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너무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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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너무 오래 산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10.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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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에세이]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든 살 넘게까지 사셨다. 비교적 오래 사신 편이다. 외할아버지만 요절하셨다. 아버지는 여든여덟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흔둘에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여든을 넘기는 것은 보통이다.

우리 세대의 수명은 최소한 아흔일 것이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도 아흔까지는 살 것이다. 우리 자식 세대는 백 살이 기본이 될지 모른다. 사람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영양이 점점 좋아지고 의학 기술이 점점 발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예순을 넘겨 일흔 해 가까이 살고 있다. 생각하면 무척 긴 세월이다.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또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자라고... 그밖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하면 몇몇 가지 생각나기도 하지만, 과연 거기에 이렇게 긴 세월이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생각나는 나날들보다 생각나지 않는 나날들이 훨씬 더 많다. 그 생각나지 않는 날들에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일하고 즐거워하고 속상해 했을 것이다.

이런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지구의 자원을 갉아먹으면서 지나치게 오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의 생활이 변함없고 무료한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들 것이다. 그렇다고 죽기는 두려우니 지금 죽을 수도 없다. 일부러 목숨을 끊을 까닭도 대개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저 지구의 자원을 축내면서 목숨을 이어나간다. 하루하루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또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요즘은 의학 발달로 사람의 목숨이 더 질겨져서 오히려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은퇴한 지 수십 해 동안 벌이 없이 살아야 하니, 이를 감당할 사회의 비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 사회적 생명이 이미 끝났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인 생명도 사실상 끝난 상태로, 뇌나 심장이 살아있다는 까닭으로 의미 없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노인 개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노화 방지를 위한 연구는 계속되는데,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이 제 한 몸 가누지도 못하고 남에게 의지해 가면서 백 살을 살면, 그 노인은 행복하고 그 사회는 건강할까? 노화 방지 연구, 장수 비결 연구보다는 오히려 불치병 치료 연구에 더 힘을 기울이고 사회 복지 확충에 애를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서른 해 가까이 더 살 것이다.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나는 무슨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같은 삶의 되풀이라면 그저 목숨 부지밖에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내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지금까지도 못했으니, 사실 이런 말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그렇다고 죽기도 두려우니 정말 불교 가르침처럼(원래는 힌두교 가르침이란다) 생명이 돌고 돈다면 이쯤에서 그만 돌아가시고 다른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아마 지렁이? 딱정벌레? 개미핥기로?

그러나 이 또한 부질없는 생각이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이니,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단지 사회 분위기가 특별히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부추기지 않고 적당히 살다가는 데서 만족을 느끼도록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인간의 탐욕이 조금은 줄어들고 사회 갈등도 개인의 괴로움도 조금은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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