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장이 vs. 낙타돌이, 칭기즈칸의 兒名 테무진의 진짜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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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vs. 낙타돌이, 칭기즈칸의 兒名 테무진의 진짜 의미는?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11.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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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69)_ 대장장이 vs. 낙타돌이, 칭기즈칸의 兒名 테무진의 진짜 의미는?

 

인간의 인지능력은 불완전하다. “긴장하지 마세요”를 “김장하지 마세요”로 듣거나, 영어 어휘 straw의 소리를 ‘스트롱’으로 받아들여 쓰는 게 현실이다. 우리말이 CVC 언어 즉 어음이 자음-모음-자음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끝소리로 자음이 있어야만 편안하게 느낀다. 반면에 일본어는 CV 언어라서 받침이 있으면 되레 불편하다. 따라서 running이 ‘러닝’이기보다는 ‘난닝구’에 가깝게 구현된다. 트럭도 ‘도라꾸’가 된다. ‘함바꾸’, ‘마구도나루도’, ‘크레디또 카도’도 그렇다. ‘기무치’, ‘기무상’은 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어의 어음도 자음 받침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鐵木眞을 우리는 철목진이라고 읽지만 중국의 한자음으로는 테무진으로 읽힌다. 香港, 天津, 瀋陽, 少林寺, 明天 등에서 보듯, 받침으로 m, n, ng는 허용된다, 그러나 진이 반드시 진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동서양의 학자들이 대제국 몽골의 건설자 이름 ‘테무진(temujin)’의 의미를 ‘대장장이(ironmaker)’라고 하고,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몽골비사』를 빌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게이 용사(Yesugei Baghatur or Yesükhei Baatar/漢語 야속해(也速該))라는 이름의 카막 몽골 연맹의 추장이 있었다. 키야드(Kiyad) 씨족 보르지긴(Borjigin) 가문 출신의 그가 테무진 우게, 코리 보카를 비롯한 타타르족을 약탈하고 돌아온 바로 그때 임신 중이던 후엘룬 부인은 오난 강의 델리운 동산에서 칭기스 카한을 낳았다... 타타르족의 추장 테무진 우게를 잡아왔을 때 태어났다고 해서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예수게이 용사는 칠레두라는 이름의 말갈족(Merkits) 남자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올쿠누트라는 삼림부족 출신의 후엘룬(Huelun)의 미모에 반하고 자식을 잘 낳을 것 같은 자태에 끌린 나머지 형 네군 타이시(Negun Taishi)와 남동생 다리타이 옷치킨(Daritai Otchigin)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납치한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테무진, 카사르(Qasar), 카치온(Hachiun), 테무게라는 이름의 아들 넷을 낳았다. 테물룬이라는 이름의 딸도 낳았다. 테무진이 아홉 살 때 조치 카사르는 일곱 살, 카치온 엘치는 다섯 살, 테무게 막내(Temuge Otchigin)는 세 살이었다. 테물룬은 요람에 있었다. 어쩌면 테무진의 친부는 칠레두 일지도  모른다. 막내아들을 “불(火)과 牧地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말 ‘옷치긴’이라고 부른 건 그가 아버지 사후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책임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장자상속과는 다른 문화다.

테무진의 배다른 형제로 벨구테이, 베흐테르 등이 있었다. 이 둘의 어머니는 소치겔(Sochigel)이다. 예수게이 바하두르는 여러 종족에게서 많은 부인을 취했다. 그중 가장 큰 부인이자 중요한 아들들의 어머니는 후엘룬 푸진(Fujin)이었다. 푸진은 키타이(거란) 말로 부인을 뜻한다. 후엘룬의 출신 부족인 올쿠누트족이 키타이의 영역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키타이 용어를 흔히 차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흥미로운 유목민의 풍습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로 칭기즈칸이 막내딸 알탈룬(Altalun)의 남편으로 삼게 한 사람이 자신의 아내의 남자 형제 즉 처남인 타추 쿠레겐(Tachu Kuregin)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인척관계나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테무진의 아버지 이름 예수게이의 의미는 ‘아홉 번째’다. 몽골인들에게 ‘9’는 행운의 숫자다. 민족마다 聖數가 다르다. 중국인들이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듯, 한국인들은 3을 특히 좋아한다.

예수게이의 둘째 아들 주치 카사르의 이름에서 주치는 이름이고 카사르는 ‘맹수’라는 뜻의 별칭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성격이 거칠어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의 서자인 카랄주의 일곱 아들 중 첫째의 이름은 티무르(Timur)였다. 몽골 인명에 주치는 흔한 이름이고, 예수게이의 막내아들 테무게를 비롯해 테무진, 티무르, 테물룬 등에서 보듯 테무 역시 이름에 빈번하게 사용된다.

칭기즈칸의 증조부인 카불 한의 일곱 아들 중 4남 쿠틀라의 큰 아들의 이름도 주치다. 칭기즈칸의 큰 아들 역시 주치다. 칭기즈칸이 아홉 살에 청혼하여 나중에 아내가 된 옹기라트 부족 출신의 여인이 부르테다. 과거 칭기즈칸의 아버지 에수게이가 칠레두의 아내 후엘룬을 납치해 간 데 대한 보복으로 톡토아 베키, 다이르 오손 등 三姓메르키트인들이 부르테를 잡아갔다가 옹칸에게 선물로 바쳤다. 다행히 옹칸은 칭기즈칸의 가문과의 인연을 저버릴 수 없어 부르테를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길에 부르테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주치다. 주치는 손님이라는 뜻이다.  

칭기즈칸의 동생 중에 테무게가 있다. 이 이름에서 테무는 오이가르진 몽골어로 철(temep)을 뜻하고, ‘-게’는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접미사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나 테무진의 同腹幼弟 Temüge Otchigin(1168~1246年)은 鐵木哥, 帖木格라고 전사되는데, 여기서 보는 鐵木, 帖木과 特黙은 다 같이 낙타를 뜻하는 몽고어 temu의 한자어 표기다. 

고대 어휘의 대부분이 종성자음(받침)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眞, 直, 質, 赤의 上古音이 다같이 ‘치 [çi]’라고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흔히들 테무진(temüjin)이라고 알고 있는 몽골제국 창건자의 한자 표기 鐵木眞에서의 ‘眞’을 ‘치’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치’는 ‘사람’을 뜻하는 形態素 내지 접미사다. 따라서 칭기즈칸의 아명 鐵木眞의 의미는 ‘ironmaker(대장장이)’가 아니라 ‘낙타돌이’ 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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