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hina(阿史那)와 烏孫은 동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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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ina(阿史那)와 烏孫은 동족이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11.22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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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71)_ Ashina(阿史那)와 烏孫은 동족이다


           Finally, broth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이든지 고귀하며, 무엇이든지 옳으며, 무엇이든지 순결하며, 
          무엇이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이든지 칭찬 받을 만한 지 - 
          그 어떤 것이 빼어나거나 혹은 기릴 만하다면 - 오로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라
.

 

                                                                         사도 바울

이렇게만 분별 있게 산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덜 혼탁하련만. 문제는 말이 아니고 행동이다. 성경 빌립보서(Philippians) 4장 8절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인간의 개심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 교회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유대교 바리새파의 일원으로 ‘요청된, 기도드린’이라는 뜻의 이름 ‘사울(Saul of Tarsus)’로 불렸던 바울(Paul, ‘작은’이라는 의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누구보다 앞장 서 박해하였다. 그러나 다마섹 가도에서 예수의 음성을 들은 후 회개하고 초기 기독교의 교부가 된 인물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더하여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의 선교 활동을 통한 복음전파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는 공식적으로는 660년에 멸망했다. 그러나 6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 중국 사서인 『元史』에 백제가 사신 梁浩를 원나라 조정에 보내 조회하였고, 이에 황제가 금수(錦繡)를 차등 있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원 세조 쿠빌라이 至元 4년(1267) 정월의 일이다. 이때 백제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국가 존속과 관련하여 의심스럽기는 고구려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나라 이름이 전혀 뜻밖의 지면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8세기 후반 서역 龜玆 출신의 승려 리언[利言: 禮言으로도 표기. 의미는 lotus(蓮花, 忘憂草)]이 인도 브라흐미 문자와 漢字, 가타카나 일본어를 대조해 편찬한 『梵語雜名』에 波斯, 胡, 吐火, 于闐, 崑崙, 烏長, 突厥, 罽賓, 龜玆, 吐蕃, 摩竭陀 등 서역국가들과 더불어 高麗가 인도말로는 무구리(畝俱理)라 불린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烏孫이라는 유목국가도 『史記』와 『漢書』에 처음 등장했다가 서기 436년 중국 사절단의 방문 기사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아무런 언급도 없다가 10세기 경 『遼史』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기원전 1세기 무렵 오손의 戶數(가구 수)는 12만, 인구는 63만, 병사는 18만 8천이었다.

나라 이름 烏孫은 “까마귀의 후손”이란 語義와는 관계가 없다. 그리스계 로마 학자 스트라본Strabo(기원전 64 또는 63~기원후 24)는 자신이 편찬한 지리 백과사전 『地理志(Geography』에 오손을 Asi(oi)라는 종족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하는 볼가 강 동쪽에 거주하던 아스만(Asman)과 같은 족속이며, 아스만은 As와 man(‘사람’이라는 의미의 투르크어)의 합성어다. 

 

                                                                    오손의 위치

#‘오손’과 6세기 중반 다시 역사의 무대에 떠오른 집단 ‘Asi’의 관계 

안타깝고도 부러운 사실은 우리가 동북아의 반도국가로서 닫힌 삶을 살 때 프랑스, 영국,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러시아 등 유럽 열강과 우리와 같은 아시아 국가인 중국, 일본 등은 서역과 중앙아시아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던 점이다. 이들 중 스웨덴 아카데미 소속 회원이자 언어학자인 샤르팡티에르(Jarl Charpentier, 1884~1935)는 중국 측 기록의 오손이 폼페이우스 트로구스(Pompeius Trogus)가 말하는 ‘Asianoi’ 또는 Strabo의 ‘Asioi’와 동일한 집단이며, ‘Alan’(Sarmatae인들의 또 다른 명칭)의 친척 내지 조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서는 이런 분석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북흉노의 서천이 연쇄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급기야 유럽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초래했고 이것이 서양 중세의 시발이 됐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일리 계곡, 이식쿨 호수, 톈산 일대에 목영지를 두고 유목 생활을 하던 오손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 카자흐스탄 평원을 거쳐 러시아 남부 초원지대를 따라 카스피 해 북부 일대로까지 이주해 그곳에 정착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남아있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 일시 다른 세력에 의탁해 숨을 고르고 있던 오손의 후예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6세기 중반 Ashina(阿史那)라는 이름으로 돌궐제국의 영광을 드높인 종족명에 주목한다. 

부민 카간이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등장하자 돌궐족은 힘을 규합해 초원의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등극한다. 6세기 중반 몽골 초원과 중앙아시아 초원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뭇 부족의 통합 맹주가 된 돌궐제국의 명칭은 Gök[Kök] Türk Khanate[푸른(혹은 하늘) 튀르크 제국]다. 그리고 이 막강한 제국의 지배 집단은 다름 아닌 Ashina(阿史那, Asin, Asena로도 표기) 씨족이었다. 여기서 ‘-na’는 ‘氏族’을 가리키는 접미사에 해당한다. 흉노(匈奴), Hunna에서의 ‘-na’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최근 일본 문헌학자 팀이 소그드어로 쓰인 Ashina 왕조의 Bugut 명문(The Bugut inscription)을 재해석한 결과 이 최초의 돌궐제국의 명칭이 Ashinas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만이 전부나 유일한 진실은 아닌 것이다. 

유라시아 초원 동쪽의 원거주지를 벗어나 그 누구보다 먼저 서쪽으로 이주해간 Asi[Asioi]는 Pasianoi, Tokharoi, Sakaraulai 등의 족속과 연합해 시르다리야를 넘어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河中지방, 소그디아나)에 침입하고, 더 나아가 박트리아까지 쳐들어가 그리스 지배 세력을 몰아내고 정착한다. 대하(大夏)의 탄생이다. 한편 동쪽으로 이주해 알타이 산자락에서 유연(柔然)이라는 강자의 그늘 아래 숨죽이고 살던 Asi인은 때가 되어 돌궐제국의 주인이 된다. 이렇게 오손은 역사 무대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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