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의 정수와 발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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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명의 정수와 발굴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0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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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고고학, 위대한 문명의 현장 | 리링·류빈·쉬훙·탕지건·가오다룬 외 8명 지음 | 도서출판 역사산책 | 360쪽

 

세계 문명 연구의 핵심은 유라시아 대륙에 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의 면적은 아시아의 4분의 1이다. 고전 작가들이 말한 아시아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이집트, 소아시아, 이란 고원을 포함했다. 식민 시대에는 아시아의 개념이 동쪽으로 확대되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북아시아 등 여섯 지역으로 나뉘었는데, 이들 지역이 모두 중요하다.

유럽인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은 그들에게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미쳐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고고학은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몽골, 러시아와 더불어 한국과 일본이 속한 동아시아와 북아시아는 그 범위가 아시아 대륙의 절반을 차지함에도 유럽인의 인식에서는 멀리 있어 이들 지역을 다루는 고고학에는 상대적으로 정통하지 못하다.

영국 미술사가이며 중국학자인 제시카 로슨Jessica Rawson 교수는 서구 학자들을 향해 중국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다. 장광즈는 중국 고고학의 중요성이 세계사 고쳐 쓰기에 중대한 작용을 하는 데 있다며, 이를 통해 세계 역사에 공헌해야 하고 또한 공헌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 이래 중국의 가장 중요한 10대 고고학 발굴을 그 현장의 책임자들이 생생하게 서술한 드문 학술서이자 대중서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표준이 있다. 하나는 금속, 도시, 문자 등과 같은 기술 발명 표준이다. 이들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히 고고학과 관련된다. 문화역사고고학의 연구 목표는 고고학 문화인데, 문명은 고고학 문화에 속하지만 고고학 문화보다 더 범위가 넓고 더 오래되었다. 몇몇 문명은 기술 발명 표준에 속하는 요소를 모두 갖추지 못했지만, 중국 문명은 3대 요소가 완전한 문명으로 10대 문명 중에서 전파 범위가 가장 넓고 연속성이 가장 강하다.

문명의 또 하나의 표준은 사유제, 빈부분화, 사회분업, 사회계층분화 같은 사회 조직으로, 복잡한 사회가 형성되었는지, 특히 국가가 출현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의 신석기문화는 황허 유역의 3대 지역, 창장長江 유역의 3대 지역 외에 남북에 각각 하나씩 후방 지역이 있어 적어도 8개의 큰 지역으로 나뉜다. 룽산龍山 시대 이후로 야금 기술이 출현하고 도시가 세워졌으며 다양한 상징체계가 각지에서 발견되었다.

과거 중국 고고학자들은 룽산 문화를 ‘문명의 서광’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량주良渚 문화가 이미 문명의 기준을 갖추었다며 문명의 상한을 위로 끌어올리고 송나라 유학자와 신해혁명가가 말한 황제黃帝 연대(중화 오천 년)가 더는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화수분처럼 다양한 새로운 자료를 쏟아내고 있는 중국 고고학은 전문가조차 그 추세를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다. 그 정수를 엄선한 이 책은 현재 중국의 일부 고고학자들이 자신들 고대문명의 시작을 기원전 3,000년 이전으로 소급시키는 근거인 저장성 항저우 인근의 량주문화에서 시작한다(제1강). 상당 규모의 성터나 화려한 옥기 등을 공부하며 신석기 후기 중국 남방 문화의 발전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얼리터우는 중국 학계에서 이론의 소지가 없는 최초의 고대 국가 유적이다(제2강). 그 도시의 면모가 확인되는 상세한 발굴 과정과 함께 중국 최초의 청동기와 용 문양까지 살펴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얼리터우를 최초의 중국으로 볼 수 있다면, 이어지는 은허는 거의 100년째 발굴을 지속하는 중국 고고학의 요람이다(제3강). 갑골문과 함께 최고조에 달한 청동 제작 기술의 발전, 도굴을 피한 상 후기의 왕비인 부호 묘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중원의 중심 은허에서 상 문명이 발전하던 그 시점에, 은허 서남쪽으로 1,500킬로미터 떨어진 쓰촨성에서도 화려한 청동 문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싼싱두이 문명이다(제4강). 1930년대 이래 그 발견 과정과 청동 가면 등 신비로운 유물, 그 문명의 내력과 교류 상황까지 전해준다. 이러한 세기적 발견은 더 멀리 서북 변경 신장 지역에서도 있었다. 20세기 초 서양의 고고학자들이 최초로 보고한 사막의 샤오허 묘지는 2,000년대 초반 중국 고고학자들 발굴로 그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었다(제5강). 극한 상황에서 그들의 분투와 함께 약 4,000여 년 전의 생생한 묘지와 미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니 단일 무덤으로는 세계 최대인 진시황릉이 기다리고 있다(제6강). 지난 40년 동안의 거대한 발굴은 진의 문명과 과학 기술, 음악을 비롯한 예술 등과 함께 진시황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 무덤은 한나라 때도 조성되었다. 2011년 남쪽 장시성에서 발견된 해혼후 묘는 한때 황제의 자리까지 올랐다 열후로 강등된 비운의 인물 유하의 무덤이다(제7강). 1만 점이 넘는 유물 중 다양한 금기와 어마어마한 분량의 오수전, 공자와 제자들 모습을 담은 거울, 〈논어〉를 비롯한 다양한 간독 문헌이 두드러진다. 당시 중원의 중심은 중국 고대 수도의 대명사인 장안이었다. 한나라와 당나라 때 장안성의 상세한 면모가 그 뒤를 잇는다(제8강)

마지막 두 장은 다시 변경으로 돌아가지만, 그 의미는 어떤 유적 못지않다. 그 첫 번째가 광동성 광저우 인근에서 수중 고고학의 성과로 들어 올린 송나라 때의 원양무역선 난하이 1호이다(제9강). 꼬박 30년이 걸렸다는 이 발굴은 감수자에게 이 책의 백미로 다가왔다. 목포의 해양유물전시관 보존된 신안 해저 무역선과 비교하며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동남단 광저우 바닷가에서 무려 3,500킬로미터 떨어진 서북 변경 둔황의 막고굴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여 의미심장하다(10강). 세계 예술의 보고라는 막고굴의 내력 및 구조와 함께 그 다양한 회화와 사본까지 상세히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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