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관념의 철학에서 주체적 생명의 철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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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관념의 철학에서 주체적 생명의 철학으로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10.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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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 박재순 지음 | 동연출판사 | 711쪽

 

인간에게 ‘나’는 무엇인가? 그것이 주도적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억제해야 하는가? 유교는 극기와 수기를 말함으로써 나를 누르고 닦으려 했고, 도교는 무위자연을 내세우며 나를 자연의 법도와 질서에 순응하게 하려고 했으며, 불교는 무아와 멸아를 말하여 나를 부정하고 초월하려 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동양 종교 일반에서 가지는 태도에 반하는 면모를 함석헌과 유영모 연구에서 가지게 되었다. 어떻게 그들은 ‘나’를 중심과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은 안창호 연구에서 깨끗이 풀렸다고 술회한다. 

저자에 따르면, 안창호는 시종일관 나를 중심에 놓고 전면에 내세웠다. “안창호는 나라를 잃고 종살이하는 한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 나라의 독립과 통일 운동에 앞장서게 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행동한 안창호는 ‘나’의 철학자였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씨알철학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안창호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도산철학과 씨알철학이 동·서 정신문화의 만남과 민중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 근·현대가 낳은 생명철학이라고 규정한다. 국가권력과 지배이념에서 자유로웠던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은 동·서 정신문화를 깊이 받아들이고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자유롭게 생각하여 민주적인 생명철학을 닦아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 사상은 20세기에 한정되지 않는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철학이며, ‘나’의 삶을 저마다 저답게 살려는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담지하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두 큰 주제에 따라서 2부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서론에 해당하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의 집필 동기와 관점 그리고 담는 내용을 제시한다. 기독교 서구는 죄인된 인간을 강조하고 그와 더불어 무력한 자아를 구원할 타자로서 신을 강조했기 때문에 ‘나’를 내세울 수 없었고, 인간의 자아를 이성으로 본 서양의 이성 철학에서는 자아와 타자가 모두 이성의 지배와 독점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탈현대주의는 이성 철학이 유지해온 관념적 자아의 해체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라 잃은 한민족 구성원 하나 하나를 ‘나’라는 주인과 주체로 일깨워 독립과 통일 운동에 나서게 한 데서 그것을 극복할 실마리가 제시된다.

 

                                                            안창호(좌)와 함석헌(우)

“제1부 도산 안창호의 철학”에서는 이렇게 ‘나’를 일깨운 도산철학을 7개 장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저자는 도산철학을 생명철학으로 규정하고, 생명철학이 형성되는 배경이 되는 과정을 안창호 개인, 역사와 당대의 문화 그리고 철학 사상적 배경까지 상세하게 풀어나간다. 1부의 나머지 부분에서 저자는 도산철학의 핵심 주제들을 다루어간다. 나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되는가? 나는 어떻게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안창호는 어떻게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길로 갔는가? 저자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도산의 생각과 삶이 담지하고 있었던 생명철학을 정리해간다.

저자는 도산철학이 씨알철학으로 계승 발전되었다고 보았다. 함석헌은 늘 자신의 스승들로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을 내세우며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것은 함석헌 사상이 도산 그리고 남강과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임이 분명하고, 일련의 사승관계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승훈은 안창호의 교육이념과 정신을 따라서 오산학교를 세웠다. 이승훈은 3.1운동에 앞장섰을 때 오산학교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을 만나면서 스승과 제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씨알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사상은 도산과 남강의 교육독립운동과 3.1운동의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제2부 한국 근현대철학의 계보: 안창호,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에서는 5개 장에 걸쳐서 이 주제를 다룬다. 도산철학의 역사적 실천적 계보, 도산철학과 씨철학의 연속성, 또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나’ 철학의 문제 그리고 도산철학과 씨철학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제2부에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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