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향한 가벼운 발걸음을 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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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가벼운 발걸음을 위한 가이드북
  • 이충진 한성대·철학
  • 승인 2021.11.2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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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세계화와 세계시민』 (이충진 지음, 바른북스, 176쪽, 2021.09)

 

코로나19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멈추어버렸다. 2년 전 코로나19의 등장 이후 모든 하늘 길은 끊겼으며 국경의 벽은 전시(戰時)에 못지않게 높아졌다. 심지어 일상의 터전인 마을과 도시조차 봉쇄되었다. 우리의 모든 물리적 만남은 차단되었다. 

그런데 한 번쯤 생각해보자. 코로나19가 2019년, 즉 21세기가 아니라 100년 전쯤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코로나19는 분명 팬데믹 수준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의 특정 지역에서 등장한 바이러스가 불과 몇 달 만에 전 세계로 확산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2019년의 바이러스와 백 년 전의 그것이 동일한 것이어도 말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변화된 인간, 정확히 말하면, 인간 삶의 변화된 조건들 때문이다. 100년 동안 바이러스는 변하지 않았어도 인간 삶은 변했고, 그 변화 때문에 팬데믹이 2019년에만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세계화’이다. 

인류는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변화는 그 이전의 것과는 여러 면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새로운 변화를 이끈 원동력은 첨단기술, 특히 교통과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이었다. 이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축소시키고 그와 함께 심리적 거리 역시 제거해버렸다. 그 결과 21세기 인류는 마치 하나의 작은 마을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며 살아가는 것 같은 상황에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를 이론가들은 ‘세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1969년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은 세계화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둥근 공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인류에게 지구를 ‘폐쇄된 단일 세계’로 각인시켰다. 하나의 지구 위에 함께 살고 있는 40억의 인류, 그것이 우주인의 눈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한 사실이었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사람을 국적, 고향, 거주지역 등을 중심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 단지 지구의 거주자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식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현실도 변화했다. 세계화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켰지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곳은 경제 영역이었다. 근대 국민국가의 등장 이후 경제활동의 중심은 국내시장이며 국제무역은 국가경제를 돕는 보조적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경제 영역의 세계화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경제 활동을 가져왔다. 오늘날 제품의 생산과 상품의 유통은 특정 국가의 국경 안에 머물지 않으며 노동력 역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자본시장에는 아예 국경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지금의 경제활동은 국가가 아니라 세계를 자신의 활동무대로 갖게 되었다. 경제 세계화는 국가 단위의 시장을 통합하여 지구 단위의 단일 시장, 즉 세계시장을 만들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정치 영역의 세계화는 ‘세계국가’, 즉 인류 전체를 자신의 ‘국민’으로 가지는 정치 조직체의 창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 미래의 세계국가는 현재의 유엔과 비교해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모두 가진다. 가령 세계국가는 유엔처럼 반인륜적 범죄, 침략 전쟁, 테러 등을 제재(制裁)할 것이자만 유엔과는 달리 자체적인 무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계국가는 삼권분립 등의 민주적 제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유엔과 다르지 않겠지만 재정적 독립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유엔과는 큰 차이점을 가질 것이다. 정치 영역의 세계화는 현재 진행 중이며 우리는 그것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세계국가의 등장에 기여하거나 그것을 저지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의미하는 바는 곧 ‘한 세기 전 유엔을 창설했던 인류가 이제는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 조직체의 창출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라는 사실이다. 

경제 영역 및 정치 영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협의의) 사회 영역이다. 우리는 가정공동체나 동호회의 구성원으로도 살고 있는데, 이때 우리는 시장 구성원이나 국가 구성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간다. 돈과 권력에 지배되지 않는 이러한 사회 영역 역시 세계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회 영역의 세계화는 상이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상호 교류하는 기회를 증대시키며 그 결과 세계 곳곳에 다양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낸다. 지난 인류 역사를 보면 다문화 사회의 등장은 한편으론 기존의 사회적 안정을 약화시키며 동시에 다른 한편 새로운 창조적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사회 영역의 세계화는 우리에게 세계화에 어울리는 새로운 세계관과 규범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한다. 

세계화는 인류를 단일한 경제 공동체(세계시장) 및 정치 공동체(세계국가)의 구성원으로 만들 것이다. 또 세계화는 인류를 다문화 사회로 이끌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미래의 인류는 세계화된 시장, 국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미래 세계의 구성원을 ‘세계시민’이라 부른다. 

세계시민은 오늘날의 국가시민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경제인으로서 세계시민은 자신의 경제활동을 특정 국가의 경계 안에 가두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세계시민은 자신의 국가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이해관계에 주목한다. 사회인으로서의 세계시민은 타인을 그의 국적이나 거주지에 기준하여 대우하지 않으며 낯선 문화에 항상 개방되어 있다. 세계시민은 세계화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인데, 그것의 핵심은 세계화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며 그것의 본질은 세계화에 걸맞은 실천이다. 이를 위한 준비가 바로 세계시민교육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이 인류는 이미 ‘하나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이미 ‘세계의 시민’으로 살고 있다. 코로나19처럼 세계화 역시 인류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올 것이다. 훌륭한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 고민하는 젊은이는 이 작은 책에서 하나의 길잡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충진 한성대·철학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칸트 법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성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칸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로 서양 근대 법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Gerechtigkeit bei Kant, 『이성과 권리』,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사회철학 이야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정언명령 ― 쉽게 읽는 칸트』, 『법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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