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책 안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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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책 안 읽어요
  • 남정욱 (전)숭실대 예술학부 문창과 겸임교수
  • 승인 2021.11.2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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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칼럼]

식자층이라는 표현이 있다. 식자識字, 보통은 글이나 문자를 아는 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識이라는 글자를 왜 그렇게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識은 대상을 다르게 아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대상을 다르게 안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 전혀 다른 각도의 리포트를 내면 그게 식자다. 이게 글과 문자를 아는 것으로 둔갑한 것은 글과 문자가 다르게 아는 법을 가장 효율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자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책을 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얼마 전 조동일 선생은 ‘세 가지 배움’이라는 글에서 사람은 자연에서 배우고 책에서 배우고 사람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윗길은 자연이고 아랫길은 사람이라 했으니 책은 당연히 중간이다. 배우는 방법을 고를 때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식당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를 때 가장 현명한 방법은 꼭대기 가장 비싼 것을 고르는 것이다. 그게 그 식당의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중간 가격대를 선택한다. 바보짓이다. 가장 특색 없고 매우 대충 만들며 정확히 말하자면 죽도 밥도 아닌 것을 고르는 거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것을 돈 내고 먹는 게 중간가격대다. 차라리 싼 것을 고르면 이게 고기일까  고무일까 궁금해 하면서 인생 분발 해야겠다 다짐이라도 하지. 해서 결론은 자연에서 배우거나 사람에게 배우는 게 좋다는 거다. 책은, 그냥 무시해도 된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논리? 

국민들이 책을 안 읽어서 큰일이란다. 1인 당 독서량이 OECD  회원국 꼴찌니 2등이니 걱정이다. 최근 인상적이었던 것이 한 신문사의 기획물이다. “한국인의 모순,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 문학상 원해.”라는 타이틀을 뽑고 다른 선진국들의 독서 열기를 소개했다. 다 맞는 말 같지? 일단 OECD는 좀 살고 민주주의도 좀 하는 나라들의 이익집단이지 각 나라 국민들 독서량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단체다.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 문학상은 바란다고? 작가가 노벨상 타는 거랑 국민들이 책 읽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럼 마약 천국 콜롬비아의 마르케스는 국민들이 책 많이 읽어서 노벨문학상 탔나? 이상하고 기이한 논리다. 책 읽는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도 소개했는데 그건 대한민국도 선진국이라는 전제하에서나 하는 말이다. 우리가 선진국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대한민국은 그저 잘 사는 걸로 유명해진 나라다. 삼성 전자와 현대 자동차의 나라이고 그걸로 대접받는 나라다. 국민이 책을 안 읽어서 큰 일? 원래 우리 민족은 책 보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밤 새워 먹고 마시고 놀았다는 기록은 여럿이지만 모여서 책 읽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시대 성리학 공부? 그건 과거시험 특화 인식체계강화 훈련이지 공부가 아니다. 당장 우리가 세계에 인정받는 것만 봐도 그렇다. BTS와 블랙 핑크로 세계를 휩쓸었다. ‘오징어 게임’으로 넷플릭스를 정복했다. 먹방으로 인간 위장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을 보여줬다. 우리는 그런 게 좋은 거다. 우리는 그런 걸 잘하는 거다. 일 못하는 경영자가 제일 먼저 하는 게 조직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잘 될까. 한 문제 해결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문제 해결하다 시간 다 보내는 게 무능한 경영자의 특징이다. 일 잘하는 인간은 조직이 무엇을 잘하는지부터 본다. 그리고 거기다 조직의 역량을 쏟아 붓는다. 잘하는 일은 더 잘하게 되고 가끔 대박도 터진다. 잘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차원에서도 책 읽고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노리는 건 그다지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안 읽어도 돼요 책 같은 거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니다. 원래 인간은 책 안 읽었다. 인류 역사 20만 년, 많이 양보해서 인간이 인간 비슷하게 산 5만 년 동안 인간이 책을 읽은 시기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한답시고 성경책 팔아먹은 때부터 아이폰 나올 때까지 500년 남짓이다. 5만 년에서 500년이면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다. 마르틴 루터 전에는? 당연히 안 읽었다. 인간은 ‘듣는’ 것을 좋아하지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뇌 자체가 그렇다. 유일하게 보던 것은 인류 최초의 TV인 달이다. 고대에 음유시인이 있었다. 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던 사람들로 당시의 이동하는 유튜버였다. 그럼 박물관에 전시된 오래 된 책들은 뭐냐고 물으실지 모르겠다. 그 질문 나올 줄 알았다. 인류 전체가 통째로 책 안 읽었다는 얘기 아니다. 아주 일부가, 극히 소수가 읽었다. 세상을 끌고 나가던 귀족, 성직자들이다. 나머지 하층민들은 책 안 읽었다. 하층민까지 나서서 책장 넘긴 게 딱 500년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책을 안 읽기 시작한 게 아니다.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책 안 읽어서 어쩌고저쩌고 걱정 안 해도 된다. 하층민까지 나서서 책 읽는 세상은 바람직한 세상이 아니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 매체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학지성 In&Out>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공론장을 지향합니다. 반론도 보장합니다.

 

남정욱 (전)숭실대 예술학부 문창과 겸임교수

방송, 영화, 출판 등 문화 관련 업종에서 25년간 일했고, 숭실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30여 권의 책을 썼고, 30년 신문칼럼을 썼으며, 현재 매설업賣說業 명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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