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며 아동문학가이자 번역가였던 백석 시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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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며 아동문학가이자 번역가였던 백석 시 깊이 읽기
  • 이경수 중앙대·국문학
  • 승인 2021.11.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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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백석 시를 읽는 시간』 (이경수 지음, 소명출판, 391쪽, 2021.09)

 

백석(1912~1996)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소학교, 오산고보 등을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된 후 그 인연으로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수학한다. 이후 조선일보사와의 인연을 이어가며 『조광』, 『여성』 등의 창간에 참여했고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인으로서의 길을 걷는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는데 『사슴』은 백석의 첫 시집이자 분단 전 유일한 시집이다. 함흥 영생고보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여성』지에 다시 들어가 일을 하다가 1940년 만주로 떠난다. 「북방에서」,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의 절창을 이 시기에 발표한다. 해방 후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에 돌아와 이후 북에 남았다. 1948년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발표한 것을 마지막으로, 1988년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백석의 시와 글을 읽을 수 없었다. 1987년 이동순이 엮은 『백석시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백석이라는 시인이 알려지게 된다. 북의 시인 백석은 1955년 마르샤크의 『동화시집』을 번역 출간한 후 창작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1957년에 출간했고 간간이 시를 발표하지만 주로 아동문학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한다.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문학활동을 금지당했고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로 내려가라는 현지 지도 명령을 받은 후 그곳에서 양 치는 일 등을 하며 지내다 간간이 작품을 발표한다. 1962년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이 전면 금지되어 이후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2000년대 들어서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타계했음이 알려졌다.

『백석 시를 읽는 시간』(소명출판, 2021)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저자가 쓴 백석 시에 대한 논문을 묶은 연구서이다. 2014년 백석 시 원문과 백석 시에 대한 어석 연구의 성과를 충실히 대조하고 백석 시 전편에 해설을 붙인 『다시 읽는 백석 시』(소명출판, 2014)라는 시전집 겸 연구서를 공저로 발간하고 나니 비로소 그동안 써 온 백석 시에 대한 논문들을 정리해 책으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시 연구자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스스로 마련하고 싶었고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관심사가 확대되고 있기도 해서 정리의 시간이 개인적으로도 필요했다. 이 책이 하나의 매듭이자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분기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백석 시를 읽는 시간’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정리한 2017년에 정했는데, 오랫동안 백석의 시를 읽어 왔던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의미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백석 시를 읽는 시간의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제목에 담아 보았다. 1988년에 백석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어느새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순수한 독자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알기 시작해 연구 대상으로도 오랫동안 백석의 시를 읽어 왔지만 여전히 백석의 시를 좋아하고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가끔 위안이 된다. 시를 읽는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던 백석 시를 읽는 시간을 이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묶었다. 이 책을 통해 백석 시 연구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백석 시를 읽는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도현의 <백석 평전>에 실린 백석의 노년 가족 사진. 백석은 1996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출처: 나무위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백석 시의 근대성과 문체’에는 분단 이전까지의 백석 시를 대상으로 그 특유의 미학과 형식적 특징을 밝히는 논문들을 주로 실었다. 「백석 시의 낭만성과 동양적 상상력」에는 백석 시에서 토속성과 근대성은 양립할 수 있고 토속적인 언어를 활용하는 백석 특유의 방식에서 바로 백석 시의 근대성이 작동한다는 문제의식이 동양 고전의 인용과 은둔의 상상력에 대한 분석을 통해 표출되었다. 「백석 시에 쓰인 ‘-는 것이다’의 문체적 효과」는 백석 시의 문체 미학을 백석이 즐겨 사용한 종결형 표현 ‘-는 것이다’의 활용을 통해 분석한 글이다. 시집 『사슴』 이후에 발표한 특정 시기의 시에서 ‘-는 것이다’가 높은 빈도로 출현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는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활용함으로써 자기 반성적이고 정서 통합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백석 시의 중요한 특징을 해명하였다. 「백석 시에 나타난 문화의 충돌과 습합」은 백석 시에서 다양한 문화 체험과 이질적인 문화 간의 충돌과 습합의 체험이 나타난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글로, 여행, 음식, 종교를 중심으로 백석 시에 다양한 문화 현상의 동시적 공존과 습합이 나타남을 규명했다. 「백석의 기행시편에 나타난 장소의 심상지리」는 백석의 이향 체험과 기행시편의 관계를 장소의 심상지리를 중심으로 살펴본 글이다. 백석은 꽤 여러 편의 기행시편을 남긴 ‘거리’의 시인이자 기행시편에조차 ‘방’이 자주 등장하는 독특한 시인이다. 

제2부 ‘백석의 동화시와 시인의 표상’에는 분단 이후 북에 머무르게 되면서 백석이 남긴 창작물들을 대상으로 쓴 글들과 북한에서 쓴 시들까지 포함한 백석 시 전편을 대상으로 한 글들을 실었다. 「마르샤크의 『동화시집』 번역을 통해 본 『집게네 네 형제』 창작의 의미」는 백석이 번역한 마르샤크의 『동화시집』의 실물을 확인한 후 쓰게 된 논문이다. 마르샤크의 『동화시집』 번역이 이후 『집게네 네 형제』의 창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동화시집』 번역 전후의 백석의 아동문학에 대한 인식과 두 권의 동화시집의 구성과 체제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규명하였다. 「백석의 동화시 창작과 음악성 실현의 의미」는 백석의 아동문학에 대한 비평, 그중에서도 고리키와 마르샤크에 관한 글에서 ‘음악성’이라는 용어가 자주 출현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고리키와 마르샤크에게 있어서 음악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 백석의 아동문학비평에 등장하는 ‘률동’과 음악성을 고찰한 논문이다. 「백석 시에 나타난 ‘마음’의 형상화 방식과 의미」에서는 ‘마음’이라는 시어가 자주 쓰이면서 개성적인 용법을 보인 백석 시 전편을 대상으로 ‘마음’의 형상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백석의 시와 산문에 나타난 ‘아이-시인’의 표상」은 백석 시에서 아이와 시인이 전 시기에 걸쳐 긴밀히 연관되어 있고 그것이 백석 시의 원천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논문으로, 분단 이후 동화시의 번역과 창작 및 아동문학비평에 몰두한 백석의 행보를 연속성 속에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이-시인’의 표상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제3부 ‘백석 시 연구 현황 검토와 시사적 의의’에는 백석 시 연구에 대한 메타적 성격의 연구와 1930년대 후반기 시사 속에서 백석과 이용악의 시를 비교한 논문을 실었다. 「백석 시 전집 출간 및 어석 연구의 현황과 과제」는 2012년 백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쏟아져 나온 여러 권의 백석 시 전집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쓰게 된 논문이다. 『다시 읽는 백석 시』를 준비하면서 발견하게 된 기존 백석 시 전집의 몇 가지 오류를 바로잡고 전집 출간 및 어석 연구의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 글로, 이 글을 쓰면서 문헌 고증적 연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기 시에 나타난 ‘가난’의 의미」는 1930년대 후반기를 대표하는 백석과 이용악의 시에 나타난 ‘가난’의 의미를 비교 분석한 논문으로, 오늘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고민으로부터 착상하게 되었다. 「어석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백석 시어 분류 사전」은 고형진의 『백석 시의 물명고-백석 시어 분류 사전』에 대한 서평의 성격을 띤 글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분단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백석의 창작물에 대한 연구도 망라해 싣고 있다는 데 있다. 백석 시 연구자들 중에서도 분단 이후 백석이 북한에서 쓴 시에 대한 평가는 판이하다. 1948년 『학풍』에 발표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까지의 백석 시만을 인정하는 연구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연구서에서는 분단 이후의 백석 시, 동화시는 물론 북한 체제 속에서 쓰인 시들까지도 연구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특히 북한 체제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백석이 열어간 문학의 자리와 자신이 원하는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백석이 포기하지 않은 시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 늘 중심보다는 주변에서 소외된 자리를 돌보고 이질적인 존재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었던 백석의 시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려 본 적이 있는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슬픔과 쓸쓸함이라는 정서를 지니고 있다. 그는 북의 체제에서도 여전히 주변에 머물렀다. 2001년 공개된 어깨가 기울어진 노인 백석의 사진은 그곳에서의 시인의 삶을 짐작게 한다. 이 연구서를 통해 백석 시 연구자는 물론 백석 시를 좋아하는 일반 독자들도 ‘백석 시를 읽는 시간’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경수 중앙대·국문학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불온한 상상의 축제』, 『한국 현대시와 반복의 미학』, 『바벨의 후예들 폐허를 걷다』, 『춤추는 그림자』, 『다시 읽는 백석 시-백석 시전집』(공저), 『이용악 전집』(공편저), 『이후의 시』, 『너는 너를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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