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미생물의 전쟁과 화합, 공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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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미생물의 전쟁과 화합, 공존의 역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22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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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 김응빈 지음 | 교보문고 | 288쪽

 

지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생명체는 무엇일까? 바로 세균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체 화석은 36억 년 전쯤에 존재했던 세균의 것이다. 46억 년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새벽 5시쯤 처음으로 세균이 탄생했고 밤 9시까지는 미생물만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약 30초 전,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자연히 미생물은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했고, 우리가 그 존재를 눈치채기 전부터 남몰래 인류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해왔다.

인류는 미생물 때문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많이도 겪었다. 우리의 생활, 문화, 의학, 전쟁사는 미생물이 없었다면 완전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미생물은 우리에게 음식과 술을 만들어주고 생명을 구하는 항생제를 제공하는 등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일으켜 인류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는 적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미생물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미생물은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지금도, 앞으로도 미생물은 한없이 유용한 존재이면서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세계대전부터 6·25전쟁, 성경부터 조선왕조실록까지 우리나라와 동서양의 다양한 이야기 속 미생물을 살펴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 하나. 너무 작아 인지하지도 못했던 존재가 인류의 삶을 바꾸어놓은 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 가공할 위력을 우리는 바로 지금도 느끼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게 옷을 입는 것처럼 당연해지고, 해외여행을 비롯해 인류의 이동이 멈췄다.

우리가 사랑하는 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질병, 그 질병을 치료한 약, 세계의 패권을 바꾼 전쟁.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 미생물이 존재했다. 미생물은 인간에게 큰 즐거움과 위안을 주었다. 하루의 근심을 털어낼 수 있게 해주는 술 한 잔은 미생물의 선물이다. 수렵 채집에서 농경 정착 생활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투프 사람들이 아껴둔 보리죽에 야생 효모가 몰래 들어가지 않았다면 인류가 술맛을 알고 주조를 하는 데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미생물은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만약 슈베르트가 매독균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하고 훌륭한 곡을 더 많이 작곡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고통이 더욱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생물은 인간에게 끔찍한 질병도 주었지만 그 병을 이겨낼 위대한 약도 선물했다. 플레밍의 실험실에 푸른곰팡이 페니실륨이 우연히 날아들지 않았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페니실린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항생제는 악인의 생명 또한 공평하게 구해내며 역사를 또 한 번 바꿨다. 바로 발키리 작전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히틀러의 목숨이다. 그때 페니실린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죽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은 아주 다르게 종결되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미생물이 세계의 권력 지도를 바꾼 일은 수없이 많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 군함에 ‘1918년 인플루엔자’가 무임승차하지 않았다면 유럽 연합군은 승기를 잡지 못했을 수도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육군의 3분의 1이 장티푸스균에 당하지 않았다면 전쟁의 승리자는 스파르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세계의 문명을 바꾼 그리스 문명은 우리가 아는 모습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미생물은 때로는 인류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 또 때로는 무서운 적이 되어 세계사를 움직였다. 미생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계사는 새롭고 신비롭게 다가올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은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웠다. 전쟁의 열악한 환경과 위생상태 속에서 미생물은 언제나 어부지리를 얻었고, 때로는 전쟁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러한 미생물의 영향력을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마침내 알아챈 인류는 미생물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 시절 미생물은 생명체이기 전에 병원체로 다가왔다. 미생물은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목숨을 노리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박멸의 대상이었다.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발전해왔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안타깝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미생물을 우리의 적으로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소수고, 대다수의 미생물은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생물이 없어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미생물은 역사 속에서 음식과 약, 자원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는 미생물과의 전쟁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지나치기 쉬운 이런 미담들 또한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인간과 미생물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돌아보고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미생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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