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시대정신·작가정신·영화정신 세 가지를 구비한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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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시대정신·작가정신·영화정신 세 가지를 구비한 거목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1.01 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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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의 나무 | 문학산 지음 | 작가 | 381쪽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는 동·서양 영화의 거장(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장률, 지아장커, 오즈 야스지로, 우디 앨런, 히치콕, 고다르, 루이스 부뉴엘, 페드로 알모도바르, 타르코프스키)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한 권에 모은 책이다. 

이 책은 그들의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또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각 영화의 제작 배경, 영화사적 가치, 사회·역사적 맥락을 다루고 있어 이론서와 대중서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 또한 저자는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뿐만 아니라,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각 챕터마다 에세이 형식으로 짧은 해설을 덧붙였다.

저자는 한국의 감독과 동아시아 감독에서 출발하여 미국과 유럽 그리고 소련의 작가로 연구를 확장했다. 텍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가능하면 서양의 개념과 이론의 도구를 빌지 않고 한국 영화학자로서 바라보는 관점을 담으려고 했다. 저자는 이 부분이 기존의 세계 영화감독 연구와 거리를 둔 지점이며, 한국인의 눈으로 세계 영화감독을 연구하려는 주체적인 시선과 노력의 흔적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5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국영화 챕터에서는 임권택·홍상수·김기덕, 2부 아시아 영화 챕터에서는 장률·지아장커, 3부 미국영화 챕터에서는 우디 앨런·히치콕, 4부 유럽 영화 챕터에서는 장 뤽 고다르·루이스 뷰뉴엘·페드로 알모도바르, 5부 러시아 영화 챕터에서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계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책의 1부는 임권택 연구로 시작한다. 저자는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2000년대 초에 서초동에 있었던 영상자료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면서 임권택의 작품 한 장면 한 장면을 공책에 메모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자는 임권택 작품의 세부적인 미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그는 임권택 작품을 ‘원초적 장면’과 ‘한국주의’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분석해 이번 책에 싣게 되었다. 그다음 홍상수론은 초현실주의 그리고 꿈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김기덕론에서는 독특한 욕망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집중했다.

 

지아장커는 중국학생들과 한국학생들이 함께 영화공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텍스트로 저자가 오랜 기간 학교에서 학생들과 연구해왔다. 이 책에는 그 연구 기간의 성취로서의 영화 분석이 담겼다. 지아장커의 개별 작품에 대한 분석은 지아장커의 고향인 펀양의 장소성과 중국 근대사의 흐름이라는 배경을 통해 새로운 해석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그의 작품을 저자는 초현실주의 데페이즈망과 문화횡단의 구획이라는 관점을 분석해낸다.

일본 감독론에서 다뤄진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에 대한 작품론은 저자가 대학원 학생들과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윤용순 역, 2008)를 텍스트로 두 학기 동안 장면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오즈의 대표작을 반복해서 감상하면서 얻은 결과로서 담긴 것이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기존의 일본 미의식과 미학적 개념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오즈를 조망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였고, 그의 편집에서 드러나는 독창적인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 방식을 저자는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오즈의 편집 방식과 거기서 드러나는 ‘만물제동주의’를 통해 감독의 텍스트의 심연을 조금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3부 미국 감독론에서는 우디앨런과 히치콕을 다룬다. 저자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유럽영화와 소련 영화 그리고 다양한 문학 텍스트가 촘촘한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우디 앨런 스스로 출연하여 코미디 연기와 문법적 코미디 전략으로 작가 고유한 스타일의 웃음을 주조한 점 등 감독의 핵심적 영화 코드를 밝혀낸다.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한 연구는 패트릭 맥길리건이 집필한 히치콕의 자서전을 꼼꼼하게 읽고 그 세부 정보를 바탕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서전에 기술된 작가의 삶의 이력에서 작품의 제작 과정을 확인하고 그 작품 제작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이해한 저자는 그 정보들을 통해 히치콕 영화의 중심에 있는 서스펜스 기법의 비밀들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4부 유럽 감독론에서는 장 뤽 고다르, 루이스 부뉴엘,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 다뤄진다. 고다르와 부뉴엘의 작품론에서 저자는 기존 연구들이 갖고 있는 ‘고전 작품에 대한 찬양’의 관점을 뛰어넘어 고전 영화 작품과 거장에 대한 현재적인 해석, 현재적인 의미들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장 뤽 고다르의 작품 분석에서 저자는 감독이 영화 제작 당시에 느꼈을 법한 감정과 시대 인식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작품 분석에 담았고, 루이스 부뉴엘의 작품 분석에서 저자는 감독 작품의 가장 큰 연출 특징 중 하나가 초현실주의라는 점에 착안해 그의 작품에 대한 작품론을 자동기술법적으로 쓰기도 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대해서는, 그가 고다르와 부뉴엘을 잇는 현재적인 거장으로서 유럽 사회와 세계 전체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자기 자신에게 친연성이 있는 연극이나 대중음악 등의 소재를 사용해 표현해나가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에 대해 다룬 5부 러시아 감독론 역시 4부에서의 ‘거장들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분석’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을 ‘세상의 구원과 고향상실’, ‘동시주의와 만물제동주의’의 관점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영화 작가의 작품은 시대와 작가정신 그리고 고유한 영화적인 것을 자양분으로 성장한 나무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작가는 시대정신과 작가정신 그리고 영화정신의 세 가지를 구비한 거목이며, 이 거목은 시대정신, 동시대의 분위기라는 토양에서 식목되고 작가정신이라는 뿌리를 통해 영화라는 가지와 줄기를 영화정신으로 뻗어가게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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