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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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여겨라”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15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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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 | 에밀 뒤르켐 지음 | 민혜숙 옮김 | 이른비 | 312쪽

 

오늘날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데이터와 통계에 기반한 과학적 접근은 보편화된 연구방식이다. 120여 년 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일찍이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주장하며 그 일단의 방법론을 선구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지금 시대에도 깊은 통찰을 던져주고 있다. 흔히 뒤르켐은 마르크스, 베버와 함께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놓은 3대 학자로 꼽히는데, 그가 두 사람과 비교할 때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사회학만의 연구 대상과 연구 방법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며 이른바 ‘사회적 사실의 관찰’에 이르렀다. 그것은 철학적 관념론을 벗어나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규칙은 존재의 근원과 관련된 어떤 사변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사회학자가 과학영역에서 아직 미개척 분야를 탐구할 때 물리학자나 화학자, 생리학자와 동일한 마음가짐의 상태에 있기를 요구한다. 사회학자가 사회적 세계로 들어갈 때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38쪽).

이 책은 뒤르켐의 4대 주저 가운데 하나로, 바로 그의 사상이 집약된 개념인 ‘사회적 사실’(fait social)을 정의하고 논의한 책이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규칙,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여기라”(79쪽). 뒤르켐은 이 선언적 명제로 대담하고 선명하고 논쟁적인 사회학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나머지 주저에도 이를 적용해 연구 틀로 삼았다. 즉, 분업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사회분업론』이고, 자살이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자살론』이며, 종교라는 사회적 사실을 연구한 것이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이다. 그만큼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은 뒤르켐 사상을 이해하는 데 바탕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이론적 저작이다. 

‘사회적 사실’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행동을 통해 만들어내고 발생시킨 모든 산물이다. 우리말 ‘사실’이나 영어의 ‘fact’가 주는 고정되고 정태적인 느낌과 달리, 프랑스어의 ‘fait’는 faire 동사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동적이고 넓다(즉, 제작하다, 만들다, 창조하다, 발생시키다, 재배하다, 낳다, 행동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뒤르켐은 독자적인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을 세우기 위해 바로 이 사회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그 방법론을 모색했다.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면서, 개인에게 강제력(영향력, 구속력)을 행사하고,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공통으로 부과되며, 개인과 독립해서 존재한다. 법규범, 전통과 관습, 그리고 가족, 종교, 화폐, 교육 등 무수한 제도가 그렇다. “집단에 의해 확립된 모든 믿음체계와 행동양식을 우리는 제도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학은 이렇게 정의될 수 있다. 사회학은 제도들에 관한 학문과 제도의 생성, 그리고 기능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이다”(52쪽).

뒤르켐 당시까지 사회학자들이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목적론적이고 심리학적 설명이었다. 사회학의 선배 격인 콩트는 진보라는 목적이 사회현상을 이끌어왔다고 했고, 스펜서는 사회의 형성이 개인의 본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했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진보 또는 인간 본성의 실현과 같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명제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적 현상의 본질적인 특성은 외부에서 개인의식에 압력을 행사하는 그 힘(즉 사회적 사실)이다. 사회학적 현상은 개인들의 의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사회학은 심리학의 파생 명제가 아니다. 인간 개개인이 배제되어도 사회는 남는다. 그러므로 사회 자체의 본질 안에서 사회생활에 대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인간 개개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체는 부분들의 총합과 다르다. 전체의 속성은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속성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이 결합이다. 개인이 결합되어 사회를 이룬다. 개인들의 결합 속에 사회의 고유한 특성이 들어 있다.

연금술이 화학이 되고 점성술이 천문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사회학 역시 관념과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을 관찰해야 한다. 뒤르켐은 관찰하려면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고, 이 점에서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이 물질적인 의미의 사물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회학이 과학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사회현상을 사물처럼, 즉 자연적인 현상처럼 여기고 관찰해야 한다. 법의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법전을 연구하며, 일상생활이 무엇인가를 말하기보다는 인간행위의 통계치를 연구하고, 유행에 대한 모호한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상을 분석하는 것과 같이 사회현상을 사물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입견을 철저히 버려야 하고, 사물들을 정확히 정의해야 하며(정의는 마음에서 나오는 관념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된 속성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관찰하는 인간의 감각이 늘 주관성에 빠질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사회적 사실이 형성되는 데 구성원 개개인이 관여하는 것을 사회학이 인정하고, 사회학적 현상 속에 비물질적인 요소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심리학적 현상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현상들을 집합의식, 집합감정, 집합표상 등과 같은 사회적 사실을 통해 이해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학은 철학, 자연과학, 심리학과 다른 학문이며 사회학의 방법은 그들 학문의 방법과는 다른 절대적으로 사회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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