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철학은 반철학, 여성만을 위한 철학, 여자들이 하는 철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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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철학은 반철학, 여성만을 위한 철학, 여자들이 하는 철학이 아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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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철학 입문: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 김은주 지음 | 오월의봄 | 456쪽

 

이 책은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를 소개하는 책이다.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적인 세 가지 질문, 다섯 명의 사상가와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핵심 도서와 문장들을 통과하며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로 우리를 초대한다.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일까? ‘페미니즘 철학은 가부장제적 철학에 반대하는 안티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 또는 여성만을 위한 철학이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이 방식 안에서 새로운 운동을 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들”이 바로 페미니즘 철학이다. 특히 저자는 이 페미니즘 철학이 기존의 근대적 주체와 지식을 담보했던 기성 철학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여러 가지의 질문을 만들어내는 현대 철학과 페미니즘 철학의 조우를 강조하며 페미니즘 철학이란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지점이라고 페미니즘 철학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물론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의 철학적인 사유나 개념틀에서 시작하지만, 그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고, 기존 철학에서 철학적 재료가 되지 못했던 타자의 지위에 있던 것들을 다시 철학의 언어로 사유하는 작업이다. 기존의 철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동시에 기존의 철학이 무시해왔던 몸, 감정 같은 것들을 철학의 재료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기성 철학의 모두를 지우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억압해온 것일 수 있는 언어와 사상들에서 출발해 그것들을 의심해보고 길을 잃기도 하며”, 반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고와 가치를 다시 철학이라는 개념으로 부수고 다시 새로운 개념으로 창조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 철학의 중요한 입지라는 것이다. 여성만을 위한 철학, 기존의 ‘남성 철학’에 반대하는 반철학으로만은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페미니즘 철학, 페미니즘은 그저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반담론으로만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의 언어나 사유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발견하고 그것을 철학적 사유로 제기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인가’ ‘여성은 인간인가’ ‘여성인가, 여성‘들’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각 부로 구성해 1부에서는 페미니즘 철학의 자리를 소개하고 페미니즘 철학이 지금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고유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2부와 3부에서는 제1물결 페미니즘과 제2물결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사상의 조류를 중심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특히 2부에서는 ‘여성은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품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여권의 옹호』, 시몬 드 보부아르와 『제2의 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철학 초기의 사상을 다뤘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이성을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점을 주창한 열렬한 계몽주의자이자 근대 민주주의자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이 언제나 타자의 지위인 제2의 성에 머물 수밖에 없는 기제를 밝히며 여성이 타자의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악’이며 여성이 자유를 획득해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이 도덕적 명령이라고 못박아버린 실존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상을 여기에서 다뤘다.

흔히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인간임을 주창했던 제1물결이라고 하는 흐름 이후에 나타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발견하고 나아가 여성 안에서의 차이를 발견해내며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설명하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진 제2물결 페미니즘의 여러 사유는 3부의 ‘여성인가, 여성들인가’라는 질문 안에서 소개된다. 미국 사회의 보수화 속에서 집에 갇힌 ‘행복한 주부’의 허울을 벗겨내며 여성성의 신화를 폭로하고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지목한 베티 프리단과 『여성성의 신화』, 여성을 성 계급으로 호명하며 가족의 해체와 같은 급진적 대안을 주장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와 『성의 변증법』, 정체성의 정치에 선을 그으며 차이를 역량으로 삼아 새로운 권력의 모습을 그려내는 오드리 로드와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담았다. 특히 여성들 간의 차이와 여성 자신 안에서의 차이들에 주목하는 제3물결 페미니즘의 사유와 긴밀하게 이어지는 오드리 로드의 사상은 두 장에 걸쳐 다뤘다.

이 사유들은 서로 이어지기도, 중첩되기도, 갈등하기도 한다. 또한 지금에 비추었을 때 당연히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 지점들도 존재한다. 다만 기존의 근본적 질서, 즉 남성이라는 보편 인간이 만들어온 세계의 뿌리에 대해서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기에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철학은 본질적으로 래디컬하다. 당연하다고 여겨진 질서에 질문을 던지고, 특히 제2물결의 흐름은 근대 인간의 정상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앞서 나온 이 사유들은 최신의 페미니즘적 모색들과 여전히 관계하고 있으며, 여전히 현재적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다루는 페미니즘의 흐름을 좇다 보면 페미니즘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여성도 인간이라는 처음의 그 외침 이후,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발견해내고, 과연 여성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데로 나아가는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페미니즘은 하나일 수 없고, 그 때문에 페미니즘은 끝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속에서 우리 사회는 단선적으로 구성되지 않으며 여러 문제가 중첩되어 구성되어 있다는 것 역시 돌아보게 된다. 사상의 조류는 흘러왔지만, 어떤 문제가 끝나고 새로운 문제가 새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은 여러 문제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여전히 18세기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주장했던 근대 시민으로서의 여성의 시민권조차 완전히 달성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양적 평등조차 달성되지 않았다. 성별 임금격차는 여전히 존재하며 시민 교육으로서의 페미니즘 교육조차 논란거리가 된다. 여성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간파한 실존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통찰은 어떠한가. 지금 여성은 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는가? 보부아르가 강력히 비판한 “여성은 자궁이다”라는 말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완전히 전복되었는가?

베티 프리단이 말한 행복한 주부의 신화, 여성성의 신화는 부서졌는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강력히 제기한 가족이 착취의 기본 단위라는 문제의식, 또한 가족의 해체와 육아와 돌봄의 사회화, 임신중단에 대한 이슈 등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의 문제다. 여성이 아닌 여성‘들’의 목소리, 차이를 역량으로 삼아야 한다는 오드리 로드의 강력한 울림은 어떠한가.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나타난 지정성별 중심의 여성운동이 보이는 배타적인 혐오의 얼굴을 어떠한가. 페미니즘이 호명하는 여성이 특정한 여성만을 보편적으로 재현한다는 로드의 강력한 문제의식은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도 여전히 싸우고 시끄러워야만 하는 어떤 문제들을 가리킨다. 이 책에 담긴 페미니즘의 사유들이 단지 현실과 동떨어진 지나간 어떤 이론 내지는 사유로 우리가 학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이 삶과 구조를 바라보는 유용한 사유의 틀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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