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너무 중요해서 음악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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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너무 중요해서 음악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 최유준·전남대 교수/음악평론가
  • 승인 2020.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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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준의 악담(樂談)

음악이 ‘공연예술(performing arts)’의 하나라는 것은 통념에 해당하지만, ‘(음악)공연’에 대한 우리의 개념적 상상력은 지나치게 폭이 좁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보통 ‘전문음악가들에 의한 무대 위의 정식 라이브 연주’만을 ‘공연’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노래방에서 노래하기’는 ‘공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노래하기’도 법률적으로는 이미 ‘공연’으로 간주되며 실제로 노래방(정식 명칭은 ‘노래연습장’)의 사업자들은 ‘공연권료’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공연 관련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다.

‘공연권료’ 지불의 대상이 되는 상업화된 공간에서의 음악 재생이나 연주만이 ‘(음악)공연’인 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는 ‘공연’ 개념을 미학적·인류학적 관점으로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 학예회에서의 음악연주나 아마추어 음악 동호회의 활동은 물론이며, 집안에서의 지극히 사적인 음악 연습조차도 사실상 ‘공연’에 해당한다. 요컨대 ‘(음악)공연’은 소리를 통한 일체의 감성적 소통 행위를 아우르는 개념이라 하겠다.

‘공연예술’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던 시각예술 분야에서 최근 들어 관객 참여형 전시가 활성화되면서 수행성과 공연성이 폭넓게 강조되고 있는 데 반해, 정작 ‘공연예술’인 음악에서 쓰이는 ‘공연’ 개념이 상대적으로 더 협소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주회장에서 청중의 행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음악에서는 일정한 자격을 ‘공적으로’ 부여받은 일군의 ‘전문예술가’ 그룹으로 공연의 주체를 제한하고, 이들의 활동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매체 역시 전문화된 매체로 한정해온 측면이 있다.

▲ 크리스토퍼 스몰의 저서 『Musicking』
▲ 크리스토퍼 스몰의 저서 『Musicking』

이처럼 영어 ‘퍼포먼스(performance)’에 비해서도 좁은 의미의 ‘공연’이라는 번역어 대신에 인류학계에서 자주 쓰는 ‘연행(演行)’이라는 용어를 폭넓게 쓰는 것이 좋을 듯하지만, 음악과 관련해서는 ‘연행’이라는 용어가 적절해지지 않는 상황도 자주 있다. 이 경우 ‘공연’이나 ‘연행’ 대신 크리스토퍼 스몰(Christopher Small)이 제안한 ‘음악하기(musicking)’라는 용어가 유용하다. ‘음악하기’는 음악의 공연예술(연행예술)로서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스몰의 신조어일 뿐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좀 더 급진적인 지점에 닿아 있다.

스몰의 문제의식은 ‘음악’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하는, 따라서 ‘음악하다(to music)’의 형태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은 음악교육이나 교육 일반에 대한 그의 급진적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지식(knowledge) 역시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공인되고 검증된 ‘교과서’에 담긴 사물화된 ‘지식’이 ‘지식 전달자’로서 공인받은 ‘교사’라는 전문가에 의해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근대적 공교육의 교실 풍경은 근대적인 음악회장의 풍경, 즉 정전화(正典化 canonize)된 고전작품(명사로서의 음악)이 전문 연주가들의 연주를 통해 청중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학교 교실과 연주회장에서의 물리적 구조와 자리 배치 자체가 그러한 일방적 지식 전달과 음악 소통을 정당화하면서 각각 청중 사이와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어렵게 하며, 청중과 학생을 단지 수동적 소비자로 규정한다고 스몰은 비판한다.

‘공인된 지식’이라는 명사적 관념을 물리치고 대신 동사로서 ‘앎(knowing)’의 행위에 주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스몰은 말한다. 내가 “A에 대해 안다”는 것은 “A와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 대한 앎(지식)은 세상과 나의 관계 맺기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앎’이란 언제나 수행적(performative) 의미를 갖게 된다. 이 경우 지식 추구의 과정은 교사에서 학생으로의 일방향의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쌍방향의 다면적 소통이다.

사물화되고 명사화된 ‘음악’이 아닌 동사로서의 ‘음악하기(musicking)’ 역시 마찬가지다. 스몰에 따르면, ‘음악하다(to music)’라고 하는 것은 ‘안다(to know)’와 마찬가지로 ‘관계(들)’에 대한 것이며, ‘음악하기’라는 행위와 그 의미 역시 여러 관계들이 조합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스몰은 음악하기가 언어 행위와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한 ‘앎’을 위한 활동이며, 생물학적 의사소통 언어로서의 ‘제스처 언어(gestural language)’를 활용하여 다양한 관계들의 집합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데에 그 기능을 둔다고 설명한다. 세계에 대한 이해라는 기능 면에서 음악은 무용이나 연극과 같은 여타의 공연예술과 구별되지 않는다.

▲ 존 버저의 저서 『Ways of Seeing』
▲ 존 버저의 저서 『Ways of Seeing』

사실상 존 버저(John Berger)가 ‘미술작품’ 그 자체보다 ‘보기(seeing)’라는 행위를 강조했을 때 미술과 같은 ‘시각예술’조차 일종의 ‘공연예술’로 간주될 수 있었다. 스몰은 그래서 “적절히 이해될 수 있다면, 이제 모든 예술은 공연예술이다”라고까지 말한다. “중요한 것은 창작하고, 전시하고, 연주하고, 보고, 춤추고, 입고, 절차를 밟아가고, 먹고, 냄새 맡고, 혹은 영화를 상영하는 행위이지 창조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몰은 ‘음악하기’를 작곡과 연주, 그리고 청취 행위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음악회에서 티켓을 파는 행위, 악기를 옮기거나 심지어 공연 후 청소하는 행위까지도 ‘음악하기’로 간주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하는데, “그들 역시 음악 공연이라는 사건의 본질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음악회를 기획하는 일, 작곡가나 연주자들을 섭외하는 일들도 ‘음악하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 행위나 실천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불문하고 음악가들이 수행하고 있는 일들의 실제적 목록이기도 하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음악가들, 예컨대 자신의 신작 음반 녹음이나 연주회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시도하는 젊은 음악가들은 기획과 섭외, 공연 진행과 음반 배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하기’의 과정에 직접 관여해야 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능동적 팬덤 문화와 음악 동호회 문화, 다양한 디지털 음악 플랫폼은 다면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음악하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의 ‘수행적 전환(performative turn)’과 관련되는 스몰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표현한 명제가 있다. “음악은 너무 중요해서 음악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Music is too important to be left to the musicians).” 이것은 개인화된 ‘탈진실 시대’의 전문가 불신 풍조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예술과 지식 생산의 사회성과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요청에 해당한다. 관련하여 미술 분야에서는 ‘공공미술’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그에 상응하는 ‘공공음악’ 혹은 ‘음악적 공공성’에 대한 진지한 담론은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음악적 참여 행위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시켜 왔던 음악에서의 협소한 ‘공연’ 개념을 극복하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최유준·전남대 교수/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 연구를 전공했다. 현재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2011), 『대중의 음악과 공감의 그늘』(2014),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2016), 『조율과 공명』(2018)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아도르노의 음악미학』(2010), 『뮤지킹 음악하기』(2004),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2012), 『지식인의 표상』(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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