피가 온몸을 순환한다는 자신의 혁명적인 이론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하고, 갈레노스의 이론을 완전히 타파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포목상 안톤 판 레이우엔훅은 취미로 만든 현미경과 그것으로 관찰한 자연적 지식을 왕립학회 학술지에 50년간 기고했다. 그중 열여덟 번째 편지가 그의 업적에 불멸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것은 물통에 담긴 빗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동물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이 작은 생물들이 인간에게 치명적인 적은 아닐지 의심한다.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포목상이 주장한, 빗방울에서 수많은 생물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동시대인들을 놀라게 했다. 레이우엔훅은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려 자기 발견을 확인함으로써 학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후 여러 편지를 통해 이 작은 생물들이 부패한 조직에 모여 살 뿐 아니라 부패 자체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레이우엔훅은 온갖 동물의 배설물과 기관, 자신의 배설물 정액 치태 등으로 관찰을 이어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의 세계를 발견하고 미생물학·세균학·원충학의 개념에 근접한다. 로베르트 코흐와 루이 파스퇴르는 그의 뒤를 이어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밖에 이 책은 현대의학의 도약을 이룬 대표적인 발견과 그에 얽힌 일화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냉정하게 평가한다. 종두법을 발견해 천연두를 지상에서 몰아내며 백신의 시대를 연 에드워드 제너, (일명 웃음가스로 통했던) 에테르 파티에서 멍이 들어 마취술을 발견하게 된 크로퍼드 롱, 엑스선이 살을 투과해 뼈와 장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을 발견한 기계공학자 빌헬름 뢴트겐, 살아 있는 세포를 생물체가 아닌 실험실에서 키울 수 있도록 한 조직 배양법을 발견한 조지 해리슨, 콜레스테롤과 관상동맥질환의 관련성을 밝힌 니콜라이 아니치코프, 배양접시에서 우연히 페니실륨 곰팡이의 항균작용을 발견한 페니실린의 발견자 알렉산더 플레밍, DNA가 유전정보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어윈 샤가프와 이로부터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로절린드 프랭클린까지―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의학 기술이 탄생하기까지는 노력과 탐구도 있었지만 전략과 경쟁, 영광과 질투도 있었으며 그 아래 가려진 무수히 많은 사람의 헌신과 희생도 있었다.

10대 발견을 갈무리하며 저자들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열 가지 발견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운이나 우연이 얼마나 작용했는가? 선구자의 공헌이 있었는가? 사회적 조건이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발견자들의 인간적 매력과 흠결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들은 오늘날 의학의 현장에도 던져볼 만한 것들이다. 저자들이 말하듯, “21세기에는 언젠가 의학적 성취가 앞서 서술한 열 가지 업적에 필적하거나 이를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 (…) 그러한 발견은 아직 꿈조차 꾸지 못한 도구와 기술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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