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유목민 색종(塞種)의 노래, ‘Ordo Sakhna'
상태바
초원 유목민 색종(塞種)의 노래, ‘Ordo Sakhna'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10.25 0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68)_ 초원 유목민 색종(塞種)의 노래, ‘Ordo Sakhna’

 

“모든 결혼은 눈물로 시작된다.” --- 키르기스 속담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초원의 나라 키르기스스탄 역시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다인종 국가다. 처음에 그 나라에 가서 받은 선물이 모자였다. 여행사 측에서 고객 서비스용으로 마련한 것으로 흥미롭게도 스키타이 뾰족 모자를 닮은 ‘악 칼팍(ak-kalpak)’ 즉 흰색 펠트 모자였다. 또 하나의 선물은 Ordo Sakhna라는 그룹의 키르기스 전통음악 음반이었다. Ordo Sakhna는 색족의 노래라는 뜻이다.

 

기원전 520–51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사카 티그라하우다(Sakā tigraxaudā)라는 이름의 사카 부족을 패배시키고 그들의 왕 스쿤카(Skunkha)를 포로로 잡는다. 그 결과 아무다리야(the Amu Darya, 아무 江, 그리스어로는 옥수스)와 시르다리야(the Syr Darya, 시르 江 그리스어로는 약사르테스)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호라즘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사카의 영토는 아케메네스 제국에 흡수되었다. 중국의 『漢書』는 일리강과 추강 계곡 일대를 ‘색(塞)의 땅’, 다시 말해, ‘사카의 땅’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땅이다.  
  
‘키르기스인(Kyrgyz)’의 ‘땅(-stan)’이라는 의미의 국명을 지닌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의 수도는 비시켁이고 거기서 서남쪽으로 내려가면 인구 30만의 제 2 도시 오시(Osh)가 나온다. 이 이름의 기원을 고대 유목국가 오손(烏孫)과 직결시킬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요사(遼史)』에 오손국왕부(烏孫國王府)라 하여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 때까지만 해도 오손이라는 나라가 존속하고 있었다. 

오손이라는 유목국가가 기원전 2세기 장건의 월지행에 등장한 때로부터 최소한 1,100년간 국가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손인은 흉노에 밀려 서천(西遷)을 택한 월지가 선주민이던 색종(塞種)을 몰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던 천산산맥 북단의 일리 초원과 이식쿨 호수를 차지했다. 색종은 이렇게 역사의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겼다.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에서 저자인 크리스토퍼 벡위드는 중앙유라시아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건립한 십여 개의 거대 왕국을 거론한다. 히타이트, 周나라 중국, 스키티아, 로마, 오손, 고구려, 중세의 투르크, 몽골,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 시대의 준가르가 그들이다. 그 중 벡위드 교수가 묘사하는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다름 아닌 ‘사클라이(*Saklai)’라는 국명으로 중국 측 사서에는 색리국(索離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투멘(Tümen)은 삼국사기에서는 朱冡으로 나온다. 

* 사클라이(Saklai) 북쪽에서 어떤 왕자가 신비롭게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태양신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강의 신의 딸이었지만, 그 나라의 왕은 아이를 빼앗아 맹수들에게 갖다 버렸다. 그러나 야생 돼지와 말과 새들이 아이를 따뜻하게 해주였고, 그래서 아이는 죽지 않았다. 
아이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길러도 좋다고 허락했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자 왕은 그에게 왕의 말을 관리하라고 했다. 그는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투멘(Tüme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자들은 왕에게 경고했다. 투멘이 너무 위험하며, 왕국을 전복시킬지도 모른다고. 왕자들은 투멘을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투멘의 어머니는 때마침 투멘에게 위험을 알렸고, 투멘은 남쪽으로 도망쳤다.
건널 수 없는 강에 맞닥뜨리자 투멘은 자신의 활로 강물을 내리치며 소리 쳤다.
“나는 태양의 아들이며 강의 신의 손자다. 적들이 나를 뒤쫓고 있다. 어떻게 하면 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  
그러자 악어와 자라들이 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투멘이 강을 건넌 뒤 다리는 사라졌고, 투멘의 적들은 투멘을 추격할 수 없었다.  
투멘은 수도 오르투(Ortu)를 건설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그의 영토는 네 부분으로 나뉘어졌는데, 네 방향에는 각각 지배자(Ka)가 하나씩 있었다.

『사기』 대완열전에 나오는 장건의 말에 따르면, 오손왕 엽교미의 부친은 흉노 서쪽 변경의 작은 나라의 군주였고, 흉노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그러나 『한서』 장건·이광리전에 따르면 엽교미의 부친은 이름을 난두미(難兜靡)라 하고 기련산과 돈황 사이의 작은 나라의 군주였는데 월지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엽교미는 아버지가 죽을 무렵에 태어나 들판에 버려졌으나 까마귀가 고기를 물고 위를 날아다녔고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 이를 신의 가호라고 생각한 흉노 선우가 거두어 키우고 장성하자 군대를 주어 공을 세우도록 한다. 그후 아버지가 다스리던 백성을 주어 서쪽 변경을 수비하게 했다. 그러나 엽교미는 이를 바탕으로 주변을 공격해 세력을 키우고, 선우가 죽자 흉노에 조회하지 않았다. 흉노가 몇 차례 오손을 기습했으나 이기지 못해 오손은 흉노의 반독립적 속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 세력이 커진 오손왕 엽교미는 구원(舊怨)을 갚으러 월지를 공격하니 월지가 대하로 달아나고 엽교미는 월지가 정복했던 색(塞, 사카) 땅을 차지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