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구하기’에 앞서 여성은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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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구하기’에 앞서 여성은 누구를 구해야 하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11.15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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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광기 | 필리스 체슬러 지음 | 임옥희 옮김 | 위고 | 580쪽

 

최초로 여성의 정신건강에 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 역작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정신의학계에 혁명을 가져온 이 책에서 저자 필리스 체슬러는 가부장제가 광기를 어떻게 정의하고 만들어왔으며 정신과학이 사회적 통제의 한 형태로 광기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를 집요하게 분석했다. 신화, 역사,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실제 환자의 인터뷰에 녹여내 분석한 저자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이중 기준이 존재함을 밝혀냈다. 아울러 2005년 개정증보판에서는 전면적인 수정과 개정을 거쳐 섭식 장애, 항우울제에 대한 사회적 수용, 중독, 성욕, 산후 우울증 등을 포함해 오늘날 여성의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광기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듯이, 이 책은 여성에게 주어진 조건과 우리가 ‘광기’라고 부르는 것 사이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 책은 또한 자기 자신을 ‘신경증’ 혹은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겨지는 여성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현대사회에서, 정신과 치료 혹은 정신과 입원을 요한다고 진단받는 여성들에 관한 책이다. 여성이 그와 같은 도움을 ‘왜’ 청하는지에 관해,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무엇’을 경험하며 그런 도움이 어떻게 간주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런 여성들이 도움을 ‘어떻게’ 받는지 혹은 못 받는지에 관해 쓴 책이다.

체슬러는 여성은 언제나 전쟁을 치러왔다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 여성은 언제나 패자였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이런 사실을 거의 눈치채지 못한 것은 남성이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반면 여성은 ‘패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여태껏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왔던 것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여성이 이미 치르고 있었던 성별 전쟁의 비전은 좀 더 확실해질 것이라고 체슬러는 강조한다.

여성의 심리적인 정체성은 자신의 생존과 자기인식에 대한 관심사로부터 구축된다. 여성이 ‘마음의 지혜’를 저버리고 남성이 될 필요는 없다. 이는 ‘뒷받침’이라는 가장 중요한 힘을 여성 스스로와 서로에게로 전환시켜야지 자기희생의 지점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여성은 다정하게 대하고 연민을 베풀고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일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 여성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여성들에게 부드럽게 대하고 연민을 느껴야 한다. 체슬러는 여성은 세계를 ‘구하기’에 앞서, 남편과 아들을 ‘구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과 딸을 ‘구하기’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성은 오로지 배우자나 생물학적 자녀를 갈망하고, 보호하고, 보살피는 외골수의 무자비함을 자기보존과 자기계발에 집중하는 ‘무자비함’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1부 ‘광기’, 2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장은 자서전 및 전기적, 역사적 자료에 토대해 네 여성의 생애와 정신과 병력을 제시한다. 이들을 통해 전반적으로 현대 가족 안에서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힌다. 아울러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여성의 경험과 관련해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성모마리아나 잔 다르크와 같은 신화적이거나 역사적인 여주인공의 역할을 통해 분석한다. 생식 생물학과 가부장제 문화, 그리고 현대의 부모와 딸의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떻게 여성적인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들 - 자기희생, 마조히즘, 생식과 관련한 나르시시즘, 동정적인 ‘모성성’, 의존성, 성적 소심함과 불감증, 성적 문란, 아버지 숭배 - 을 공고화하게 되었는지, 더불어 어떻게 여성을 지나치게 혐오하고 평가 절하하게 되었는지 상세히 기술한다.

2장과 3장은 정신병원 입원과 심리치료 모두가 가족 안에서의 여성의 경험을 되풀이하거나 반영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사들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여성의 비참함은 인간이나 성인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고 대부분이 여성인 자기 환자들을 흔히 한 인간으로보다는 ‘아내들’이나 ‘딸들’로 대하면서 치료한다. 정신건강, 그리고 인간성에 관한 이중적인 기준 - 하나는 남성을 위한, 다른 하나는 여성을 위한 - 은 여성과 남성에 관한 대다수 이론(치료 과정)을 비과학적으로 지배해왔다.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임상 이론과 실천은 3장에서 다룬다. 여성의 정신질환적 증후군(우울증이나 불감증 등), 남성의 정신질환적 증후군(알코올중독, 약물중독이나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을 포함해 우리가 광기라고 부르는 것(정신분열증)에 관한 새로운 개념 정의, 혹은 이들 증후군에 대한 다소 다른 방식의 이해는 2장에서 제시된다.

4장에서는 ‘정신질환’ 관련 통계를 분석하면서, 인구 대비 남성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성이 정신과 환자라는 ‘병력’에 연루되어 있는데, 이 수치와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자료로 입증한다. 우울하고 초조하며 광장공포증에 시달리는 여성들, 신경쇠약, 발작적 울음, 분노 발작, 망상에 빠진 여성들, 자살을 시도하거나 너무 적게 혹은 너무 많이 먹는 여성들,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정체불명의 약물을 과다 복용하는 여성들, 그리고 이들이 경험하는 적대감·욕망·공포·성적 불행·환상에 대해 다룬다.

4장에서 9장까지는 정신병원 입원과 외래 치료 경험에 관해 인터뷰한 환자 예순 명의 병력을 기술한다. 그들의 성 경험, 부부관계, 모성애 수준, 정치적인 입장 등은 대단히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있었다. 그들 중 극소수만이 우리가 진짜 광적인 상태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했다. 대다수는 단지 불행했으며, 전형적으로 여성적인 방식으로 자기파괴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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