瑟瑟의 정체는? … 玉(jade), 시르라흐(sirrah)에서 슬슬(sir-sir)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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瑟瑟의 정체는? … 玉(jade), 시르라흐(sirrah)에서 슬슬(sir-sir)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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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_ 힌두쿠시의 제왕 고선지, 石國의 슬슬(瑟瑟)을 탐내다 ②


인류의 명운을 바꾼 역사적 전투 중의 하나가 탈라스 전투다. 사람은 싸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751년 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탈라스 평원에서 20만 대군의 압바스 이슬람 세력과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연합군 10여만 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당나라와 손을 잡았던 유목민 투르기시 부족이 느닷없이 등을 돌렸고, 불과 1주 만에 전쟁은 고선지 군의 참패로 끝났다.

고선지 장군은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패망한 후 당나라의 포로로 잡혀간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다. 그가 안서절도사가 되어 서역의 소국 石國 왕이 번신(蕃臣)의 예를 갖추지 않는다고 토벌을 주청(奏請)하고 마침내(750년) 그 나라를 쳐서 왕과 처자를 붙잡아 수도인 장안(현재의 서안)으로 압송했다. 그리고 위인이 탐욕스러운지라 瑟瑟 십여 곡(斛: 휘 곡, 1 휘는 10 말)을 탈취했다고 한다.

■ (左)큰 거문고 瑟(좌), (右)저음을 내는 찰현악기 아쟁
▲ (左)큰 거문고 瑟(좌), (右)저음을 내는 찰현악기 아쟁

‘瑟瑟’이 무엇이길래...

도대체 瑟瑟의 정체는 무엇인가? 瑟(큰 거문고 슬)은 거문고(琴)보다 몸집이 크고 줄이 열다섯, 열아홉, 스물다섯, 스물일곱인 현악기다. 거문고 금과 큰 거문고 슬이 합해진 금슬(琴瑟) 또는 슬금(瑟琴)은 부부나 부부 사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금슬이 좋다는 건 남녀 간 합이 좋다, 잘 어우러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고선지가 빼앗은 瑟瑟은 거문고와는 거리가 멀다. 리드(Read)와 팩(C. Pak)은 슬슬이라는 보석을 사파이어라 하고, 허스(Hirth)와 샤반느(Chavannes)는 터키석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파사국(波斯國: Fars)의 특산품 중 하나인 碧玉(綠玉)이 다름 아닌 瑟瑟이라고 본다. 페르시아어로 玉(jade)은 시르라흐(sirrah)다. 이 말이 중첩 차용된 것이 슬슬(sir-sir)일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 영호덕분(令狐德?)이 편찬한 『周書』를 보면 瑟瑟 말고도 페르시아에는 없는 게 없어 보인다.

(파사국의) 기후는 뜨거워 집마다 얼음을 보관한다. 토지는 대부분이 사막이어서 물을 끌어서 관개한다. 그 오곡과 금수 등은 중원과 대략 동일하나, 오로지 벼와 기장 및 차조만이 없다. 그 지방에서는 명마와 낙타가 나오는데, 부자들은 수천 두를 소유한 사람도 있다. 또한 백금, , 유석, 금강, 화제(火齊), 빈철, , 주석, 주사(朱沙), 수은, (), (), 백첩(白疊), , 사자, 타조알, 진주, 이주(離珠), 파리(頗黎), 산호, 호박, 유리, 마노, 수정, 슬슬(瑟瑟), 모직(), 구유(氍毹), 탑등(), 적장피(赤麞皮), 그리고 훈육·울금·소합·청목 등의 향료, 또한 후추(胡椒), 필발(蓽撥), 석밀(石蜜), 천년조(千年棗), 향부자(香附子), 가리륵(訶梨勒), 무식자(無食子), 염록(鹽綠), 자황(雌黃) 등이 나온다. 서위 폐제(廢帝) 2(552)에 그 왕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헌납했다.[『周書』 卷50 「列傳」 第42 異域 파사국(波斯國)]

▲ 天珠라고도 불리는 瑟瑟(玉)
▲ 天珠라고도 불리는 瑟瑟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玉을 귀하고 상서로운 보석으로 여겼다. 인접국 페르시아의 대표 산출품이든 혹은 돌나라(오늘날의 Tashkent 일대) 자체에서 생산되는 것이든 석국 창고에 저장되어 있었기에 고선지가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당서 등에 이 나라가 석국이라 기록된 것은 현지어 타시켄트가 “돌의 도시(stone city)”라는 뜻이고, 그런 까닭에 의역하여 石國이라 한 것이다. 타시켄트의 음차어로는 『明史』의 달실간(達失干, Tashkent) 외에, 자석(者石, Zhashi), 자지(柘支, Chach), 자절(柘折, ZhěZhě), 자시(赭時, Zhěshí) 등이 있는데, 달실간은 tashqand(-kand; kent)의 音寫이고 나머지는 모두 ‘돌’이라는 뜻을 지니는 tash의 음차어들이다.

『新唐書』에 의하면, “티베트 관직 장식의 최상위가 瑟瑟이었다”(官之章飾, 最上瑟瑟). 그 다음이 금장식이다. 그리고 “슬슬을 몹시 귀중히 여겨 남녀가 머리 장식품으로 썼다.”(『唐會要』, 권 97; 『通典』, 권 190) 심지어는 슬슬이 얼마나 신령스럽고 귀한 보석인지 天珠라 불리는 슬슬옥 한 덩어리면 명마와 교환이 가능하고, 세 개면 높다란 누각과도 바꾸지 않는다(一珠易良馬,三珠抵高樓)고 할 정도였다. 대단한 교환 가치를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 나아가 티베트인들은 슬슬을 “신의 돌”로 숭배한 나머지 승려라면 반드시 몸에 걸쳐야 할 필수품으로 간주하고, 선대가 사용하던 슬슬주 염주는 집집마다 가보로 소중히 대물림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오늘날 티베트인들은 일종의 호신부(護身符)로 슬슬주 팔찌나 목걸이를 한다. 여행자들은 호기심에 혹은 기념품으로 슬슬주 팔찌를 구입해서 잠시 착용한다.

▲ 瑟瑟을 불에 구워 만든‘초천주(炒天珠)’를 목에 걸친 우쓰장(烏思藏) 사람들.티베트를 唐宋代에는 투뵈(吐蕃), 元明代에는 우쓰장(烏思藏 혹은 烏斯藏), 淸代부터는 시장(西藏)이라고 불렀다(사진 출처 = https://kknews.cc/history/p6loep.html)
▲ 瑟瑟을 불에 구워 만든‘초천주(炒天珠)’를 목에 걸친 우쓰장(烏思藏) 사람들.티베트를 唐宋代에는 투뵈(吐蕃), 元明代에는 우쓰장(烏思藏 혹은 烏斯藏), 淸代부터는 시장(西藏)이라고 불렀다(사진 출처 = https://kknews.cc/history/p6loep.html)

티베트가 강성하여 둔황 등지를 점유하고 있을 때, 告身이라고 부르는 직첩제도(職牒制度)가 있었다. 고신은 관리들에게 수여한 직첩 내지 임명장을 가리킨다. 황제의 명에 따라 고신을 하사받은 각급 관리들은 관부(官符)를 소지한 인물로서 관직 위계상의 서열에 따라 상이한 문자 장식을 착용했다. 『당서』, 권 216상에 따르면 이 공식적 표장(標章)은 “착용한 사람 지위의 귀천을 식별하기 위해 상의 팔 앞쪽에 꿰매어 부착했다”(綴臂前以辨貴賤). 서열은 크고 작은 옥(瑟瑟)과 금, 도금한 은, 은, 황동, 홍동, 철 등의 장식에 의해 구별되었다. 관직 서열은 매 등급마다 다시 상하로 나누었다. 709년 금성공주를 데리러 당나라에 온 두 명의 티베트인 사절 중 한 사람은 瑟瑟符, 다른 한 사람은 金符의 소지자였다

설날을 향해 가는 밤하늘의 달이 왠지 쓸쓸하다. 소통의 어려움, 배려의 부족, 다정함의 결여 속에 사는 일로 마음이 신산(辛酸)해서 일 것이다. 수할치(매 사냥꾼)는 매를 날릴 하늘이 미세먼지 가득하여 슬슬하고, 갖바치는 갗(가죽)을 덧대어 신을 깁자고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 슬슬하다. 슬슬의 된소리가 쓸쓸이다. 우리말 형용어 ‘쓸쓸’이 ‘瑟瑟’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거이(白居易)의 시 <비파행(琵琶行)>을 읽어보면 瑟瑟이 寒冷함을 나타내는 형용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琵琶行

늦은 밤 심양강 강가에서 손님을 배웅할 때            陽江頭夜送客
단풍잎 갈대꽃 위로 가을바람 슬슬히 분다             楓葉荻花秋瑟瑟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 안에 있어            主人下馬客在船
술잔 들어 이별주를 마시고자 하나 풍악이 없도다   酒欲無管絃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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