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의 고려인 관료’ 이곡, 성리학으로 고려의 유교 문명화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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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고려인 관료’ 이곡, 성리학으로 고려의 유교 문명화를 꿈꾸다
  • 도현철(都賢喆) 연세대·한국중세사
  • 승인 2021.10.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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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이곡의 개혁론과 유교 문명론』 (도현철 지음, 지식산업사, 464쪽, 2021.08)

 

  1. 저술 동기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은 고려와 원의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료 생활을 하면서 원의 선진 문명을 고려에 전래한 유학자이다. 14세기 고려는 사회 변화가 극심하고 원의 지배와 간섭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이에 사회 개혁으로 고려를 안정시키고 새롭게 정립된 몽골(원)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가의 독립성과 문화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국가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 한 이곡의 개혁론과 지향점을 살펴보고 그것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핀 글이다. 이곡은 원 과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한림국사원 검열관을 시작으로 15년간 원에서 관료 생활을 하였다. 이곡은 그 기간 동안 고려와 원을 오가며 중요 정치 현안에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이곡은 고려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유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행적을 검토하면 당대의 역사상과 함께 고려 말 개혁정치와 조선 유교 사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종래에 이곡에 대한 문학과 역사학의 연구가 있지만, 개별 작품이나 지식인 교류와 특수 주제를 중심으로 개별 분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 이곡과 그 사회에 대한 연구 성과가 제시되고, 몽골(원)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였다. 특히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낀 자료는 이곡이 원에서 응시했던 당시의 과거시험 답안지였다. 이곡의 문집인 『가정집』에는 원 과거시험의 제과 답안지(策文)가 있고, 『어시책』에는 원나라의 제과 장원 급제자들의 답안지가 있는데, 이들은 당시 원나라 유학자들과 이곡의 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이들 답안지 비교를 통하여 그가 교류한 원나라 유학자와 원의 성리학의 특성을 살피고, 이를 통해 고려 말과 조선 시기의 사상적 연관 관계를 파악할 필요성을 느꼈다. 더욱이 이들 답안지는 당대 최고의 문명국가인 원의 유교 문화를 중앙의 관학으로부터 수용하여 고려를 중국과 비견되는 유교 국가로 만들려는 이곡의 지향점이 담겨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내용의 성격 파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분석 결과를 이 책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가정집 표지(좌), 어시책 표지(우)  사진출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고서실

  2. 이곡의 개혁론과 유교 문명론 
 
이 저서는 크게 4 부분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본론에 앞서서 이곡 연구의 기본 자료가 되는 『가정집』에 대한 서지적 검토이다. 처음 공민왕 13년(1364)에 간행된 『가정집』과 현재 널리 유통되고 있는 현종 3년(1662)의 4간본(四刊本)을 미국, 일본, 한국의 『가정집』 소장처를 찾아 각 간본을 비교하여 같은 점과 차이점을 조사하였다. 아울러 전통시대 한자 문화권의 문집 배열에서 시부(詩賦)를 중시하는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가정집』이 잡저(雜著)를 우선하고 시부(詩賦)를 뒤로 돌린 이유에 대해 추적하였다. 검토 결과, 『가정집』의 편찬자인 이색이 이곡의 사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앞에 내세운 결과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원 관료 생활을 한 고려인 이곡의 국가관과 군신 관계,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의 문제이다. 이곡은 심왕(瀋王)의 고려왕 옹립 운동에 반대하며 고려의 군신관계를 중시하였고, 공민왕의 옹립에 앞장서 고려의 존립과 자주성을 우선하였으며, 원이 동녀(童女)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 설명하고 고유문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곡은 고려가 새로운 정치(新政)를 지향하고, 쌓인 폐단(積弊)을 개혁하며, 경장(更張)을 모색하고, 적합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정치적 이상을 고려에 관철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이곡은 고려의 전통 관습과 원의 법제를 병용해서 활용하자는 견해도 제시하였다. 이는 기왕의 원 간섭기와 이곡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집 목록(좌), 가정집 원수한(우)  사진출처: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고서실

세 번째는 이곡이 원 세계문화, 선진 유교 문화를 목도하고 익히면서 성리학을 수용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이다. 이곡은 원 과거시험인 제과를 준비하고 관료 생활을 하면서 『사서집주』를 핵심으로 하는 성리학을 수용하였다. 이곡은 성리학의 인간론, 심성론을 중시하였는데, 그중 특히 경(敬) 중시의 성리학을 전개하였다, 이곡의 생각은 당대의 유학자인 이제현, 백문보와 공유되고 아들 이색에게 전해졌으며,  이색을 통하여 정몽주, 이숭인, 권근 그리고 조선시대 사상계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즉 이곡은 성리학의 인성론과 경 중시의 수양론을 견지하였는데, 이것이 고려 말 이색과 권근 같은 유학자의 인성론, 수양론 중시의 성리학으로 계승되고, 조선 건국 후 도학(道學), 정주학(程朱學)을 추구하는 유학의 독존시대를 열어가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기왕의 연구에서 고려 후기 성리학 수용은 안향, 백이정, 이제현 등을 통하여 이색, 정도전, 정몽주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진 것으로 보았는데, 이 연구에서는 성리학 수용 과정에서 이곡이 수행한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성리학 수용사를 그러한 부분에서 새롭게 정리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이곡이 지향한 문치의 확산과 그것이 갖는 의미의 문제이다. 이곡은 유교의 하·은·주 이상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효 윤리를 포함한 유교 윤리가 확산되어 도덕이 확립된 사회를 지향하였다. 즉 인간의 도덕적 신뢰를 바탕에 두고 대화, 설득, 자각을 통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도덕 사회 이른바, ‘문치’ 혹은 ‘유교 문명 사회’를 지향하였다. 그리하여 형률(刑律)을 이용해 타율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패도정치에서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교화시켜 자발적으로 복무하도록 유도해내는 이른바 왕도 정치를 추구하였다. 유교 윤리가 갖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고려 사회에 작용하려고 하였다고 할 수 있다.  


  3. 이곡의 삶과 사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

이 책은 원 관료로 활동한 이곡의 국가관과 정치적 지향점을 파악하는 한국사학계 최초의 단행본 연구서이다. 종래에는 기본 자료인 『가정집』에 생소한 중국의 인명과 지명, 관직, 기타 어려운 개념 등이 포함되어 연구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제 이곡과 그 시대에 대한 연구, 특히 몽골(원)사 연구가 진척되면서 이 저서가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전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통 한국학 연구에 기본 자료에 대한 기초적 검토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나아가 이곡 사상이 당대의 개혁 사상으로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 아들인 이색과 권근, 정도전 등의 학자들의 사상으로 계승되어, 조선시대 4·7논변과 같은 심성 중심의 성리학의 사상적 연원임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앞으로의 연구를 기대하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가 오늘날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하여 시사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도현철(都賢喆) 연세대·한국중세사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이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장과 한국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역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의 정치사상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고려말 사대부의 정치사상연구》(일조각, 1999), 《목은 이색의 정치사상연구》(혜안, 2011), 《조선전기사상사》(태학사, 2013) 등 한국 중세 사상사 관련 논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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