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선정에 문중적·폐쇄적 한계를 넘어 도덕적·학문적 원칙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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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선정에 문중적·폐쇄적 한계를 넘어 도덕적·학문적 원칙 적용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22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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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안조씨언행록: 5백 년 명문가의 도덕적 원천 | 김종수 지음 |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 258쪽

 

한 성씨의 역사를 기록하고 가계의 연속성을 나타낸 족보(族譜) 혹은 세보(世譜)의 기원은, 멀리 중국의 상(商)·주대(周代)로까지 소급될 정도로 그 연원이 몹시 깊다. 갑골이나 청동기에 세계(世系)를 기록한 단순한 형태에서 출발한 족보의 시원은, 목판본 활자체로 전환된 시대로 진입하면서 그 한 정점을 구가하게 된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러 문중에 따라서는 한 개인의 직계와 동종의 친족집단 구성원을 아울러 등재한 공동 기록물인 가첩류(家牒類)에 도덕적 에토스를 가미시키는 식의 특별한 변화를 추구하였으니, 함안조씨 범 덕곡공파 문중에서 간행한 『함안조씨언행록(咸安趙氏言行錄)』이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 서책은 고려 말엽의 충신인 덕곡(德谷) 조승숙(趙承肅, 1357~1417)을 파조로 옹립한 범 덕곡공파 문중에서 1963년도에 발간한 『함안조씨세보』 권1에 수록되어 있다.

『함안조씨언행록』이 담지한 독특한 텍스트적 가치는 무려 500여 년에 달하는 기나긴 역사적 무대를 시간적 좌표로 설정한 가운데, 엄선된 68인에 한정된 인물들의 귀감이 될만한 언행을 객관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취급한 데서 발견된다. 왜냐하면 『함안조씨언행록』은 려말의 절의지사인 조승숙의 행적 묘사에서 시작하여, 해방 정국을 맞이한 1950년 무렵의 후손 죽사(竹史) 조경제(趙京濟, 1901~1949)를 마지막 인물로 선정한 역사적 궤적과 인물 소개를 시도한 문중용 계몽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총 5편으로 구성된 체재(體裁)를 선택한 『함안조씨언행록』의 경우, 「제1편」 4명·「제2편」 16명·「제3편」 22명·「제4편」 12명·「제5편」 14명으로 구획한 가운데, 도합 68인이 선보인 귀감이 될만한 행적들을 연대별로 나눠서 총괄적으로 서술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더욱더 주목되는 점은 『함안조씨언행록』의 편집진이 적용한 68인의 인물들에 대한 선별 기준과 그 원칙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언행록의 편집진은 문·무과를 거쳐 고위 관직을 역임한 공직자를 배출한 수효라든가, 혹은 곳간을 가득 채운 볏섬의 수량 따위로 대변되는 세속적인 부귀의 정도라는 기준을 단호히 거부하는 입장을 견지한 점이 자못 주목된다.

대신에 편집진은 『함안조씨언행록』에 수록될 인물 선정의 주된 기준으로 효우(孝友)로운 덕목을 위시하여 충절(忠節)·의리(義理)·순절(殉節)·전공(戰功) 등의 척도와 함께, 또 학문[學]·도덕[行]의 성취 정도와 강학(講學) 활동의 전개 및 관직근무태도[居官]와 위민(爲民) 의식과 같은 극히 보편적인 잣대를 일관되게 적용하였음이 눈길을 끌게 한다. 

『함안조씨언행록』의 저변을 관류하는 이 같은 덕목·가치·정신 및 처세(處世)의 태도란, 편집진이 지극히 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였음을 뚜렷하게 확인시켜 준다. 바로 이러한 텍스트적 특성으로 인하여 『함안조씨언행록』은 문중적·폐쇄적 한계를 초극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경상우도의 대표적인 사족층으로서의 굳건한 위상을 500여 년 동안이나 향유할 수 있었다.

『함안조씨언행록』의 또 다른 미덕은, 이 서책이 범 덕곡공파 문중의 화합을 상징해 주는 텍스트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른바 계묘본 언행록이 발행되기 이전 시기에는 각 분파 별로 『언행록』이라는 제하의 개별적인 서책을 간행·소장해 왔지만, 1963년에 여러 분파들을 통합한 차원에서 『함안조씨언행록』이라는 단일 텍스트를 간행함으로써, 첫 번째 인물 선정 기준인 효우의 덕목을 직접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에 『함안조씨언행록』의 편집진은 [발문(跋文)]을 통해서, “이제부터는 연대(年代)로서 차례[次序]를 삼아 파별(派別)로 나누지 않고, 총괄하여 연속적으로 기록하여, 그 상고(詳考)하여 열람하기에 편리하고자 한다.”는 획기적인 편집 원칙을 내외에 천명해 보인 바가 있다. ‘연대(年代)·연기(連記)’로 요약되는 새로운 편집 원칙은 판각 공간을 다변화해서 서책의 컨텐츠를 보다 풍부하게 한 값진 노력과 함께, 『함안조씨언행록』이 문중용 도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텍스트로 거듭나게 한 양대 동인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함안조씨언행록』의 경우 보다 진화된 편집 원칙과 판각 공간을 다변화한 노력 등에 힙 입은 결과, 1960년대를 전후로 한 시점에서 가장 혁신적인 문중 내적 도덕교육용 텍스트를 선보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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