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천하화(天下化) 과정과 신라 중앙행정제도 발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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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하화(天下化) 과정과 신라 중앙행정제도 발달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1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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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상·중대 중앙행정제도 발달사 | 정덕기 지음 | 혜안 | 304쪽

 

21세기 주요한 화두의 하나는 자국 문화를 세계적 문화로 발달시키는 ‘방법’일 듯하다. 우리가 살아갈 한국이 나갈 길은 선진 문물의 수용과 변형일까? 자국 전통과 경험의 쇄신일까?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 동안 ‘『삼국사기』 직관지’를 토대로 신라 중앙행정제도 발달사를 연구한 결과로 신라의 천하화(天下化) 과정과 신라 중앙행정제도 발달사를 관통하여 쓴 저작이다.

 

저자는 신라 상대·중대 천하화의 정책적 기조를 ‘동이의 전통(夷)’과 ‘동아시아의 보편성(唐)’을 서로 섞은 것(相雜), 즉 ‘이·당 상잡(夷·唐相雜)’으로 평가하고, 신라 상대·중대의 중앙행정제도 재편과정 및 그 함의를 논의하였다. 천하화란 ‘자국사의 전개과정에서 해당 시기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세계화의 의미와 본질이 같다.

동이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던 신라가 삼한의 승자로 남은 이유는 자국의 전통과 경험을 끊임없이 쇄신하며 국가체제의 질적 발전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신라 중앙행정제도의 발달과정이나 중국과의 교류가 자료상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중고기부터이다. 이로 인해 상당한 연구들이 중고기 이후의 제도 변화와 당제와의 관계 속에서 신라 중앙행정제도사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중대 초에 완성된 통일신라체제는 행정조직과 운영방식에 있어 당제와 많은 차이를 갖고 있다. 또 중고기 신라에서 상고기 신라의 전통과 경험을 폐기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중고기 신라인들이 ‘자국 운영체제의 질적 발전을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자국 전통과 경험의 쇄신이었다. 통일신라체제가 일견 당제와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상고기의 전통과 경험이 중고기를 거쳐 발전적으로 계승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을 주장하고자 저자는 3장 6절에 걸친 논의와 해명을 마련하였다. 2장에서는 신라 고유의 관청인 전(典)과 감(監)이 장관인 전(監典)의 재편과정이 부(部)의 성립으로 이어졌음을 동시전과 병부의 사례를 통해 정리하였다. 동시전은 수도의 중앙시장을 맡는 관청이며, 재화의 유통과 분배를 담당하였다. 병부는 중요한 국가의 일인 병마행정을 맡는 관청이며, 인력의 분배를 담당하였다. 두 관청의 관계는 상고기에 운영된 감전(監典)이 재편되면서 부(部)로 발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장에서는 중대에 활용된 주요 6관직의 상당위체계와 행정적 역할을 정리하였다. 신라의 중앙관직체계는 부(部)·부(府)의 5등급 관직인 ‘령(令)-경(卿)-대사(大舍)-사지(舍知)-사(史)’를 위주로 이해해 왔지만, 부(部)·부(府) 등 최상급 관청의 관직체계로는 중앙관직체계 일반을 대표할 수 없다. 따라서 3장에서는 ‘『삼국사기』 직관지 상권’의 44관청·207+a개 관직·785人+若干人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신라의 중앙관직체계가 ‘령(令)-경(卿)-감(監)-대사(大舍)-사지(舍知)-사(史)’의 6관직으로 구축되었음을 논증하고, 관직별 상당위체계와 행정적 역할 및 관직의 분화관계를 설명하였다.

4장에서는 중앙행정관직의 정원 구조를 제시하고, 관청의 운영 방식과 구성 원리를 분석하였다. 44관청 체계가 완성된 혜공왕대를 기준으로 중앙행정관직의 정원 구조를 분석하면, 중대의 중앙행정제도는 전형적인 관료제 구조가 아니라, 감·사지의 정원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두 개의 허리 구조’로 구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개의 허리’는 본질적으로 중앙행정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감에 보이는 ‘첫 번째 허리’는 중간결재단계를 조정하기 위한 노력에서, 사지에 보이는 ‘두 번째 허리’는 행정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상을 통해 저자는 상고기의 전통적 행정 운영이 ‘아래에서 위로’, ‘소규모에서 대규모로’란 방향에서 재편되었고, 중대 중앙행정제도로 계승되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같은 시기 당제의 발달과정과 본질적으로 동궤에 있는 것이다. 진평왕대 이후의 신라와 중국은 자국 관료제를 운영하며 유사한 현실 문제에 직면하였고, 자국 관료제의 발달을 위해 선택한 ‘문제 풀이 방식’과 ‘최종 목표’도 유사하였다. 따라서 신라 중앙행정제도의 정비과정은 자국 전통에 기초해 육전으로 대표되는 보편적 국가 행정원리를 구축·획득하는 과정이었고, 신라의 전통과 경험에 기초해 천하국가 행정체계로 변화시켰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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