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문의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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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는 문의 천국이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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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라미드의 문: 피라미드 공간을 보는 새로운 눈 | 임석재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92쪽

 

피라미드의 문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구성에 담긴 독창적인 건축적·공간적 의미와 가치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내는 책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집트 문명만큼이나 오랜 관심과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온 소재도 없을 것이다. 숱한 탐험가가 이집트 문명에 매료되었고, 훗날 ‘이집트학’은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으며, 그것을 사랑하는 ‘이집토마니아’라는 문화 흐름까지 형성되었다. 특히 이집트 문명 가운데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것이 피라미드다. 무려 3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절대권력자 파라오는 죽음을 초월한 권세에 대한 욕망으로 영원한 안식과 주거·통치의 공간인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그리고 피라미드가 ‘내세에 이르는 여정의 공간’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내세를 표방하는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닐 수 있게 된 데에는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다양한 여러 개의 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은 피라미드 내부 공간에 담긴 상징적 의미와 가치들을 ‘문’이라는 주제를 통해 분석하는 동시에, 현대 문 건축의 원류를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찾는 새로운 시각의 연구서이다. 이집트 고왕국 · 중왕국 · 제2중간기 · 신왕국에 걸쳐 등장한 31기의 대표적인 피라미드 본체와 부속신전, 그리고 신왕국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이후 피라미드의 역할을 대체했던 독립신전의 문들을 대상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이들 문에서 발견되는 여러 건축학적 · 공간학적 특징들을 탐구하고, 특히 갈림길과 미로, 연속 공간 등 창의적이고도 다채로운 문 구성을 통해서 영광과 몰락, 단절과 연결, 분산과 집중 등의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드러내는지에 주목한다. 더불어 이러한 주제들이 이집트 이후의 서양 건축, 나아가 현대 건축에 이르러서도 반복 · 변주되고 있음을 보임으로써 확장된 건축사학적 논의를 전개한다.

 

이 책은 총 2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피라미드 복합단지를 이루는 두 개의 큰 축인 피라미드 본체와 피라미드 부속신전 중에서 ‘피라미드 본체의 건축과 문’에 대해 다룬다. 1장에서는 고대 이집트 건축에 있어서 ‘문’의 의미와 가치를 짚는다. 먼저 다채로운 문의 종류와 기능들이 등장했던 사실을 통해 이집트 문명에서 문이 지닌 중요성을 소개하고, 이집트 건축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문을 유형별 · 주제별로 분류하여 각각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분류를 기반으로 다시금 이집트 문명을 해석함으로써 문의 중요성과 가치를 상기하고, 그 대표적인 특징들을 몇 가지 주제어로 묶어 정리한다. 

2장에서는 좀 더 집중적으로 고대 이집트 건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피라미드 건축에 있어서 문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논한다. 피라미드 복합단지를 구성하는 건물들을 소개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피라미드 본체에 대해 문의 분류 기준을 ‘매장의 문’, ‘공간의 문’, ‘분산의 문’ 세 가지로 나눈 후,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피라미드 31기를 이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그리고 31기의 대표 피라미드를 지역과 연대에 따라서도 네 범주로 나누어 각각을 개괄한다.

3장부터 5장까지는 문의 세 가지 분류 기준을 하나씩 자세히 설명한다. 3장은 피라미드에서 매장 공간이 지니는 성격과 위치 선정의 문제를 살피고, 그에 따라 ‘매장의 문’이 취한 형태와 역할을 읽어낸다. 이후 피라미드 무게중심이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매장의 문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공간의 문’을 복도, 묘실, 입구 예배당, 출입문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5단계로 나누고, 각 발전 단계에 해당하는 피라미드의 문들을 확인한다. 4장에서는 ‘분산의 문’으로서 갈림길과 미로를 다루며, 이 역시 문과 분산, 꺾임 등의 공간 조합에 따라 분산의 문 2단계, 미로 6단계로 나누어 각 발전 단계에 속하는 피라미드의 문들을 단계별 · 왕조별로 알아본다. 한편 5장에서는 앞서 본 문의 세 가지 분류 기준에 광범하게 분포된, 이집트의 문 전체를 대표하는 주제라고도 볼 수 있는 ‘방어문’에 대해 설명한다. 피라미드에서 방어 역할을 한 여덟 가지 문의 종류와 각각의 역할, 그리고 방어문을 지녔던 피라미드들을 유형별 · 왕조별로 나누어 파악한다.

 

2부는 피라미드 복합단지의 두 구성 축 가운데 ‘피라미드 부속신전의 건축과 문’에 대해 다룬다. 6장에서는 우선 고대 이집트 건축에 있어서 ‘신전’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짚는다. 피라미드 부속신전과 독립신전에 걸쳐 분포한 장제전, 컬트신전, 계곡신전, 암굴신전 등 다양한 신전의 종류를 살펴본 후 그것을 세 가지 기준(피라미드와의 관계, 기능과 목적, 자연 지형)에 따라 분류해 파악하고, 연대별로 부흥했던 신전의 종류를 각각 알아본다. 7장에서는 특히 피라미드 부속신전에 주목하여 계곡신전과 피라미드 장제전에 대해 소개하고, 각 부속신전을 구성하는 문들의 종류와 기능, 또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짚어본다. 8장에서는 피라미드 부속신전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고고학적 · 건축학적 가치를 지니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부속신전’에 대해 자세하게 둘러본다. 9장에서는 피라미드 부속신전의 부흥과 쇠퇴가 일어났던 제5왕조, 제6왕조, 제12왕조를 중심으로 시기별 피라미드 부속신전과 각 부속신전을 구성한 건물들에 대해 상세히 살펴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집트 왕조와 피라미드 축조의 배경, 그리고 각각의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문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을 풍부한 도판 및 사진 자료들과 함께 생생히 설명한다. 마치 여러 편의 고대 신화를 구술하는 것처럼 흥미롭게 풀어낸 이야기들을 통해 당시의 인류가 피라미드의 문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공간 구성에 담긴 의미와 가치, 또 문이 공간에 부여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징과 독창성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기원전 27세기에 연원한 고대 문명으로서의 피라미드가 시대를 관통해 21세기의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그 인문사회적 유산을 성찰할 계기 역시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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